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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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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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누구랑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하지.’ 

뉴질랜드에서 벌써 스물일곱 번째 크리스마스를 맞는다. 크리스마스 저녁 파티에 초대할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얼굴들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살아왔던 햇수만큼 친구가 늘지 않았다. 올해도 사람들에게 조금 더 다가서지 못했다. 

후회스럽다. 

 

연말이 다가오면 여러 얼굴들이 떠오른다. 보고 싶은 얼굴, 피하고 싶은 얼굴과 미운 얼굴이 한꺼번에 다가온다. 이럴 때는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이 솟구친다. 특히 밤에 찾아 오는 고독감과 후회가 머릿속에서 이어지면 잠을 설치게 된다. 낮에는 파란 하늘과 포후투카와 나무의 빨간 꽃들을 즐기는 대신에 피곤해 자주 존다.

 

HALT(hungry, angry, lonely, tired의 머리글자를 모아서 만듦)라는 말이 있다. 물질중독으로 고생하는 많은 사람이 HALT 순간에 술과 마약이 당긴다 한다. HALT로 인한 재발 때문에 중독으로부터 회복 여정(recovery journey)에 든 대부분의 사람은 크리스마스나 연말을 두려워한다. 배고프거나 화날 때 그리고 외롭고 피곤할 경우에 음식이나 술을 찾는 나를 보면 이들의 걱정이 이해가 된다. 

 

오랜 상담을 통해 많은 피상담자가 특별한 날에는 가족과 다투고 싸웠던 아픈 기억를 잊고 싶어 술을 찾는 경향을 보아왔다. 이들은 소외되는 기분을 달래기 위해 가족에게 다가서고 싶으나 연락하기를 주저한다. 불편해지는 마음을 술로써 진정시키고 싶은 충동과 누군가 술을 권하면 쉽게 거절을 못하는 습성이 재발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술이나 마약을 하는 사람들은 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고통을 자주 얘기한다. 호기심이나 현실 도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관계에 소홀해지고, 이 소원해진 관계 때문에 생기는 고통을 피하려고 다시 술을 찾는다. 술에서 회복하기 시작해도 가족이나 친구의 믿음이 늘어나지 않으면 그 아픔 때문에 다시 술을 한다. 그러다 보니 회복과 재발은 끊어진 관계에서 생기는 악순환이 된다.

 

“The opposite of addiction is not sobriety, it’s connec tion.”(중독의 반대는 안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하고의 관계이다) 

 

이 말은 영국의 언론인 요한 하리(Johann Hari)가 미국의 비영리 단체에서 운영하는 테드 톡스(TED talks)에 나와 마약과의 전쟁에 관한 강연 중에 하였다. 그는 사람들이 술과 마약에 빠지는 이유가 사람들과의 관계의 소외에서 온다고 주장한다. 그의 강연을 유튜브(YouTube)에서 보면서 웃으며 맞장구쳤다. “그래, 맞아.” 

 

우리 식구 중에도 물질중독이나 행위중독으로 가족 구성원들을 힘들게 한 사람들이 몇 명 있다. 이들이 나약한 정신이나 도덕적인 결함이 아닌 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술이나 도박을 했을 가능성을 생각하니 연민이 솟는다.

 

2017년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니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던 이들에게 연락해 볼까.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불편하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나. 가슴이 열려지 않는 모습을 인정하며 연락은 내년으로 미룬다.

 

올해 말에는 관계의 부족에서 찾아온 스트레스를 다르게 다스려야지. 당기는 술을 자제하고 새움터 김희연 선생이 쓴 ‘50가지 휴식을 취하는 방법’이나 다시 읽을까. 나의 오감을 달래면서 스트레스를 극복해야겠다. 혼자서 중얼거린다. 혹시 누가 알까. 피곤이 풀리면 소식을 끊고 지냈던 식구들에게 손을 내밀지. 언젠가는 과거의 감정을 훌훌 털어내고 소외의 고통에서 벗어나 더불어 살고 싶다. 

 

연말에는 후회와 희망이 항상 교차한다. 후회를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시고 희망을 나누기 위해 술을 찾는다. 연말연시, 아무래도 술이 당기는 시간인가보다.

 

▶ 새움터 회원 정인화는 1991년 뉴질랜드에 이민 와서 스무 해 가까이 상담과 심리치료 일을 하고 있습니다.

▶ 새움터는 정신 건강의 건전한 이해를 위한 홍보와 교육을 하는 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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