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층 아저씨와 이층 아줌마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성태용
명사칼럼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김도형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마이클 킴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조성현
전정훈
Mystery
커넥터
Roy Kim
새움터
멜리사 리
휴람
김준
박기태

일층 아저씨와 이층 아줌마

0 개 1,958 수필기행

적막이 찾아든 어둠 속에서 호루라기를 분다. 그 소리에 일층에서 ‘휘리리’ 답이 온다. 일층에는 남편이 살고 이층에는 내가 산다. 만약의 경우,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서로의 연락 수단으로 침대 머리맡에 호루라기를 두고 이렇게 가끔 연습도 한다. 요즘 우리 부부의 살아가는 모습이다.  

 

c9a9d5ada724f5548cb7de3cdd5cc2b8_1566869733_6116.jpg
 

얼마 전까지는 시어머니가 안방에 계셨고, 아들도 방 하나를 차지하여 집이 붐볐다. 시어머니께서 먼 길 떠나고, 아들도 장가들어 분가하니 넓은 집이 적막강산이 되었다.

 

원래 우리 부부는 이층에 살고 있었는데 남편이 일층 어머님 방에 내려가면서 일층 아저씨가 되었고 나는 이층 아줌마가 되었다. 밤에 담배 생각이 나서 컴컴한 계단을 더듬어 오르내리기가 번거로웠던 모양이다. 점차 옷과 일상용품도 나누어져 일이 층은 완전히 분리되었다. 처음에는 허전하고 어색하던 것이 점차 불편한 점 없이 익숙해져 오히려 편해졌다.

 

우리 둘은 다른 점이 많아 그동안 서로 맞추려고 노력하며 생활하였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잠자는 시간이었다. 한 사람은 저녁뉴스도 못 보고 꾸벅꾸벅 방아를 찧었고, 다른 쪽은 텔레비전에 애국가가 울려 퍼진 후에도 다른 채널까지 돌려보다가 자는 올빼미였다.

 

지금처럼 층별로 살다 보니 잠자는 시간의 어려움은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었다. 텔레비전 시청도 채널 다툼 없이 한 사람은 골프와 뉴스요, 다른 쪽은 눈물을 흘려가며 드라마 속에 파고 들어가 즐겨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게다가 나이가 들수록 커지는 코 고는 소리에 서로 수면 방해를 받지 않아도 되었다. 편안하게 옷을 걸치거나 말거나 이리저리 맘대로 뒹굴 수 있으니 이런 자유가 더는 없다.

 

이와 같은 생활은 신혼 시절에 숨소리, 눈빛, 얼굴색 하나 하나에 신경 쓰며, 상대 기분을 점치며 같이 웃고 화내며 살 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조금 늦게 들어와도, 길가는 여자를 쳐다봐도, 침대에서 돌아누워도 잔소리 포문을 열었다.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아야 하는 폭풍 같은 시기는 다 지나가고 먼 길 돌아와 누리는 평온한 심정이랄까

 

이제 남편이 늦은 시간에 귀가해서 “지금 들어 왔어요.” 하는 소리만 들리면 마음이 놓이고 걸리는 것이 없어졌다. 늦은 이유도 굳이 물을 까닭이 없어졌다. 상대에 대한 욕심이 없어서일까, 기대가 없어서일까, 확실한 마음의 색깔을 모르겠지만 오랜 시간 같이 살면서 서로에 대해 믿음이 있어서가 아닐까.

 

지나친 기대와 욕심을 접고 너그럽게 서로의 생활을 이해해주며 그저 살아 있음에 고마워할 따름이다.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열어 보고 밤사이 별일 없이 같이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음에 행복해한다.

 

공간적으로 떨어져 살다 보니 서로에 대한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남편도 그럴까. 원래 매사에 이런저런 소리를 하지 않는 사람이긴 하지만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모양새에 대해서 가타부타 이야기가 없다. 그저 묵묵하게 생활하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 사이가 하숙생과 주인집 아줌마의 관계는 분명 아니다. 좋은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알려주고 자랑하고 싶다. 위급상황이 생기면 순간적으로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이고, 부르면 무조건 달려가고 달려오는 남이 아닌 가장 가까운 관계임이 틀림없다.

 

세월의 강은 우리의 삶을 황혼이라는 무대로 옮겨와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은 심심한 생활로 만들어 놓았다. 하루하루 생활이 변화의 파도로 가슴 쿵덕거리는 흥분도, 마음 설레는 기다림도 없지만, 그저 잔잔한 파도가 남실거리는 부둣가를 맴돌게 하는 편안함이 있다. 

 

남편과는 글자의 순서를 바꿔도 뜻이 변하지 않는특별하고도 질긴 부부란 인연으로 맺어 가족이란 덩어리를 만들었다. 40년이라는 시간을 즐거움과 서운함으로 긴 역사를 만들었다. 든든한 아들이 둘이나 있고, 숨소리까지 들리는 고요한 적막을 시끌벅적한 웃음을 만드는 재롱동이 손자와 손녀들까지 있으니 이만하면 괜찮은 작품이 아닌가.

