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아래 여러 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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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붕 아래 여러 가구

0 개 1,724 김지향

뉴질랜드 생활 20년 동안 좌충우돌 정신없이 세월을 보내다가 보니, 어느덧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다. 정부의 지원과 세월이 아이들을 키우는데 큰 후원자 역할을 했다. 감사하다.

 

지금 둘째는 오클랜드에서 살고 있고, 큰애와 막내는 우리 부부와 함께 한 지붕 아래서 지내고 있다. 대학 다닐 시절에는 모두들 나가서 지냈지만, 요즘은 모여 살며 각자의 생활을 즐기고 있다. 둘째만 오클랜드에서 지내고 있는데, 짝을 찾아 만족한 생활을 하는 것 같아 내 마음 또한 무척 흐뭇하다.

 

파미 사람이 다 된 나. 왕가누이에 가서도 지내봤고 웰링턴에서도 잠시 지내 봤지만, 파미가 나에겐 제일이다. 우물 안 개구리가 따로 없다만, 파미가 고향이 되어버린 걸 어쩌랴? 그냥 우물 안 개구리로 만족하면서 살련다.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생활은 단순하기 짝이 없다만, 오히려 그 단순함이 평화로워서 좋다. 젊어서부터 꿈 꿔 온 보헤미안의 생활을 지금부터 즐기게 된 것을 자축하면서 가만히 지난날을 돌이켜 본다.

 

단무지. 단순 무식 지극정성을 모토로 하고 뉴질랜드 땅을 밟았다. 단무지로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고 지극정성의 삶은 나하고는 한참 거리가 있었다만, 그러면 어떤가? 지금 나는 짝퉁 단무지로 보헤미안의 삶을 즐기고 있지 않은가?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나에게 주어진 행복을 즐기면서 혼자 놀아도 재미있고, 둘이 있으면 더 재미있고, 셋이면 더 좋고, 여럿이 모이면 그 나름대로 신이 나고.......

 

며칠 전에 큰애 친구가 찾아왔다. 시내에 나가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갑자기 들렸다던데, 무척 반가운 손님이었다. 

 

큰애가 파미에 와서 제일 먼저 사귄 친구가 있다. 키위지만 동양에 대한 동경이 크다 보니, 대학 졸업 후 일본에서 3년 동안 지내다 왔으며 지금은 한국인과 결혼하여 우리 집 가까이 살고 있다. 

 

맞벌이를 하는 부부로 아들을 낳아서 키우고 있는데, 아직 두 살도 채 안 되었으니 귀여운 만큼 힘도 많이 들 것이다. 어떻게 아이 셋을 다 키웠느냐고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여섯을 키운 우리 엄마가 그리워진다. 지금쯤 좋은 곳에서 행복하게 사시겠지.

 

급하게 아기를 맡길 일이 생기면 우리 집에 오라고 했다. 아기와 함께 노는 일은 힘든 만큼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니까. 마침 우리 집 잔디가 무성하게 자란 걸 보더니, 잔디를 깎아 주겠다고 했다. 손가락을 다친 남편과 바쁜 큰애의 짝을 배려한 말이었다. 텃밭의 부추와 깻잎도 가져오겠다고 했다.

 

두 사람이 열심히 일하면서 아기를 키우는 게 너무 예뻐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고 했었던 것인데, 오히려 내가 도움을 받게 되어 고마웠다. 사는 게 바로 이런 것인 거 같다.

 

방이 많은 우리 집은 놀리는 방이 하나도 없다. 우리 부부와 큰애 커플, 그리고 막내 이렇게 다섯 명이 살면서 두 방을 비앤비로 활용을 한다. 복잡할 것 같아 보이지만, 아주 조용하다.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늘 떠들썩하겠지만, 어른들만 사는 집인데다 여행객들이 조용히 머물다 가는 곳이라서 한적하기 짝이 없다.

 

큰애 커플이 그들의 집을 장만하기 전까지 한 집에서 서로 도우면서 함께 살기로 했는데, 젊은 사람들이 어른들과 함께 사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런데다 투숙객들까지 있으니 보통 마음으로 지내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기특하게도 아주 잘 적응하면서 지내고 있다. 그럴 수 있는 것은 꿈이 있기 때문이리라.

 

나에게 있는 것이라곤 융자 낀 집 한 채. 겨우겨우 버텨냈었던 이민생활 속에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고, 이뤄낸 것은 하나도 없으나 가족 간의 사랑은 잃지 않고 지켜낸 거 같다. 남의 나라에서 사느라 하는 것마다 실수요 실패였다. 그러나 그 실수와 실패가 우리 가족의 사랑을 돈독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대학 생활을 했었던 큰애의 짝에겐 여러모로 힘들고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일하면서 영어 공부를 해야 하고, 영주권을 얻기까지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그런 와중에도 IELTS 점수를 6.5나 받은 것이다. 얼마나 기쁘던지.

 

계획대로 현명하게 일을 추진하는 큰애 커플을 보면서 흐믓함을 넘어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부부는 우리대로 그들은 그들대로 각자의 삶을 한 지붕 아래에서 살고 있으면서, 오해를 이해로 바꿔나가면서 서로 배려하고 사니, 우리는 우리대로 그들은 그들대로 서로의 행복을 이뤄나가고 있는 것이다.

 

2019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학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이 더 합리적인 생각으로 살아간다고 했던 것처럼, 우리 집 역시 최선의 방법으로 합리성을 찾았기에 이렇게 서로의 꿈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전진 할 수 있다고 본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란 격언이 있다. 외국 생활은 특히나 더 그렇다. 성인이 되는 순간 부모와 떨어져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게 뉴질랜드의 문화지만, 상황이 안 되면 서로 뭉쳐서 살 수밖에 없다.

 

요즘 내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글을 쓰는 일이다.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하루하루 반성과 더불어 자존감을 키워나가고 있다. 지난 60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던, 60년의 경험이 헛된 것은 아니다. 그 경험을 밑바탕으로 건강을 잘 다스리면서 내 꿈을 이뤄나가야겠다.

 

이래저래 감사하다. 여러모로 감사하다. 내가 지금 이 시대의 주역은 아니지만, 나 나름대로 내가 할 일을 하면서 이 시대를 함께 해나갈 수 있음에 감사하다. 혼자 살 수 없는 사람으로 태어났음에 감사하다. 우주와 연결이 된 우리 모두에게 감사하다.

 

오늘도 나는 전체이면서도 부분인 나와 우주와의 관계에 감사하면서 우주 안에 있는 모든 존재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 감사하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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