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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 달이 될 용기
호랑이, 어머니, 아이들! 옛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사건, 때로 소품들까지도 하나하나 모두 허투루 등장하는 법은 없지만 특히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아주 굵직하고 명징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중 호랑이는 큰 힘과 최대 권력자, 기득권, 갑, 가부장 등의 횡포와 강압, 폭력 등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야기 속에서 아이가 “아버지에게 혼난다”고 말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 말이 가장 핵심적인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많은 옛이야기가 그렇지만 이 이야기 안에서도 아버지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존재할 뿐이다. 무명을 매고 아이들을 돌보는 어머니는 경제적 책임과 육아 등 모든 것을 담당하고 있지만, 가정 안에서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는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호랑이보다도 더 크고 무섭다.
아이들에게 호랑이는 어쩌면 마주하고 싶지 않은 가부장적인 아버지라고도 할 수 있다. 그 폭력적인 아버지 또는 호랑이는 묵, 함지, 어머니, 아기까지 다 빼앗거나 아주 잡아먹어 버린다. 그들은 호랑이가 아이들을 속인 것처럼 거짓말을 하거나 사기를 치기도 하고, 공포와 협박으로 강탈 또는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어머니를 잡아먹는다는 것은 인격적 말살뿐 아니라 생각과 판단조차 죽여 버리는 일이다. 어머니는 곧 호랑이 남편의 로봇이나 인형과 같은 존재로 그의 폭력과 위협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 집안의 희생자 또는 헌신하는 어머니나 여성은 현실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인물이다. 평생 돈 한푼 벌지 않고 집안일을 담당하는 것도 아니면서 아내가 벌어온 돈을 도박으로 몽땅 날린 남편, 근근이 하루벌이를 하며 가정을 지탱하는 아내를 두고 집안을 돌보기는커녕 술집여자에게 아내가 번 돈을 매번 다 갖다 바치는 백수 남편, 술만 마시면 온 집안을 부수고 가족들을 폭행하는 남편, 심하게는 등촌동 전처 살해사건 등이 딱 그 예에 속할 것이다.
그리고 호랑이의 모습은 가정뿐 아니라 악질적인 갑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기도 하다. 대한항공 일가족의 갑질이나 정회훈 모건스탠리 지사장의 갑질 또한 막말과 행동의 수위가 매우 위험하지만, 특히 양진호 회장이 직원들과 모 교수에게 한 행위,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불법영상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성폭력 피해자들의 불법촬영물을 유작으로 상품화하는 행위, 법조계와 손을 맞잡고 함께 약자들에게 행한 차마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저질스럽고 비열한 행위들은 을들의 몸과 맘 모두를 마비시킨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