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천미란
성태용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조성현
전정훈
Mystery
커넥터
Roy Kim
차자명
권레오
독자기고
새움터
김준
박기태
수선재
김도형
마이클 킴

안경

0 개 2,523 박지원

오빠가 사라졌다.

 

안경이 너무 오래도록 보이지 않아 이상한 느낌에 오빠의 방에 가보았다. 퀴퀴한 냄새와 함께 냄새에 비해 꽤 정갈한, 빛이 들지 않는 방이 눈에 들어왔다. 오빠의 방을.. 몇 년만에 들어온 것인지. 가장자리가 닳은 나무 책상 위에는 엄청나게 두꺼운 책들이 수십권 쌓여있었다. 침대에서 자면서도 항상 이불을 개어서 한 쪽 구석에 두는 습관은 여전했다. 오빠는 없었다. 오빠의 안경도 없었다. 오빠가 없어진 것을 아빠는 아는지 모르는지, 하얀 용돈 봉투가 문지방 위에 있었다. 

 

오빠는 늘 화장실에 안경을 벗어두고 독서실에 갔다. 5년째였다. 오빠가 집에 있는 날은 드물었지만, 가끔 집에 있는 것을 확인하려면 화장실 세면대 위 안경의 유무를 살피면 되었다. 안경의 유무. 대화나 노크조차 소스라치게 크게 들릴 정도로 집 전체는 어둑한 모서리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고 3인 나와 고시생인 오빠 탓인지, 가족 전체가 원래 대화가 없었던 것인지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교회에서 간부를 맡고 있는 엄마는 랩으로 씌어놓은 밥이나 반찬으로 존재했다. 즉 평소에는 잊어버리고 있다가 먼지 쌓인 식탁 위에 무엇인가 그릇들이 있으면 아, 엄마가 있었지 하는 식이었다. 회사를 다니는 아빠의 존재는 월요일 아침마다 방문 밑으로 놓여지는 용돈 봉투로 확인했다. 우리는 32평 아파트 속의, 그림자 가족이었다.

 

오빠와의 마지막 대화는 여름방학 때 였다. 햇볕이 끝도 없이 내리쬐는 노을지는 저녁. 보충수업이 끝나고 교복 블라우스 앞섬을 손으로 잡고 흔들며 교문을 나오는데, 청바지에 단가라 티셔츠를 입은 오빠가 서성이고 있었다. 뭐야, 안경 벗어서 못 알아봤네. 툴툴거리며 오빠를 툭 쳤다. 웬일이래? 여기 왜 왔어? 오빠는 날 물끄러미 보더니 

 

밥 먹자. 

 

한 마디를 툭 던졌다.

 

김밥집에 가서 우리는 묵묵히 참치김밥과 떡볶이를 집어먹었다. 오랜만에 보는 오빠는 조금 마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떡볶이가 조금 매웠다. 

 

근데, 오빠는 왜 맨날 안경벗고 가? 눈도 나쁜 게. 

 

오빠가 김밥을 우물거리며 약간 멋쩍은 웃음과 함께 대답했다. 

 

공부할 때는 눈에 뵈는 게 없는 게 낫더라. 

 

그러고보니, 오빠가 웃는 것을 오랜만에 보았다. 나와는 달리 오빠는 지독히도 시력이 안 좋았는데, 원래 눈이 좀 컸나 싶을 정도로 안경을 벗으니 많이 달라보였다. 시험은 언제야? 10월 5일. 야, 요번엔 좀 되라. 장난식으로 말을 했지만, 오빠는 말이 없었다.

 

그렇게 묵묵히 밥을 먹고, 거리로 나왔다. 여름의 열기는 해가 져도 가시질 않고 있었다. 무겁고 습한 공기가 수많은 인파와 헤드라이트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오빠 이제 또 가? 오빠가 대답했다. 가야지. 집에 들어가라. 그 말을 끝으로 오빠는 사람들 틈으로 걸어갔고, 나는 안경이 없어서 눈에 뵈는 것이 없는 오빠가 사람들과 계속해서 부딪혀도 오뚜기처럼 계속해서 일어나는 엉뚱한 상상을 했다.

