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로폴리스와 아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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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로폴리스와 아골라

0 개 2,678 한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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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강남 시대가 전개되기 전 까지 옛 서울대 본부가 자리하고 있던 문리대 정원은 한국이 현대화에 이르는 역사의 광장이었다. 종로 5가에서 혜화동 로터리에 이르는 길 중 이화동 4거리에서 혜화동 쪽으로 문리대 운동장이 끝나는 부분까지가 대학로로 불리었다. 그 도로의 동쪽 편에는 서울대학교 본부와 문리과대학(文理科大學), 법과대학, 미술대학이 자리하고 있었고 서쪽 편에는 의과대학과 약학대학 그리고 수의과 대학(獸醫科大學)이 위치하고 있었다. 

 

한국 현대사의 변혁의 진원지였던 중심축은 아무래도 문리대가 되었다. 문리대는 그 영문 명칭(College of Liberal Arts and Sciences)이 설명하듯이 학문의 경계를 여과 없이 넘나들고 자유를 구가하던 학풍이 지배하고 있었다. 오늘날의 인문과학대학, 사회과학대학, 자연과학대학 및 의예과와 치의예과를 포용하고 있었으니 종합대학이나 다름없었다. 그 문리대의 정원에 마로니에(Marronier) 나무가 청춘의 열기를 발산했고 그 주변은 자연히 아크로폴리스(Akropolis) 광장이 되었다. 4.19, 5.16, 3.24, 6.3을 거치면서 정치 사회적인 이슈(Issues)들을 토론하고 불의에 항거하며 정의를 추구하고 진리를 찾기 위해 밤샘 토론이 열리기도 했던……. 서울대가 1974년에 관악 캠퍼스로 이전하고 지금 대학로는 마로니에 공원으로 개발되어 서울 시민의 문화 예술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새로 이전한 관악 캠퍼스의 대학본부와 도서관 사이에 ‘아크로폴리스 광장’이 있다. 이 광장은 1970년대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여겨지면서 자연스럽게 대학생들의 집회 장소로 자리 잡고 있다. 학생들이 모여 담소하고 아카데미즘(Academism)을 구가하며 토론하며 논쟁하고 정치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바로 잡기위해 투쟁의 불길을 당기곤 했던 아크로폴리스…….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Athens)에 있는 아크로폴리스는 그리스 어 ‘아크로(Akros)’의 어원이 말해주듯 높은 곳에 위치한 폴리스(Polis) 즉 성채이자 수호신들이 거주하는 국가의 성소(聖所)였다. 그러나 아크로폴리스는 왕의 궁전이 아니라 시민 공동체의 종교적 성지로 그리스 인의 자유정신과 종교의식을 대변하는 장소가 되었다. 참주(僭主, Tyrant)의 시대가 끝나고 민주주의가 시작되면서 공동체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아크로폴리스였다. 

 

반면 아고라(Agroa)는 ‘모이다(아게이로)’라는 그리스어 동사에서 나온 말로 ‘민회(民會), 민회가 열리는 장소 즉 시장’을 뜻한다. 진기한 물건들을 사고팔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고 호객하는 상인들과 흥정하는 시민들이 넘쳐나는 장터의 개념이 강하다. 이곳에서는 선거철이 되면 지지를 호소하는 입후보자의 목멘 연설 소리도 치열하다. 소크라테스도 시장 골목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을 붙잡고 토론을 하기도 했다. 소크라테스에게 아고라는 학교이자 교실이었다. 아크로폴리스가 불멸의 신(神)과 필멸(必滅)의 인간이 소통하는 수직적 공간이었다면 아고라는 시민들이 대등한 위치에서 토론하고 격돌하는 수평적 공간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아고라가 공공 모임 장소로 자리를 잡아가자 시장으로서 경제활동의 중심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사교활동을 하면서 여론을 형성하던 의사소통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학문과 사상 등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지던 문화와 예술의 중심이 되기도 하였으며 시민들이 민회를 열어 국방이나 정치문제를 토론하던 정치의 중심이 되기도 하였다. 시민이 참여하는 아테네 민주정치의 현장이 되어 간 것이다. 아고라에는 시민법정이 개설되어 시민들 가운데 추첨으로 뽑힌 배심원들이 재판을 담당했다. 직업적인 판사, 검사, 변호사가 재판을 담당한 것이 아니나 배심원들은 보통 사람들의 상식적인 판단에 따라 재판을 했다. 아고라는 아테네의 경제, 종교, 정치와 사법의 중심지가 되었다.  

 

아테네에는 아크로폴리스와 아고라가 있고 서울에는 광화문과 시청 앞 광장이 있다. 광화문 앞에는 한민족의 수호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있다. 지난 11월 12일에 서울시청 앞, 광화문 일대 광장에서 열렸던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성토 범국민 궐기대회는 많은 점들을 시사해주고 있다. 우선 100만 명이라는 단군 이래 최대 인파가 몰렸고 이들이 모두 자발적인 참여자들이었다. 남녀노소 어린이, 학생, 청장년, 노년 세대에 이르기 까지 노동자, 농민, 중산층 서민층 할 것 없이 전 계층이 모였으며 서울 뿐만 아니라 멀리 시골에서 까지 찾아와 대회에 참여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질서 정연하게 진행이 되었고 성숙한 시민의식이 투영된 행사 같아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 왔다. 몇 몇 연사가 나와 판에 박힌 연설 원고로 쏟아내고 마는 일방통행적 의사소통이 아니고 참여자 누구나 즉석에서 발언을 하는 자유토론식의 고대 그리스시대의 아크로폴리스, 아고라 광장에서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 같았다.   

 

민주시민은 토론 문화를 통해서 의식이 성숙되어간다. 입시위주의 한국 교육 제도에 대해서 정부 수립 후 70년에 이르도록 아직까지 문제가 되고 있기도 하지만 이러한 광장 토론 문화가 확산되면 차세대들의 인격도 함양되리라 믿는다. 실제로 이번에 초등생, 중고 생들의 발표 모습에서 그 무한한 잠재력을 엿보기도 했다. 역설적인 표현이 되겠지만 이번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국민들의 민주의식을 고양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건전한 시민의식을 가꾸어 나가게 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였으며 무엇보다도 5천만 국민의 집단에너지를 발산하는 동기를 부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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