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사랑한 마에스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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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사랑한 마에스트로

0 개 2,570 수선재

자주 보는 프로그램 중에 ‘클래식 오딧세이’라는 게 있습니다. 엊그제 보니까 ‘일본이 사랑한 마에스트로’라는 제목으로 정명훈이 나왔더군요. 그 한 시간짜리 프로를 보고 상당히 감명을 받았습니다. 제목을 보고 반가워서 보기 시작했는데, 참 사랑할 만하더군요. 일본이 사랑할 만해요. 일본뿐이겠습니까? 지구가 사랑할 만한 사람이에요. 그렇게 흔치 않은 사람이더군요.

 

제가 원래 정명훈이라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피아니스트 할 때부터 좋아했어요. 인터뷰 하는 것 보면 사람이 참 괜찮더군요. 동경 필에 가서 공연을 하는데, 일본에 매니아가 형성이 돼서 2~3천석 되는 좌석이 발매 몇 시간 만에 매진이 된답니다. 

 

한 가지 음을 내기 위해서 30분을 연습했다고 그러더군요. 자기가 원하는 음이 나올 때까지. 그리고 악보를 끊임없이 보는데, 매일 아침 일어나서 차 한 잔 마시면서 수백 번도 더 본 악보를 책 보듯이 또 봅니다. 

 

세계적인 지휘자인데도 베토벤을 알려고 무지 노력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에게도 될 때까지 끊임없이 요구하고 참 끊임없이 하더군요.‘음악을 캐내라, 삽처럼 캐내라’그러더군요. 참 열정을 가지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일본사람들이 다 우울증이 있습니다. 그런데 외국 사람이 가서 불을 지핀 것입니다. 자신들 속의 깊은, 뜨겁고 강렬한 감정을 끄집어내준다고 하더군요. 심장박동 소리,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다고 해요. 그렇게 열정을 가지고 하니까 다들 좋아합니다.

 

열네 시간을 걸려 파리에서 와서 공향에 내리자마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데, 리허설을 하러 갔습니다. 옷이 다 젖어서 계속 갈아입는데, ‘참 멋있다’ 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사람이 주는 감동보다 멋있는 게 없습니다. 일본의 클래식 팬들에게 그렇게 감동을 주고 있더군요. 

 

자신을 지탱해주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그거 안 하면 뭘 하겠습니까. 사람이 보람 있는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야 되는데, 남들 하는 거하고 똑같이 밥 먹고 친구 만나고 어쩌고저쩌고 하면 그게 살았다고 볼 수 있는가? 그렇죠? 

 

자기만이 할 수 있는 걸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또 그런 생각이 안 생기면 생기도록 자꾸 부추겨야 되고. 왜? 살아야 되니까. 어차피 해야 되는 거, 기분 좋게 하겠어요, 도살장에 가는 것처럼 하겠어요? 현명한 사람이라면 신나게 해야지요. 나도 신나고 보는 사람도 신나고 그렇게 해야지요. 어떻게 하면 신이 나는가? 연구를 해야지요. 저절로 신나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그러니까 정명훈 같은 사람이 멋지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음악을 통해서 사람들을 새로운 세계로 인도해 주죠. 혼신의 힘을 기울여서 그 많은 사람, 그 많은 악기 하나하나 다 일깨워주고, 말로 안 되면 몸으로 보여줍니다. 상대방이 될 때까지 밀어붙이고, 원하는 소리가 나오면 얼굴이 너무너무 천사 같아지고, 만족하는 표정이 되고, 아니면 또 찌푸리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그래요. 그 사람이 와서 오케스트라를 완전히 다른 세계로 인도해 주는 것 같다고. 이때까지 알던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로 인도해주는 힘이 있는 사람 같다고 그래요. 

 

파워가 대단하죠. 파워가 어디서 생기느냐? 그건 열정에서 생기고 열정은 또 사랑에서 생깁니다. 음악이든 뭐든 자기가 아는 것을 전달해서 그 사람도 똑같이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것이 사람으로서의 도리이고 열정이고, 조금 아는 선배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자기도 혼자 있을 때는 죽고 싶을 때가 많이 있겠죠. 늘 만신창이가 되어 집에 가고 공연이 끝나면 온몸의 기운이 다 빠지니까. 며칠간은 그렇게 지낸다 해도, 그럼으로써 삶에 대해 기쁨과 희열을 느끼는 겁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기운이 다 빠져서 누워서 생기는 허탈감은, 그걸 안하고 느끼는 허탈감과는 종류가 다른 허탈감입니다. 그러니까 또 하는 것입니다. 이십 몇 년을 무대에 섰는데 계속 어렵다고 그러더군요. 매일 힘들어요. 그런데 또 하고 또 하고 합니다. 살아있으니까. 

 

그 사람을 예로 들었지만 우리는 다 그런 책임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기를 만남으로 인해서 상대방이 조금 더 나아지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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