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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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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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링띠링 하루에도 수십개의 알림이 모발폰에서 열심히 문자며 메일이며 누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딜갔는지 슬픈지 기쁜지를 발빠르게 실어 날라다 준다. 

 

주말이어서 대청소를 하다가 먼지가 꾸덕꾸덕 쌓인 상자하나를 찾았다. 오래된 메모, 편지, 카드, 말린꽃잎들이 켜켜이 쌓여있는 상자는 얼마전 잃어버린 아이들의 사진상자를 대신해줄 만큼은 아니지만 생활비가 똑 떨어진 어느날 안 입던 자켓속에서 찾아낸 비상금 만큼이나 반가웠다.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입혀진 빛바랜 칼라톤과 냄새.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추억들로 잠시나마 웃었다 글썽였다를 반복하며 멈추어진 시간여행을 즐겼다.

 

나이가 들어가는 증거인가? 빠른게 무조건 좋다좋다 하던것이 이제는 지나간 것, 좀 더디게 즐기는 것들이 좋아진다. 

 

기다려야 가질 수 있는 것들이 주는 기쁨은 언제나 돈만있으면 가질 수 있는 것 들과는 다른 기다림의 미학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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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을 숙성해야 제 맛을 낼 수 있는 냉장고 안 옹기종기 모여 있는 내 양념장들, 실처럼 늘어지게 잘 부풀라고 곁눈질로 계속 노려보며 반나절을 기다리는 빵 반죽, Boxing day 까지 기다려서야 열어볼 수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 밑에 쌓여있는 선물들, 가는데 며칠 그리고서 다시 돌아오기까지 며칠이 걸리는 손편지, 멀리 떠난 가족이 집으로 올 날을 세어가는 달력...

 

새것=좋은것이라는 생각도 변해간다. 세월이 묻어나는 물건들을 보면 이상한 아지랑이가 이렁이렁 마음속에서 일어난다. 내것이면 그 안에 올곧이 녹아 내려있는 내 생이 지문감식기 스캐너처럼 머리속에 홀로그램을 그려내고 다른이의 것이어도 적당히 잘 식은 다과상의 찻잔같은 따뜻한 미온이 느껴진다. 

 

기다림은 그 길 끝에 무엇이 있어서라기보다 기다림 그 자체가 가지는 묘한 매력이 있다. 기다리는 동안 느끼는 그 설렘과 바램, 설령 그것이 안타까움이나 아픔이어도 기다리는 동안 다듬어지고 보듬어지는 것도 좋다.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예전보다 10배는 빨라진 세상에 살면서 웬 청승이냐 싶은 이들도 있겠지만 갈수록 급해지는 사람들 성격에 스마트폰도 일조를 한다고 본다. 편지보내고 며칠을 기다리고 보고싶어 얼굴 한번 보려면 몇시간씩 버스를 타고 가야하던 시절과는 다르게 문자보내면 바로바로 안 읽는다고, 읽었으면 바로 답 안 보낸다고 조바심내고 서로 만나서 밥그릇 술잔 부딪히기보다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누르고 화상채팅을 하는 세상에 살다보니 사람들은 이제 뭐든 최고속이어야 만족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좀 느긋이 기다림을 즐기는 법을 익히고 싶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는 정말로 늘 거북이가 이긴다는 사실을 아는이가 몇이나 될까. 

 

하루에도 몇번씩 조바심을 내는 내 마음에 기다림의 미학을 한그루 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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