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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0여 년 전에 들은 말이지만 지금도 새겨들을 만한 이야기가 있다. 어느 외국인 바이어(Buyer)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자기가 알기로는 한국은 자원도 부족하고 남북은 분단되어 있고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게 불과 30여 년 전의 일인데 어떻게 부자들이 많고 물자가 풍부하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는지 의아스러웠다. 그래서 안내자한테 물었다. 한국인들은 어떻게 이렇게 잘살게 되었느냐고……. 그러자 그 안내원 대답이 “한국인은 서로 뜯어 먹고 잘 삽니다”. 서로 뜯어 먹기 경쟁에서 도태 된 부류들은 부자가 되기 힘들고 권력이나, 배경 등을 이용해서 남을 등치는 실력이 돈을 버는 기준이 되고 있기도 하다.
OECD 국가 중에서 한국인의 행복지수가 가장 낮고 자살률은 1위라고 한다. 뉴질랜드로의 이민 행렬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하던 1990년 대 초와 비교할 때 한국은 표면적으로 엄청나게 발전했다. 고국을 방문할 때마다 그 발전 속도에 놀라게 되고 10여년 만에 방문해본 해외 교민들은 더욱 놀라게 된다. 그렇게 발전된 한국에서 살고 있는 동포들이 왜 행복하지 못하고 자살자들은 늘어만 가고 있는지 이율배반작인 의문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 물질적인 풍요와 행복하고는 비례하지 않으며 자살하는 사람은 자살함으로서 지금보다 더 행복할 거라고 믿기 때문에 자살하므로 두 가지 지수는 모두 한국인의 불행한 비율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수많은 철학자들이 담론(談論)으로 펼쳐 왔다. “행복은 인생 최고의 선(善)이다”라는 명제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따라서 어떻게 행복을 성취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담론이 요청된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 BC 384-322)는 “행복은 무엇 무엇을 가지고 있는 상태로 온 게 아니라 각자의 고유한 능력을 개발해서 탁월한 행위를 발휘하는 것이며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실현하기위한 노력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행복은 주관적인 기준으로 느끼기도 하고 객관적인 기준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또한 개인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으며 사회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돈, 명예, 지위, 권력, 학식, 건강이 행복의 기준으로 거론되기도 하지만 이들이 행복의 요소들로 작용할 수는 있어도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은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달성될 수 있는 문제이나 객관적이고 사회적인 것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에 부닥친다. 이러한 전제하에 행복을 어떻게 가꾸어 나갈 것인지에 대해서 나름대로 정리를 해 보았다.
첫째 감사하는 생활이다. 우선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감사하고 주어진 환경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업신여기고 자기의 처지를 불평만 하는 사람이 행복할 수는 없다. 무슨 일이 잘 안 풀릴 때 자신의 무능력을 한탄하고 가족을 원망하고 사회를 원망한다. 이목구비가 제대로 갖추어 있고 팔 다리가 정상인 처지만 되더라도 얼마나 신의 은총인지 감사해야 할 것이다. 골프를 할 때 실수를 많이 하면 스스로에게 욕을 하고 죽고 싶다는 푸념을 늘어놓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재 자기가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그 상황에서 더 발전하려는 노력을 경주하는 가운데 행복을 가꾸어 나갈 일이다.
둘째 꿈이 있는 생활이다. 인간의 꿈이 잠자고 있지 않을 때 희망이 생겨난다. 인간은 꿈이 있는 한 이세상은 도전해 볼 만하다. 따라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꿈과 희망을 잃지 말아야 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이 있어 정진하고 발전해 나간다는 사실이다. 동물들은 본능 적인 욕구만 충족되면 더 이상 바라지 않고 현실에 만족해 버린다. 따라서 인간 같이 탐욕에 사로잡히지는 않지만 행복을 가꾸는 일도 없다. 독일의 문호 괴테(Goethe, 1749-1832)가 평생에 걸쳐 집필한 파우스트(Faust)에서 갈파한 “오직 오늘 행동하는 자 - 그대만이 생명과 자유를 얻으리라”라는 가르침을 새겨볼만 하다. 꿈이 없는 자는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진정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도 없고 자기의 자유의지를 실현할 수도 없는 채 피동적인 삶을 이어가기만 한 것이다.
셋째 더불어 사는 생활이다. ‘남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동료가 없는, 내편이 아니면 적이 되는 사회에서 행복해 질 수는 없다. 한국에서 독거노인의 자살률이 많고 이는 사회문제화 되고 있기도 한데 자기 주위 사람들이 전부 불행하다면 같이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행복은 물질 같이 소유를 계량화 할 수도 없는 것이며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기에 공동선(共同善)을 추구하는 가운데 행복이 확산되는 생활이 바람직할 것이다. 한국사회의 병폐로 지목되는 나만을 위한 다는 정신, 동기생들에게 피해의식을 유발하는 교육제도, 상대방을 밟고 일어서야 자기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그릇된 사고방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구성원들이 행복해 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삶의 터전을 뒤로하고 뉴질랜드에 까지 와서 새로운 삶을 개척할 때는 누구나 더 행복해질 거라는 희망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꾸어 나가는 것’ 이라면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마음으로 행동을 시작해야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