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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

0 개 2,356 박건호
영화 <화이>. 다섯 명의 아빠 중 한 명인 석태가 아들 화이에게 말한다. 괴물이 두렵다면 괴물이 되거라. 괴물이라는 생명체에 대한 믿음은 순수성의 증명이기도 하다. 인간은 일말의 순수성을 가지기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고, 환상을 동경하고 의심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괴물”은 실증 될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으로 말미암은 압박은 - 우리들의 심리를 위협하며, 행동을 통제하며, 죄 혹은 악에 대한 판단의 가치를 체화시킨다. 그리고 이 영화는 선(善)과 순수성 너머의 위험한 경계를 괴물이라는 상징으로서 보여준다.

화이를 제외한 다섯 명의 아빠들은 이미 괴물들이다. 이들은 괴물이 두렵지 않다. 이미 괴물이니까. 다만 화이에 대한 부성애가 이들에게는 유일한 괴물이다. 영화의 중반부, 화이는 자신의 친아버지를 죽인 이후로 서서히 괴물이 되어간다. 다섯 명의 아빠들은 그러나, 자신들이 화이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그 순간에도 화이를 달래려하고, 화이의 안전을 걱정한다.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플롯은 기존영화에서 관철되는 뚜렷한 대립은 아니다. 화이는 아빠들의 현재에서 자신의 현재를 설계하다 서서히 자신의 판단으로 스스로를 설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빠들은 때때로 화이에게서 순수성을 찾는 기쁨과 설렘을 갖는다. 아빠들은 화이에게 괴물이 되기를 요구하면서도, 화이가 자신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 한편 화이는 자신의 속에 감춰진 순수성을 또래 여학생에게서 찾는다. 화이의 친부모는 화이가 주었던 행복함을 끝까지 기다리고, 그 친부모가 사는 달동네를 무차별적으로 철거하는 건설회사의 사장은 신사적인 행동으로 자신이 괴물임을 숨긴다.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기성세대들은 괴물들이다. 인상 깊은 장면은, 외면적으로는 가장 “괴물스러운” 것으로 취급되는, 오직 가까운 것만 볼 수 있는 시각장애인이 그들을 향해 “그 눈.. 사람이 아니야” 라고 외치는 장면이다.

화이는 자신들의 삶을 설계해 주었던 아버지들을 죽이는 것을 택한다. 타인이 만들어 놓은 구조물들을 파괴하고, 괴물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화이 자신은 괴물의 바깥에서 태양빛을 따라 괴물들을 저격하며, 마침내 “괴물이 두렵다면 괴물을 삼켜야 한다”, 라고 말했던 석태마저 죽인다. 그리고는 또래 여학생에게 카메라와 자화상이라는, 다소 작위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가능성과 자아의 도구를 선물한 후, 마침내는 대한민국의 심장 - 이 노골적인 표현은 영화에 걸쳐 세 번이나 나온다 - 이라는 건설회사의 사장을 저격한다.

지금 한국사회는 괴물들이 사는 나라다. 가장 높으신 분은 겉으로는 항상 도덕책처럼 말한다. 원래 도덕시험이 제일 쉽다. 그저 누가 봐도 옳은 소리만 상식적으로 골라내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입 바른 소리와 북한, 그리고 때로는 침묵으로 무장한 괴물이, 또다른 괴물들을 골라 자신의 옆과 밑에 배치시킨다. <화이>처럼, 괴물 혹은 괴물들이 괴물을 만든다. 더욱이 그것이 통제된 환경이라면 더더욱 통치가 용이하다. 또한 나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일수록 우민정책과 범법의 원초적 짜릿함은 편안하게 다가온다. 사실 영화 <화이>의 진성처럼, 괴물 중에서도 <최후의 아나키스트> 같은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영화 속 진성이 “화이는 우리와 달라”라며 내놓는 해결책은, 필리핀 유학이라는 공간적 탈출이다. 그리고 탈출하고 싶은 공간의 그 땅위에서, 순수성을 외면한 괴물들이 목적과 결과를 조작하고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훌륭한 문화매체는 시대를 대변한다. 지금의 한국 상황과 해결책을 적확하게 표현해낸 가장 최근의 영화가 <화이>라면, 이와 오버랩되는 소설은 루쉰의 <광인일기>이다. <광인일기>의 마지막 문장 “아이들을 구하라”와, 자신에게 주어진 괴물을 외면하는 화이의 모습. 요즘 한국과, <화이>와, <광인일기>의 메시지는 이러하다. 미래의 가능성인 아이들이 대한민국의 괴물들을 저격할만한 사고를 가질 수 있는가, 혹은 기성세대들이 아이들로 하여금 그런 사고를 가질 수 있게 만들고 있는가.

이 외에도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는 영화 <화이>는 논리적인 스토리가 아닌 -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소재를 풀어내는 방법론과 탄탄하고 치열하게 짜인 독한 화면연출들이 돋보이는 영화다. 화면이나 대사들도 상당히 거친 편인데, 현재 한국의 9시 뉴스들보다는 덜 끔찍하므로 감상에는 크게 무리가 없는 편이다. 영화의 상징은 현실의 인식을 찌르고, 인식은 곧 이 영화에서 화이가 온몸으로 이야기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 된다. 그리고 화이는 또 다른 시작을 위해 거리 너머로 걸어갔다.
그렇다면 지금, 또 다른 화이들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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