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너무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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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너무 빠르다

0 개 342 한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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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 AI


“인생은 흰 망아지가 문틈을 지나가는 것처럼 빠르다(人生如白駒過隙)”. 이는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 장자(莊子)의 책 지북유(知北遊) 편에 나오는 말이다. 이 말은 시간은 붙잡을 수 없는 것으로 젊음도 기회도 오늘 하루도 붙잡으려 하면 이미 지나가 버리기에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소중하게 보내라’라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따라서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고 자연스럽게 살며 마음을 편히 하라는 말이 된다. 소중하게 하루를 보내는 사람은 하고 싶은 말은 미루지 않고, 고마운 사람에겐 오늘 표현하고, 좋은 일은 지금 실천한다. 결론적으로 “인생은 짧으니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헛된 욕심에 끌려가지 말며 오늘을 사람답게, 따뜻하게 살아가라”라는 교훈이다.


톨스토이는 “인생을 대충 살기에는 너무 짧고 빨리 지나간다”라고 말했다. 새해를 맞이하며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의 빠름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시간 그 자체의 흐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겠지만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속도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물리적 속도는 일정한 속도로 절대로 변하지 않는데 이것이 ‘절대적 시간’이다. 다음은 느껴지는 시간으로 마음속의 시간이 있다. 즐거운 여행 중의 시간은 같은 하루라도 느낌은 전혀 다르다. 병원 대기실에서 꼼작 못하고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왜 그리도 긴지?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은? 에 대한 질문에서 여러 가지 교통편이 대두되는데 정답은 ‘애인하고 갈 때이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으나 사실은 맞는 말이다. 이와 같이 느껴지는 시간은 다르다. 


그럼,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살아온 시간이 길수록 새로운 일 년은 상대적으로 짧게 느껴진다. 10살 어린이에게 1년은 인생의 10분의 1이지만 80살 어르신에게 1년은 인생의 80분의 1이 되므로 살아온 기간이 길수록 1년은 상대적으로 짧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비슷한 하루가 반복되기 쉬우나 젊었을 때는 첫 학교, 첫 직장, 첫 여행 등 모든 것이 새로움으로 가득 차 있어 충만 된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된다. 뇌는 새로운 경험이 많을수록 시간을 길게 기억하고 반복되는 일상은 짧게 느끼는 것이다.  


빠르게 느껴지는 세월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 나갈 것인가? 삶에 새로움과 의식을 더해보는 것이다. 평소와 다른 길로 산책을 해보고, 새로운 책이나 음악을 접하며, 작더라도 꾸준히 취미를 발굴해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의 밀도는 달라질 수 있다. 하루를 무심히 흘려보내지 않고 오늘 만난 사람과 느낀 감정을 한 번쯤 돌아보는 습관은 하루를 길게 만든다. 짧은 기록도 큰 힘이 된다. 일기 한 줄, 메모 한 장, 사진 한 컷이라도 시간을 붙잡아두는 것과 같다. 또한 남을 위해 봉사하는 일 즉 가르치고, 나누고, 돕는 시간은 공허를 줄이고 삶에 깊이를 더해 주는 것이 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채우느냐는 각자의 선택이다. 그냥 흘려보내면 세월이 되지만, 의미를 담으면 인생이 된다. 세월이 빨리 흘러간다고 느껴질수록 우리는 오히려 삶을 더 천천히, 더 깊게 살아갈 일이다.   


새해를 맞이하다 보니 만감이 교차 되는 느낌이다. 나이는 85세로 진입했으며 한국에서 54년을 살았고 뉴질랜드에 이주해서 31년째 살고 있는 현실이다. 108세로 인생 계획을 세웠으니 남은 세월 23년을 살아갈 예정이다. 한국에서의 54년은 참으로 변화무쌍한 삶의 연속이었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바로 태어났고 일제 치하에서 유아기를 보냈다. 해방과 남북 분단이 이루어진 가운데 미군정 시절에 초등학교를 시작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한국전쟁의 비극을 겪으며 초등학교를 마쳤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야 하는 과정에서 중,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 입학과 함께 5.16 군사 쿠데타를 체험했다. 사회에 나와서는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진전 과정에서 현장을 지켰으며, 10.26과 5.18, 제6공화국이 태동하는 현장을 목격하면서 젊은 시절을 불태웠다. 1995년 말, 뉴질랜드로의 이주는 나의 인생사에 있어서 혁명적인 변화의 몸부림이었다. 뉴질랜드는 한국과 완전히 다른 나라였고, 인구 구성원도 다르고, 기후도 다르고, 음식도 다르고, 생활패턴도 다를뿐더러 어떤 것들은 한국과 정반대의 것들도 많았다. 새로운 환경에서는 의지할 일가친척도 없고 친구, 친지도 없는 상황에서 은퇴할 나이에 이주를 결행한다는 것은 무모하리만큼 만용에 가까운 처사였다. 


한 번 뿐인 인생, 인생을 되돌려서 두 번 살아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후반 인생은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보겠다고 결심했다. 기득권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모든 것이 생소한 터전에서 후반 인생을 시작하는 일은 모험이었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회였다. 한국에 대한 관점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었고 인간 사회의 다양한 모습들도 비교 체험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지구가 속한 은하계를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길이라고 한다면 지구는 그 길 위의 모래 한 알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좁쌀 같은 지구에서 70억 명의 인구가 살고 있고 각자는 길어봤자 80년을 살다가 죽고 마는 운명을 타고난 인간이다. 그러한 인간 사회 안에서 온갖 갈등을 빚으며 살고 있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침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이 요청되고 있는 시점이다.


우리는 지구의 ‘주인’이 아니며 70억 인구는 모두가 같은 우주선에 함께 탄 ‘동승자(同乘者)’이다. 지배하려 들수록 갈등은 커지고 함께 가려 할 때 바로 평화가 싹튼다는 사실이다. 인종, 종교, 이념은 사람이 만든 틀이다. 그러나 쉬고, 먹고, 늙고, 아파하고, 사랑하고, 죽는 일은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의 타고난 운명이다. 지금부터는 “누가 더 앞섰는가?”가 아니라 “누가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택했는가?”를 물어볼 때이다. 지난 세월이 빨리 흘러갔듯이 앞으로 나의 남은 인생 23년도 빨리 흘러갈 것이다. 인생이라는 최종 종착 지점에서 지난 인생을 차분히 관조하고 남은 인생을 정리하면서 더욱 성실하게 살아가려고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동조하고 삶의 구경꾼이 아니라 주인이 되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마지막 남은 열정을 쏟아부으리라 다짐해 본다. 인생의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있는데 흐르는 강물에 정처 없이 떠도는 낙엽이 될 것인가? 아니면 강물에 몸을 맡기되 창조적인 흐름을 이어가는 인생을 살아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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