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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의 고등학교에는 하나의 교육체계만 존재하지 않는다. 공립학교 대부분이 채택한 NCEA, 일부 사립학교에서 운영하는 IB, 그리고 영국식 교육 전통을 바탕으로 한 Cambridge 과정이 있다. 세 교육체계는 모두 학생이 배우는 방식을 다르게 설계하고 평가한다. 그 안에는 서로 다른 교육 철학이 담겨 있으며, 그 차이는 학생들이 배우는 과정과 사고의 깊이, 글을 쓰는 태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NCEA는 뉴질랜드 교육의 근간이 되는 체계로, 학생이 배운 것을 어떻게 적용하고 표현하는지를 중시한다. 학기 중에 이루어지는 내부평가에서 글쓰기는 단순히 언어 능력을 확인하는 과제가 아니라, 학생이 사고를 구성하고 생각을 구체화해 가는 하나의 학습 과정이다. 학생들은 에세이뿐 아니라 설명문, 설득문, 리포트, 리플렉션 등 다양한 형태의 글쓰기를 익힌다. 먼저 초안을 작성하고, 교사의 피드백을 받고, 다시 수정하는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 글을 완성해 간다. 이러한 순환적 경험이 곧 학습의 과정이다. 또한 학년 말 외부시험에서는 제한된 시간 안에 주어진 주제에 맞춰 사고의 명확성과 표현의 완결성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NCEA는 과정과 결과를 모두 중시하는 체계라 할 수 있다.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사고력과 표현력을 기르고, 외부시험에서는 학습의 깊이와 완성도를 점검한다. 과정과 결과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 구조 속에서 학생들은 실용적인 배움과 깊이 있는 성장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스스로 탐구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배운 내용을 실제 상황에 적용하는 데 강점을 지닌 학생에게 특히 잘 맞는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며 성장하는 학습자에게 NCEA는 실용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배움의 기회를 열어 준다.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는 사고의 깊이와 국제적 시야를 함께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IB에서 글쓰기는 단순한 언어 능력을 측정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유를 확장하는 학문적 행위이다. 학생들은 “우리가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이를 논리적으로 탐구하는 과정을 글로 풀어낸다. 대표적으로 4,000단어의 Extended Essay와 Theory of Knowledge Essay가 있으며, 이는 하나의 연구 훈련에 가깝다. 학생들은 자료를 조사하고, 근거를 구성하며, 자신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IB의 글쓰기는 정확한 답보다 사고의 과정과 논리의 깊이를 평가한다. 따라서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고 탐구하는 데 흥미를 느끼는 학생에게 잘 맞는다. 글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다양한 관점을 탐색하며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고자 하는 학생이라면 IB는 사고력의 지평을 넓혀주는 훌륭한 환경이 될 수 있다. 다만 과정의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꾸준한 자기관리와 학습 습관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Cambridge는 영국식 교육 전통을 바탕으로 학문적 엄밀성과 체계적인 평가를 중시한다. 글쓰기는 여기서 논리적 사고와 지식의 깊이를 검증하는 수단이다. 학생들은 주어진 주제에 대해 명확한 구조와 논리로 에세이를 작성해야 하며, 논리 전개와 정확한 문장 구성이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된다. 따라서 글의 형식, 논리, 문법적 정확성, 적절한 어휘 사용 등이 모두 중요하다.
Cambridge의 학습은 단순한 글쓰기 훈련에 머물지 않는다. 과목별로 깊이 있는 개념 이해와 폭넓은 배경지식을 요구하며, 이를 제한된 시간 안에 논리적으로 정리해 내는 능력이 평가의 핵심이다. 평가가 시험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형식과 기준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매우 체계적이다.
분석적 사고력과 시간 관리 능력이 뛰어나고, 명확한 목표와 기준 속에서 학문적 완성도를 높이고자 하는 학생에게 특히 잘 맞는다. Cambridge의 글쓰기 교육은 대학 입시뿐 아니라 이후의 학문적 연구와 논문 작성에도 강력한 기반이 된다.
세 교육체계의 차이는 결국 글쓰기를 통해 무엇을 배우게 할 것인가의 차이로 이어진다. NCEA는 배운 것을 실생활 속에서 재구성하고 표현하도록 돕는 실용적이고 유연한 체계이다. IB는 글을 통해 사유하고 성찰하며, 지식을 스스로의 언어로 재해석하도록 이끈다. Cambridge는 논리적 엄밀함과 언어적 정확성을 바탕으로 사고의 명료성을 단련한다.
어느 체계가 더 좋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학생의 성향과 학습 방식에 따라 각기 다른 강점을 발휘한다. 스스로 탐구하며 표현하는 것을 즐기는 학생이라면 NCEA, 깊이 있는 사유와 자기성찰에 강한 학생이라면 IB, 구조적 사고와 논리적 글쓰기에 자신 있는 학생이라면 Cambridge가 잘 맞는다.
글쓰기는 단순한 평가의 수단이 아니라 사고를 확장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어떤 교육체계를 선택하든, 학생들이 글을 통해 스스로의 생각을 표현하고 성장할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학습의 성과일 것이다.
전정훈 원장
Edu-Kingdom College, North Shore
newcan11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