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그 짭짤한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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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그 짭짤한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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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 혜숙 

 

토마토를 출고한다는 문자를 받고 농장의 홈페이지로 들어갔다. 겨울을 난 짭짤이 토마토는 그 맛이 일품이다. 부드럽게 녹아드는 약간의 짠맛이 입맛을 확 끌어당긴다. 여러 해째 단골 농장은 토마토를 수확하는 첫날, 어김없이 달달한 소식을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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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 짭짤이 토마토 한 상자가 생각보다 비싼 가격이었다. 한참을 망설였다. 토마토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남편도 이것만큼은 오독오독한 맛이 남는다고 접시를 말끔하게 비우곤 했다. 나 또한 탱글탱글한 육질에 반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 간간짭짤한 맛을 입이 아니라 머리로 그리는 데도 어느새 익숙하다.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에 농장주 아들의 생일 기념으로 완숙 토마토를 특별가로 올렸다. 짭짤이에 비하면 값이 싸서 거저 가지는 기분이었다. 두돌잡이의 얼굴이 화면에 떴는데 오동통하고 볼그레한 볼이 바로 토마토였다. 생일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마우스를 끌어다 꾹 눌렀다. 완숙 토마토 두 상자가 내게 뚝딱 떨어졌다. 또 짭짤이 토마토는 다른 사람이 맛보도록 선물용으로 두 상자를 힘껏 눌렀다. 

 

친척언니의 신접살림을 구경하고 온 어머니는 “살림살이가 어쩌나 짭찔맞은지, 아이고 너거 언니는 재주가 참 용하제” 몇 번이고 그 짭짤함을 강조하셨다. 그리고 언니가 차려내온 밥상도 아주 정갈스러웠다며 손끝마저도 짭짤맞다고 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야물고 옹골찬 살림과 함께 밥상도 그랬다는 뜻이었다. 그러면서 무엇이든 얼렁뚱땅 해치우는 짭짤찮은, 혼기가 꽉 찬 딸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완숙 토마토 두 상자가 도착하자마자 대부분의 시간을 부엌에서 보냈다. ‘네 음식솜씨가 그만하면 짭짤맞구나.’ 살아계셨더라면 어머니의 이런 칭찬이 듣고 싶어 ‘빨간 토마토 레시피’ 라는 요리책도 함께 구입을 했다.

 

익은 토마토의 육감적인 모양새와 함께 싱싱함이 넘쳐 무슨음식을 해도 제맛을 그대로 살렸다. 주스는 기본이고 삶고 찌고 굽는 일로 분주했다. 햇양파와 부추, 신선한 들기름을 넣어 샐러드를 만들었다. 샌드위치에도 토마토는 빠질 수 없었다. 올리브를 둘러 오븐에 살짝 굽거나 치킨이나 소고기와 함께 어울려 내는 맛도 그만이었다. 해산물을 넣은 토마토스튜에도 빠질 수 없었다. 그라탱이나 피자위에서도 컬러풀한 기운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풍부한 일조량을 받아 질펀한 빨강을 과시하는 토마토는 얼치기 살림꾼에게 짭짤한 재미를 가져다주었다. 슈퍼푸드의 대명사로 온 세상에 알려졌으니 식구들의 건강을 챙기는 꽤 괜찮은 주부로 보이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완숙토마토에 푹 빠져 외출도 뜸한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지난번 만났을 때 스페인여행을 계획 중이라고 귀뜸을 했었다. 그런데 세계적인 토마토 축제인 스페인의 ‘라 토마티나’ 축제에 맞춰 팔월에 같이 떠나자고 했다. ‘라 토마티나’ 축제는 120여 년을 이어온 스페인의 대표적인 축제다. 토마토를 던지고 맞는 광경이 거의 전투에 가깝다. 왜, 무엇 때문에 그 싸움판에 가느냐고 따지려다가 그만두었다.

 

내가 동네 축제에도 무관심한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는 그녀에게 ‘무엇때문에’ 같은 질문은 불필요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일부러 피해 다니고 어깨 들썩이는 가무 현장도 맥쩍어서 싫어하는 성격이다. 흥겨운 자리도 내가 끼이면 단번에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태생이 그러한데 축제라니 그것도 스페인까지나. 나 홀로 축제에 빠져 입과 눈, 마음도 한껏 고무되어 ‘라 토마티나’ 같은 세계적인 축제도 시답지않게 들렸다.

 

토마토가 거의 바닥을 보이자 스페인식 수프를 끓였다. 내 축제의 초대손님을 위해서다. 약간의 우울증이 찾아와 칩거 중인 인생 선배를 간곡한 뜻을 담아 초대를 했다. 된장이며 고추장 담는 법을 전수해 주었고 이해와 관용의 폭을 넓히는 기술도 그녀를 통해 배웠다. 깊고 원만한 관계 맺기에 달인이었는데 노인이 되어가는 과정이 서러워 마음병을 얻었다. 하나씩 내려놓고 보니 살아가는 일이 새벽꿈과 같이 덧없이 느껴졌단다. 겁먹고 자신감을 잃어 세상살이마저 시들해졌단다. 그 마음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토마토수프 한 그릇으로 공허감을 달래주고 싶었다. ‘빨간 토마토 레시피’의 스페인식 수프는 토마토에 여러가지 야채를 넣은 차가운 음식이지만 나는 뜨겁게 끓였다. 토마토와 야채를 곱게 갈아 우유를 한 컵 넣고 끓이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맞추었다. 선배는 뜨끈한 끈기가 온몸을 감싸 탄성이 생긴다며 얼굴을 붉혔다. 새빨간 수프를 나누어 먹은 공감의 연대를 형성했으니 축제는 성공적이었다. ‘라 토마티나’ 같은 빨강이 폭발하는 축제가 아니라 그 빨강을 가만가만 어루만지고 달래고 가라앉히는 내 축제도 수프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오랜만에 농장 홈페이지로 들어가 본다. 아하, 끝물 짭짤이 토마토가 값이 확 내렸다.

 

얼른 한 상자를 찜한다. 여름을 맞이하려면 이 찰토마토를 좀 먹어줘야 할 것 같다. 완숙토마토와 달리 생으로 먹는 그 맛을 즐기고 싶다.

 

일찍부터 영토를 넓히고자 애쓴 스페인은 호전적인 나라다. 건강과 장수를 의미하는 토마토는 스페인에서는 빼놓을 수 없다. 스페인에서 토마토 요리의 진수를 맛보고 나면 푸드득 솟구쳐 올라 식어가던 심장이 다시 뜨거워지지 않을까. 빨갛게 혹은 간간짭짤하게 그렇게.                        

 

출처  <수필과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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