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背理)를 견디기 혹은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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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背理)를 견디기 혹은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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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론적 배리를 견디는 운명

사회적 배리에 저항하는 숭고성

정치가 일상이 되어야 하는 이유

배리(背理)를 경험하지 않을 때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모든 것이 논리대로 돌아갈 때 세상은 평안하다. 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날 때, 세상은 의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고향처럼 편안하며 복잡한 생각이 필요 없는 공간이고, 도래할 미래의 모습을 예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런 세상이, 그런 세계가 분명히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저마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논리적 일관성이 지배할 내일을 기대하며 산다. 

 

그러다 엉뚱한 일이 터질 때가 있다. (인간의 머리로서는)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 터질 때, 우리는 세계가 일관성이 아니라, 전혀 다른 논리의 동시적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기도 함을 확인한다.

 

철학은 이런 지점에서 시작된다. 가난한 성직자의 아들이 군에서 휴가를 나와 아버지를 도와 수련회를 갔다가 익사한 사건을 접할 때, 우리는 ‘도대체 왜?’ 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 독재자가 골프채를 들고 ‘푸른 초장’ 에서 더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볼 때, 그리고 그 옆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들을 볼 때, 우리는 또 ‘도대체 왜?’ 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궁극적인 진리를 찾기 위해 질문을 멈추지 않았던 소크라테스에게 죽음의 독배가 주어질 때, 세상은 갑자기 낯설어지고, 이해 불가능한 대상이 된다. 죽어라 일하며 위법이라고는 손톱만큼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 평생 극단적인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례는 너무나 흔하다. 권선징악의 원리가 오로지 판타지가 될 때, 그리고 그것을 개인 단위 혹은 사회•국가 단위에서 경험할 때, 세상은 불신의 대상이 된다.

 

사실 문학이나 철학은 세계의 이와 같은 배리성에 대한 탐구다. 세계가 간단한 원리로 설명이 가능하고, 또 그런 원리에 의해 정확히 가동될 때, 세계는 더 이상 탐구나 질문의 대상이 아니다. 루카치의 표현처럼 “하늘의 빛나는 별들이 세상의 모든 길을 비추는” 시대는 얼마나 행복한가. 그는 서사시의 시대를 그렇게 정의하지만, 그리고 “행복한 시대는 아무런 철학도 갖지 않는다”는 그의 주장은 옳지만, (미안하게도) 그런 세계는 처음부터 없었다. 너무나 행복하여 철학이 필요 없던 시대가 도대체 언제 있었단 말인가. 그것은 악몽의 20세기에 루카치의 노스탤지어가 빚어낸 판타지에 불과하다. (신학적) 낙원에서 쫓겨난 이래 인류는 그 자체 배리적 존재가 되었으며, 그들이 운영하는 세계도 수많은 배리들의 집합체이자 연속체가 되었다.

 

이렇게 보면, 산다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엄청난 배리들을 견디는 것이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는 것이 인생이라는 명제는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그러나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는 것이야말로 모든 피조물들에게 주어진 운명이다. 그것은 배제한다고 해서 배제되는 것이 아니므로, 존재론적 문제이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지극히 개인적 차원에서 순전한‘우연’의 폭력에 의해 일어나는 배리들은, 그 너머의 (신학적) 논리를 이해하기 전까지는 그냥 견디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그러나 이런 ‘우연성’ 외에 사회•정치적 차원에서 시스템에 의해 벌어지는 수많은 배리들 앞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견딤’이 아니라 강력한 ‘저항’ 이다. 존재론적 배리도 견디기 힘든 인간들에게 특정 집단에 의한 인위적이고 조직적인 모순•배리•폭력까지 견디라는 것은 인간의 품위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권면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정치가 ‘일상’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는 다양한 세력들 사이의 길항(拮抗)이며, 소수의 계급이 늘 그것의 헤게모니를 장악한다. 피라미드의 상위 5%가 나머지 95%의 존엄한 인간들의 권리와 능력과 희망과 미래를 온통 ‘말도 안 되는’ 배리로 만들 때, 저항하는 인간이야말로 숭고한 인간이다. 사회•정치적 배리가 숭고한 인간을 만든다.

여러 지면에서 언급했지만, 소위 ‘선진’ 대한민국에서 가장 후진 동네가 ‘정치’다. 그나마 다수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로 한국 정치는 겨우 바닥을 면하고 있다. 정치가 직업인 ‘정치가’ 들에게 기대할 것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선진 정치의 ‘모방’ 혹은 최소한의 ‘위장’ 조차도 못하는 정치가들의 노골적이고도 저급한 정치 앞에 국민은 절망하고 있다. 그래서 주말이면 온 거리가 자발적 시민들의 정치 행위로 넘치는 것이다. 직업적 정치가들이 눈먼 이기주의자들로 변할 때, 저항적 다중(多衆)이 정치를 대행한다.

 

* 출처 <중앙일보>

■ 오 민석 문학 평론가 단국대 교수 (영문학)

충남 공주 출생.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며 현재 단국대학교 영미인문학과 교수로 문학 이론, 현대사상, 대중문화론 등을 가르치고 있다. 1990년 월간 <<한길문학>> 창간기념 신인상에 시가 당선되어 시인으로 등단하였으며,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되며 평론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 <<굿모닝, 에브리원>>,  <<그리운 명륜여인숙>>,  <<기차는 오늘밤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다>>,   문학이론서 <<현대문학이론의 길잡이>>, <<정치적 비평의 미래를 위하여>>, 문학연구서 <<저항의 방식:캐나다 현대 원주민 문학의 지평>>, 대중문학 연구서 송해 평전 <<나는 딴따라다>>, <<밥 딜런, 그의 나라에는 누가 사는가>>, 시 해설 서 <<아침 시:나를 깨우는 매일 오 분>>, 산문집 <<경계에서의 글쓰기>>, <<개기는 인생도 괜찮다>>, 번역서 바스코 포파 시집 <<절름발이 늑대에게 경의를>> 등을 냈다. <단국문학상>, <부석 평론상> 등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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