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에 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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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에 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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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시화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인기척과 함께 곧 들키고 말지만...
안개 속에서는
가까이 있으나 그 가까움은 안개에 가려지고
멀리 있어도 그 거리는 안개에 채워진다 

 

산다는 것은 그러한 것
때로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멀어져감을 두려워한다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누구나 고독하고,
그 고독을 들킬까 굳이 염려하지만
안개 속에서는
삶에서 혼자인 것도 여럿인 것도 없다
그러나 안개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머물 수 없는 것
시간이 가면
안개는 걷히고 우리는 나무들처럼
적당한 간격으로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산다는 것은 결국 그러한 것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시작도 끝도 알지 못하면서
안개 뒤에 나타났다가 다시 안개 속에 남는 것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 류 시화 : 시집으로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한 줄도 너무 길다>,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등이 있고, 명상집으로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민들레를 사랑하는 법>, 수필집으로 <달새는 달만 생각한다>,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 <지구별 여행자>, <삶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이외에,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갈매기의 꿈>, <예언자>, <장자, 도를 말하다>,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 등등의 수많은 번역서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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