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중에 가장 맛있는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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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중에 가장 맛있는 사과

0 개 2,413 김지향

몇 년 전에 돌아가신 형부는 여러 개의 사과가 있다면 그 중 가장 맛있는 사과부터 먹으라고 했다. 아깝다는 생각에 맛없는 것부터 먹다 보면 결국 맛있는 사과는 못 먹게 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아무리 맛있는 과일도 아무리 예쁜 꽃도 시간이 지나면 상하고 시들기 마련이다. 아무리 변하지 않는 옷이더라도 아끼느라 못 입다 보면 결국 싫증이 나버리던지, 유행이 바뀌어 버려서 안 입게 된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좋은 건 아끼느라 못 쓰게 되고, 맛있는 것도 시기를 놓치고 나서 먹기가 일수였다. 매 순간 그 순간의 나 자신을 위해 즐기는 게 몸에 배지 않아서 그런 거 같다. 이제부터는 절대로 안 그러리라 다짐하면서도 몸에 밴 습관은 버리기가 힘이 든다.


오늘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난 형부의 사과 이야기가 떠올랐다. 지금 이 순간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그 일을 오늘은 꼭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나 자신을 위한 일을 미루지 않고 먼저 하기로 작정을 했다.


나의 미루는 습관은 꽤 오래 된 고질병과도 같다. 어떤 사유건 내가 미뤘으면서 남의 탓으로 돌린 것들이 대부분이다. 어쨌거나 미룬 당사자는 나 인 것 아닌가. 상황이 어찌 되었건 미루는 선택을 한 건 바로 나 자신이었던 것이다.


시대적으로 보나, 한국의 문화로 보나, 나에게 핑계거리는 무한히 많았다. 핑계를 대려면 한도 끝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내가 나를 사랑하고 굳건히 지키면서 나 자신을 위해 살았다면 나는 늘 내게 가장 좋은 조건을 내 스스로 만들어 가면서 살았을 것이다.


나는 많은 내 또래들보다 좋은 조건에서 자란 편이다. 아무리 많은 형제들 속에서 남아선호 사상 속에서 치일 수밖에 없었다 할지라도 내가 나 자신을 깊이 사랑했다면 나를 제대로 이끌어가면서 후회 없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지나간 과거는 지금이 되기 위한 준비였으며, 그때가 있었기에 지금이 있는 것이니, 그때의 나 자신을 존중하면서, 지금 이 순간에 그때의 나를 토닥이고 쓰다듬어 주고 있다. 그때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으니 말이다.


미국에 사는 내 친구는 자주 자신의 좋은 운에 대해 감사하는 말을 전한다. 자신에게 일어난 지난 모든 일들을 운이 좋아서 된 것으로 말을 하지만, 그 친구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삶을 위해 노력했었던 것이다.


이제껏 운 좋게 잘 살아왔는데, 앞으로의 운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 하는 그 친구에게 자신의 앞날은 이제껏 살아온 그 이상으로 운이 좋을 거란 말을 해주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받아야할 선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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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인의 가든에 가서 꽃들을 보면서도 배우는 것이 많다. 꽃도 사과처럼 싱싱한 순간이 오래 가지 못한다. 내가 그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정말 무척 짧은 것이다. 지인이 왜 자신의 가든에서 꽃을 잘라서 꽃꽂이 수업에 쓰라고 한 지 이해가 갔다.

워낙 외일드한 가든이라서 어떤 꽃들이 어디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지 제대로 알기도 힘들거니와 그 중 몇 송이를 잘라도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잘라서 꽃꽂이 해 놓은 꽃들이 비바람과 따가운 햇볕 아래에 있는 꽃들보다 더 오래 가고 있었다.


분홍빛이 아름다운 일본 모과나무만 해도 너무 예뻐서 꺾기가 미안했었다. 하지만 견물생심이라고 결국 가지 몇 개를 자르고야 말았다. 그렇게 자른 나뭇가지로 꽃꽂이를 해 놓고 사흘이 지난 후에 그곳에 가보니, 그 아름다웠던 꽃들이 벌써 예전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숍에 꽃꽂이를 한 꽃들은 그때의 그 모습 그대로인데.......


