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 냐 ‘천천히’ 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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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빨리’ 냐 ‘천천히’ 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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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방주 

 

오늘은 바리나시로 가야 한다. 석가모니 탄생지인 룸비니에서 힌두교의 성지 바리나시까지는 340km라고 한다. 열두 시간을 가야 한다는 현지인 가이드의 설명이다. 우리나라라면 서너 시간이면 충분하다. 시간을 예정할 수도 없는 것이 인도의 도로 사정이다. 축지법을 쓰더라도 시간을 단축할 꿈을 꾸지 않는 것이 인도 사람들이다. 

 

어이없는 것은 현지인 가이드의 생각이다. 한국의 ‘빨빨문화’가 오히려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은 ‘빨리빨리’ 라는 생각 때문에 오늘날 경제적 풍요를 이루었을지 모르지만 그에 비해 과연 행복하냐는 반문이다. 인도는 조금 가난하더라도 천천히 영 있게 살면서 행복을 누린다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초코파이를 먹어보지도 못한 사람이 그 맛이 그리워 불행해지겠냐?’ 나도 승용차를 타기 전에는 고급 승용차를 그리워할 줄 몰랐다.

 

차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널을 뛴다. 느닷없이 급정거도 한다. 소가 어슬렁거리며 지나간다. 인도는 소도 걸음이 한우보다 느리다. 우리도 이제 천천히 일하며 살아도 될 텐데 왜 ‘빨리빨리’ 하다가 그것도 모자라 ‘빨빨’이 입에 뱄을까? 그렇게 돌아보고 있는데 점심시간에 가이드의 한 마디가 다른 때와 영 다르다.

 

 “빨리빨리 많이 드세요.”

 

비아냥거림인지 부러움인지 묘한 여운이 남는다. 그런데 그 말 참 어색하다. 왜 어색할까. ‘천천히 많이 드세요.’  ‘차린 것은 없지만 천천히 많이 드세요.’ 이게 우리 말이다. 일할 때는 ‘빨리빨리’이고 먹을 때는 ‘천천히’ 이다. 일할 때는 ‘천천히’ 이고 먹을 때는 ‘빨리 빨리’인 이 사람들과 다르다.

 

우리나라의 ‘빨리 문화’는 사계절이라는 다양한 변화에 맞추어 사느라 생겨났다. 사계절에 따라 농사도 다양하고, 이십사절기에 따라 때맞추어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서둘러야 한다. 때를 놓치면 콩밭 잡초 속에서 호랑이가 새끼 치게 되고, 가을엔 콩이 튀어 버리고, 한두 시간만 늦어도 깨밭에 허옇게 참깨가 쏟아진다. 하룻밤만 지나도 가을무가 서리를 맞고 붉은 고추는 희아리가 된다. 때를 놓치면 곪고, 고세고, 마르고, 얼고, 어혈 먹고, 희아리 되고, 튀고, 쏟아져 버린다. 늑장 부리면 비를 맞추고 가뭄 탄다.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에서 ‘빨빨 문화’가 생겨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할 때는 ‘빨리빨리’이다.

 

서로 권농하는 마음으로 ‘빨리빨리’ 하다 보니 농사 아닌 일도 서두르게 되었다. 그 대신 먹을 때는 여유를 부린다.  ‘찬찬히 많이 드세요.’ 한다. 천천히 먹어야 건강하다. 정성을 다해 조근조근 먹어야 제맛을 안다.

 

제때 빨리빨리 농사져서 찬찬히 먹는 게 우리 문화이다, ‘빨리빨리’라고 비아냥거리는 남에게 기죽지 말자. 우리는 빨리빨리 일해서 천천히 잘 먹고 잘사는 슬기로운 민족이다.

* 출처 <수필과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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