 

요란한 일층 호루라기 소리에 놀라서 급하게 뛰어 내려가니 남편은 등이 몹시 가렵다며 미안한 듯 찡그리면서 웃고 있었다. 늑대소년이 되었어도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에 안도의 숨을 쉬며 나 역시 빙긋 웃음이 나왔다. 비록 옛날 같은 열정은 없어도 간지러운 등을 서로 긁어 주면서 지나온 일을 같이 추억하며 평온한 황혼을 보내고 싶다.

 

내가 부는 호루라기 소리에 헐레벌떡 올라올 일층 아저씨의 모습을 생각하며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 이 미란

[출처: 수필세계]

 

만성 콩팥병(chronic kidney disease)

댓글 0 | 조회 336 | 1일전
최근 미국 버지니아대학교(Univer… 더보기

주거침입절도(Burglary)와 강도(Robbery)

댓글 0 | 조회 252 | 2일전
안녕하세요 한국 교민 여러분, 벌써 … 더보기

보험 수리 보증은 누가 책임질까?

댓글 0 | 조회 271 | 3일전
자동차 사고 후 보험으로 수리를 진행… 더보기

뉴질랜드 의예과 치예과 (Biomed/Health Sci) 입학 전 꼭 알아야할 …

댓글 0 | 조회 334 | 5일전
이번 칼럼에서는 Biomed/Heal… 더보기

어휘력은 암기만으로 늘지 않는다

댓글 0 | 조회 750 | 9일전
아이들의 어휘력을 판단할 때, 우리는… 더보기

사랑과 우정, 그 중간쯔음 . . .

댓글 0 | 조회 323 | 2026.01.28
그 날의 여행지는 늘상 가던 온천행이… 더보기

목사 가운을 버리고

댓글 0 | 조회 717 | 2026.01.28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외국에서 방문했… 더보기

요점만 정리한 종교인 워크비자

댓글 0 | 조회 612 | 2026.01.28
뉴질랜드 이민부는 종교 관련 직무에 … 더보기

21. 잠든 전사 – 테 마타 봉우리의 전설

댓글 0 | 조회 147 | 2026.01.28
Te Mata o Rongokako … 더보기

2026년 뉴질랜드 바이오메드, 헬스사이언스 입학준비

댓글 0 | 조회 496 | 2026.01.28
: 뉴질랜드를 선택하는 이유, 그리고… 더보기

샘터와 우물가

댓글 0 | 조회 112 | 2026.01.28
시골집엔 샘이 있었다. 장독대 아래에… 더보기

이민자의 스트레스, 어디로 가는가

댓글 0 | 조회 632 | 2026.01.28
ㅣ 술, 갬블링, 과로로 흘러가는 감… 더보기

차나무도 생명, 내버려둘수록 차 맛도 맑다

댓글 0 | 조회 174 | 2026.01.28
화엄사 구층암 ‘죽로야생차’“혹시 대… 더보기

장학금 그리고 의사가 꿈인 두 학생의 이야기

댓글 0 | 조회 406 | 2026.01.28
출처 : https://www.acs… 더보기

장애인 가족 돌봄자

댓글 0 | 조회 204 | 2026.01.27
가족 구성원중 항시 돌봐야 하는 장애… 더보기

바빌론의 공중정원 전설

댓글 0 | 조회 141 | 2026.01.27
ㅣ존재했는가, 아니면 인간이 만든 가… 더보기

다른 길은 없다

댓글 0 | 조회 128 | 2026.01.27
시인 류 시화자기 인생의 의미를 볼 … 더보기

2편 – 〈세기의 디지털 강도〉 (The Heist of Light)

댓글 0 | 조회 152 | 2026.01.27
“단 12초 만에, 79억 달러가 사… 더보기

향후 10년간 가장 인기 있는 직업 목록이 발표

댓글 0 | 조회 537 | 2026.01.27
이 5가지 진로는 뉴질랜드 학생들에게… 더보기

운도 실력이다 – 준비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행운

댓글 0 | 조회 214 | 2026.01.27
골프장에서 가끔 이런 장면을 목격한다… 더보기

‘조용한 살인자’ 고지혈증

댓글 0 | 조회 703 | 2026.01.23
지난(1월 20일)은 대한(大寒)으로… 더보기

2025년 의대 치대 수의대 38명 합격생의 공통점

댓글 0 | 조회 797 | 2026.01.22
출처 : https://www.huf… 더보기

출입금지 통지서(trespass notice)

댓글 0 | 조회 684 | 2026.01.21
오늘은 출입금지 통지서(trespas… 더보기

1편 – 〈황금의 망령〉 (The Phantom of Gold)

댓글 0 | 조회 290 | 2026.01.16
840톤의 금괴가 사라진 날, 세계는… 더보기

아들 신발

댓글 0 | 조회 303 | 2026.01.14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결혼해 집 떠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