그런데다 얼마나 많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던지, 내가 가지치기를 잘 해준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숍에 장식이 된 꽃가지들은 한 달 동안 쇼 윈도우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던지, 지나가던 행인들이 갔던 길을 멈추고 되돌아와서 한 참을 들여다보고는 가곤 했다. 하물며 숍 안에 들어와서 진짜 꽃이냐고 물어보고 가는 이들도 있었다.


한 달이라는 긴 기간을 어쩌면 그렇게 예쁘게도 꽃을 피우면서 서 있던지. 숍의 환경이 꽃들에게 좋은 환경인거 같다. 직사광선이 직접 닿지 않으면서도 환하고, 온도 역시 적당한 것 같다. 


이 나무 뿐만 아니라 정원에서 옮겨온 모든 식물들이 정원에서보다 훨씬 더 오래 갔다. 꽃꽂이 하다가 남은 수국은 물속에서 뿌리를 내려 손톱 보다 더 작은 꽃망울을 맺고 있었다. 이 수국은 조금 더 뿌리를 내리면 화분에 옮겨 심을 예정이다.


수국은 물만 있으면 아주 잘 자란다는 걸 꽃꽂이를 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다. 올해 2월에 꽃꽂이 하면서 침봉 가리개로 꽂았던 아주 짧은 수국 가지가 있다. 다른 꽃가지와 잎들은 다 시들어서 버렸는데, 이 녀석은 시들지 않고 있었다. 


시들지도 않은 식물을 버릴 수가 없어서 매번 꽃꽂이할 때마다 사용하다가 물병에 꽂아두게 되었다. 어느 날 물을 갈아주다 보니, 가는 뿌리가 나고 있었다. 가는 뿌리가 제대로 자리를 잡자 작은 화분에 그 녀석을 옮겨 심었다. 아주 작은 새잎이 돋더니 앙증맞은 꽃을 피워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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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꽃꽂이 하고 남은 이 수국은 자른 지 얼마 되지도 않은데 벌써 뿌리를 내리고 작은 꽃망울까지 맺은 것이다. 이 녀석은 정원에 심을 예정이다. 꽃꽂이로 한껏 내 마음을 즐겁게 해주더니, 그것도 모자라서 뿌리까지 내려 우리 집 정원에 자리를 잡으려 하는 수국이 참으로 고맙고도 고맙다.


지인의 가든은 보물창고와도 같다. 자신의 보물창고를 흔쾌히 내 준 지인이 마냥 고맙기만 하다. 지인 또한 내가 자신의 가든 꽃으로 꽃꽂이 하는 것을 보면서 흥겨워 한다. 숨어 있는 보물들을 찾아 빛나게 해주는 내가 마냥 신기한가 보다.


사과나 꽃이나 그 어떤 것이나 가장 싱싱하고 좋을 때 사용해야 한다. 생명력이 없는 옷 역시 마찬가지이다. 너무 좋아서 아끼느라 입지 않고 벽장에 두고 있다 보면 유행이 지나가서 입지 못하게 되던지 실증이 나서 입지 않게 되어 버린다.


형부 생각이 옳았다는 걸 예전에는 인정하지 않았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 이 순간 희생하고 참는 게 덕으로 여겨졌었기에, 형부의 말을 한 쪽 귀로 듣고 다른 한쪽 귀로 흘려버리곤 했었다.


지금은 형부의 그 말에 크게 공감을 한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나에게 가장 좋은 선택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산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며, 가장 좋아하고 편한 사람들과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서로에게 가장 좋은 선물인 ‘정’을 주고받으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요즘 나의 이런 바람이 바람이 되어 내 주위를 돌고 있다. 숍 밖의 풍경에서도 거리를 지나가는 행인의 모습에서도 숍 안에 들어오는 손님들의 얼굴에서도 나의 바람이 엿보인다. 


사과 중에 가장 맛있는 사과를 먹을 때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 그 느낌이 내 삶 속에 충분히 지속되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꿈같은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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