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 - 보다 세련된 영역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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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 보다 세련된 영역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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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방, 나의 공간이란 개념이 생길 적부터 벽에 뭔가를 붙이는 것을 좋아했다. 붙이거나, 걸거나.

 

대개는 엄마가 손수 만든 예쁘장한 섀도우 박스(Shadow box) 종이 공예이거나 아니면 가족 사진이었지만 점점 크면서 취향이 정해지자 다른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한국보다는 뉴질랜드에서 보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

 

포스터. 내가 말하는 건 포스터들이다. 모으는 물건들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예전부터 그랬고, 지금도 벽이란 벽은 모조리 포스터들로 뒤덮다시피 했다.

 

내 것이란 사실에 유독 집착하는 경향을, 난 어린아이를 벗어난 뒤에도 지우지 못했고 그래서 지금도 소유욕이 강하다. 포스터를 모으고 붙이는 것 또한 냉정히 분석하자면 거기서 기인한 경향이라고 생각한다. 내 방, 즉 내 공간을 내가 좋아하는 것만으로 가득 채우고, 그럼으로써 온전히 나만의 장소임을 재확인하고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 일종의 영역 표시 같은 것이다.

 

당연히 개나 고양이처럼 구석구석마다 실례를 하는 것보단 훨씬 낫지 않나 싶지만 엄마가 보기에 둘 다 같은 모양이다. 항상 지저분하다던지, 정신 사납다고 타박하는 걸로 봐서는. 쩝.

 

포스터들은 대개 A2나 A3 크기이고, 어떤 경우엔 내 키를 훨씬 웃도는 것들도 있었다. 보통은 빳빳한 새틴질 종이였기에 그냥 블루텍으로 벽에 붙이면 끝이다. 영화, 만화, 게임, 포스터의 주제도 다양하기 그지 없었다.

 

이따금씩 영화관에서 상영이 끝난 영화 포스터들을 싸게 거저 팔곤 하는데, 그 날은 완전히 나만의 축제일이었다. 신이 나서 이것저것 사와서는 무엇부터 붙일까, 어느 걸 어디에 붙여야 가장 공간이 절약되면서 한꺼번에 많은 걸 붙일 수 있을까 고민하곤 했다. 정말 소소한, 행복한 고민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최근 들어선 DVD나 블루레이를 사면 포스터를 사은품을 얹어주는 곳이 늘고 있다. 나 같은 마니아들에겐 환호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대개 그런 경우의 포스터는 한정 수량 사은품인 경우가 많으니,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곧바로 사버리고 만다. 이런 식으로 틈새 시장을 노리는 건가, 새로운 판매 전략이라며 새삼스럽게 놀란다. 정말 좋아하는 장르나 작품의 포스터라면 해외에서 공수까지 해오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실제로도 지금 현재, 내 방에도 그렇게 해외에서 어렵사리 구해온 포스터가 붙어 있다.

 

포스터라는 것은 참 오묘한 것 같다. 제 돈 주고 따로 구입하기는 왠지 아깝지만, 책이나 다른 매체 상품에 붙어서 딸려오면 더없이 기쁜 존재. 다른 사소한 즐거움이 그런 것처럼 예상치 못했거나, 아니면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공짜로 주어지는 것을 마다할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서도.

 

그렇다고 방에 사진이 없느냐 하면 물론 아니다. 다만, 백일 사진이나 졸업 사진 같은 것보단 오히려 내가 고른, 내 취향을 보여주는 이 포스터들이 더 나란 사람을 잘 나타내주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사진들이 그저 내가 어떻게 생겼고 이 날,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때때로, 나는 사진 속의 내가 더 인공적이라고 느껴질 때도 있다. 어떤 사람이든 사진 속에선 항상 웃고 있고, 그렇기에 그날 과연 내가 진짜로 어떤 감정, 경험을 했을 지를 조금이라도 기억 속에서 의심할 수 밖엔 없으니까. 사진은 외관이나 시간의 기록 외에는 전혀 믿을 것이 못 된다고 생각한다.

 

포스터를 앞으로도 사 모을 거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단연코 YES일 것이다. ‘안 사고 후회하는 것보단, 사고 후회하는 것이 더 낫다’는 어느 명언에 따라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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