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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소박이 (4)

Young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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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IMF의 직격탄을 맞았을 때 남편은 다니던 자동차부품 생산 공장이 문을 닫게 되면서 실직자가 되었다. 갈피를 못 잡던 남편은 이것저것 알아보며 시도해보았지만 비축해 놓은 돈만 다 날리고 말았다. 다급해진 남편은 택시회사에 취직하여 택시운전을 했다. 택시운전사가 된지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개인택시가 자유롭고 노후보장이 된다는 말을 믿고 개인택시를 사들였다. 


비싼 권리금 때문에 빚까지 얻었다. 개인택시 운전을 시작한 지 3개월쯤 된 어느 날, 늦은 밤에 무단횡단을 하는 행인을 피해 급하게 핸들을 꺾다가 마주 오는 트럭을 들이받고 튕겨나가 전신주에 부딪치고 길가의 웅덩이에 처박히는 대형교통사고를 내고 말았다. 중환자실에서 반년을 보낸 남편은 치료비만 빚으로 남긴 채 마흔 아홉으로 세상을 떠났다. 


서른아홉의 경애에게도 세상이 끝나는 것과 같았다. 졸지에 과부가 되고, 알거지가 되고, 빚쟁이가 된 경애에게 시어머니는 쌍 아홉수가 악수(惡數)라고 한탄하면서 살던 시골집과 손바닥만 한 논밭 떼기를 모조리 팔아 아들 병원비를 청산하는데 보탰다. 경애는 살고 있던 아파트를 팔아 빚을 대충 갚고 전셋집을 얻어 시어머니와 합쳤다. 진수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주유원, 슈퍼마켓 판매원 등을 거친 끝에 있는 돈을 긁어모으고 동생 경주의 도움으로 신림동에서 조그만 피자가게를 운영하게 되었다. 피자가게 운영이 자리를 잡아갈 무렵 지친 몸과 마음을 의지할 데가 필요했다. 같은 건물의 3층에 있는 교회에 예배가 없는 시간에 조용히 앉아 있곤 했다. 그렇게 교회에 나가면서 만나게 된 놈이 ‘개새끼, 배라먹을 짜식’ 한성조이다. 


겨우 추스르는 자신의 삶을 헝클어 버린 놈. 교회의 부목사였고 경애와는 동갑내기였다. 워낙 성실하여 신도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았던 놈이다. 그런 놈이 충청도 어딘가에 개척교회를 차려서 나가게 되었다. 


본교회의 신도들은 유능한 젊은 부목사가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 받아 또 하나의 역사(役事)를 이루어내는 것을 기뻐하며 축하했다. 자발적인 모금으로 돕기도 했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개새끼’가 은밀하게 경애를 찾아왔다. 개척교회 근처에 공원묘원으로 적합한 부지가 나왔는데 사정에 의해 급매로 나온 것이라 시세의 반값이라고 했다. 그 땅을 사들여서 개척교회 소속의 공원묘지 조성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분양만 되면 이자를 두둑이 쳐서 반환하겠다면서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개새끼’는 하나님의 사업이니 몇 배의 축복이 내려지리라고 했다. 경애는 의심하지 않았다. 오 년 동안 피자가게를 해서 모은 5천만 원을 내밀었다. 두둑하다는 이자는 사양했다. 시어머니께 시골집과 농사지을 땅을 마련해드리려던 돈이었지만, 하나님의 일부터 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했다.



그 일이 있기 두 해 전 본 교회가 세 들어있는 빌딩 근처에 각층에 2개씩의 가게가 있는 5층짜리 건물이 매물로 나왔었다. 교인들은 그 단독빌딩을 구입해서 장차 부대사업을 해가면서 교세를 확장해보자는데 의견을 모으고 비축된 자금 점검에 들어갔다. 1층에 있는 두 개의 가게를 처음엔 월세 대신 전세로 세를 놓았다가 몇 년이 지나 여유가 생기면 월세로 돌리기로 합의했다. 각각 5천만 원씩 전세금을 받으면 일단 1억이 확보되므로 부족한 자금을 채우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때 경애가 가게 한 개를 계약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했다. 운영하고 있는 피자가게를 옮길 작정이었다. 교회 측은 빌딩 구입을 위한 대차대조표를 맞춰가며 이리저리 자금을 규합해보았지만, 불황의 끝인 데다 자금이 넉넉하지 않은 상태여서 아직은 무리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결국 그 시도는 무산되었다. 그러나 경애의 자금상태가 드러난 계기가 되었다.


‘개새끼’의 공원묘지 조성사업이 시작되고, 잘 되어가리라 기대하고 있을 때 교회가 발칵 뒤집혔다. 많은 신도들이 관여하는 그 일에 마(魔)가 끼어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그 일이 모두가 사기였다. 상황이 돌변했다. 이자 없이 준 이유가 경애의 입장을 더 곤란하게 만들었다. 


경애가 ‘개새끼’와 배를 맞춰가며 벌인 사기극이니 ‘개새끼’의 은신처를 대고, 돈을 갚으라고 경애를 몰아붙였다. 헛소문은 진실처럼 굳어져갔다. 아무리 아니라고 한들 소용이 없었다. 혼자 사는 점, 동갑나기라고 다른 사람보다 좀 더 친하게 지낸 점, 심지어 이자 없이 큰돈을 준 점까지 모두가 경애를 공범으로 몰아세우는 강력한 증거가 될 뿐이었다. 


한 덩어리가 된 교회 측 사람들은 경애를 고소하고 싶지만 교회의 일이라 고소만은 참아주겠다고 하며 윽박질렀다. 정작 법으로 호소하고 싶은 사람은 경애였다. 돈을 떼인 것에 더하여 단 한번도 ‘개새끼’와 미래를 속삭여 본 일이 없는데, 추잡한 소문으로 덮씌워진 것이 감당할 수 없는 천길 나락이었다. 


너무나 억울했다. 죽어버리고 싶었다. 어린 진수는? 그리고 시어머니는? 더러운 누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죽을 수가 없었다. 세상 끝까지라도 뒤져서 ‘개새끼’를 찾아내어 목을 따버리고 말겠다고 작정했다.


제임스의 예약 파티를 무사히 치르고 특별한 일 없이 흐르는 나날에도 가을은 저 혼자 익어가고 있다. 저녁식사타임 준비를 시작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경주의 국제전화였다. 섬뜩한 예감이 들어 핸드폰을 들고 뒤뜰로 나간다.


“언니, 진수가 돈을 가져 왔어. 언니에게 돌려주라는 거야.”


수월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 예감은 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작년부터 이메일을 보내도 답이 없더니 언제부턴가는 이메일마저 반송되었으니까.


“제 힘으로 하겠대. 내가 주는 것도 안 받아. 그동안 알바를 계속했었던 모양이야.”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다. 그깟 3천불에 어미 자격을 사려고 했다니. 힘이 빠져나가는 몸을 울타리에 기댄다. 마지막 발산을 하고 있는 크리스티 피츠 파크의 붉고 노란 나뭇잎들이 수천 수 만개로 흩날려 보인다. 이번 겨울은 따뜻할 것 같던 예감이,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얼마 전의 기대가 일순간 노랗게 부서져버린다.


그 날, 저녁일 끝내고 한씨아줌마와 마주앉아 처음으로 속사정을 대충 털어놓는다.


“너무 실망할 것 없어. 천륜은 쉽게 끊어지지 않아. 진수도 그만하면 잘 버텨낸 거야.”


그 말을 들으니 진수가 견뎌냈을 그 고통이 경애 자신의 고통보다 더 컸으리란 생각에 마음이 저려온다.


“누가 알아? 한식 전공한 진수가 엄마를 찾아와 최고의 맛을 내는 오이소박이 밥상을 차려낼지··· 알 수 없는 일이야.”


희극 같은 그 말이 경애의 마음을 옭아매기도 했지만 열리게도 해준다. 그래 맞아. 지금까지 견뎠는데 조금만 더 견디자. 견디면서 나도 이 코리아타운에서 오이소박이를 한국음식의 대표주자로 만들어봐? 순간적이긴 하지만 뜻밖의 심경 변화에 경애 스스로도 적잖이 놀랐다. 그렇게 마음을 가라앉혀 가고 있을 무렵이다.


“진수엄마. 이번 목요일에 나와 주면 안 될까? 꼭 모셔야 할 손님 한 분이 있어서...”


목요일은 경애가 두 주 만에 하루씩 쉬는 휴일이다.


“그 은혜 내가 배로 갚을게. 응?”


한씨아줌마가 어울리지 않는 애교를 섞는다.


“중요한 사람인가보죠?”


“우리 교회에서 운영하는 너싱홈에 작년에 들어온 분인데… 따져보니 우리 남편의 먼 친척뻘 되는 분이더라구.”


“……….”


“약 중독에 골수암까지, 너무 늦게 발견된 거야… 요즘 자꾸만 한국음식을 실컷 먹어보고 싶다는 거야. 왜 영혼의 음식이라잖아. 한식 하면 오이소박이, 오이소박이 하면 진수엄마잖아.”


“……”


“음식으로 공덕 쌓는 일이야.”


“공덕은 무슨. 알았어요.”


■ 권 천학  <시인 • 국제 PEN 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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