 

가을. 오빠는 공무원 시험을 일주일 앞두고 있었고, 나는 수능을 한 달 앞두고 있어서 오로지 학교와 내 방만을 왔다갔다했다. 이따금씩 새벽 늦게 화장실에 가면 오빠의 안경이 사라져있곤 했다. 

일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그 일주일에서 닷새가 더 지났다. 

 

오빠가 사라졌다. 분명 시험당일 일거라 생각되는 5일에는 안경이 은색 세면대 위에 있었다. 좀 붙어라. 무심한 기도 아닌 기도 후에 가방을 메고 나는 학교에 갔다. 그리고, 3일 뒤 오빠의 안경이 사라졌다. 

 

오빠는 어디를 갔을까. 조금 궁금하긴 했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니 안경이 없어진 이유가 조금 더 궁금한 것 같았다(오랫동안 오빠의 존재를 안경으로 판별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안경은 대체 무엇을 보려고, 기어코 오빠를 찾아 입고 거리로 나간걸까. 늘 화장실 세면대 위에서 거울을 등지고 물때 묻은 타일만 바라보던 안경. 

 

그 안경은 어디로 갔을까. 그림자 가족을 등진 채, 어디로 간 걸까. 

 

그리고 이제 오빠는, 무엇인가를, 명확히 보고 있을까.

 

11 Great Walks 600여km, 풍광을 카메라에 담다

댓글 0 | 조회 459 | 15시간전
1993년, 낯선 땅 뉴질랜드(New… 더보기

추파카브라 전설

댓글 0 | 조회 129 | 15시간전
— 공포와 현실 사이, 인간이 만들어… 더보기

뜰안의 민들레 꽃처럼 . . .

댓글 0 | 조회 143 | 16시간전
달게 잘 잤는데도 깨어나면 기분이 깔… 더보기

마지막 퍼팅의 압박 – 중요한 순간에 집중하는 법

댓글 0 | 조회 183 | 16시간전
골프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 더보기

내가 세상을 안다고 생각할 때

댓글 0 | 조회 108 | 16시간전
시인 문정희내가 세상을 안다고 생각할… 더보기

뉴질랜드 이민 삶 44년을 회고하며

댓글 0 | 조회 603 | 17시간전
1982년, 키위 구두약의 나라 뉴질… 더보기

뉴질랜드 입법부&행정부와 사법부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댓글 0 | 조회 401 | 22시간전
예전에 한국의 계엄령 관련 칼럼을 다… 더보기

궁극적으로 괴로움을 없애는 유일한 길

댓글 0 | 조회 252 | 22시간전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 더보기

25. 마우이와 태양을 붙잡은 산 – 기스본의 전설

댓글 0 | 조회 86 | 22시간전
기스본(Gisborne)은 뉴질랜드 … 더보기

매력만점의 은퇴부모 투자이민

댓글 0 | 조회 778 | 2일전
COVID-19 팬데믹으로 말미암아 … 더보기

호주 뉴질랜드 의대 합격의 분기점: 지금 점검해야 할 시기

댓글 0 | 조회 452 | 2일전
▲ 이미지 출처: Google Gem… 더보기

연주 씨의 카드

댓글 0 | 조회 251 | 2일전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지적 장애를 가… 더보기

2026년 통과된 고용관계법 개정안

댓글 0 | 조회 294 | 2일전
고용시장의 유연성을 증가시키고 피고용… 더보기

‘취미’와 ‘문제’의 경계선

댓글 0 | 조회 129 | 2일전
- 갬블링 위험 신호 점검뉴질랜드에 … 더보기

개똥걱정 말똥걱정

댓글 0 | 조회 112 | 2일전
1898년 뉴욕에서 세계 최초의 국제… 더보기

6편 – MH370: 사라진 하늘

댓글 0 | 조회 110 | 2일전
“비행기는 사라졌지만, 그 안에 있던… 더보기

오클랜드대 각 의료계열 최신 입시 정보 및 선발기준 (의대, 약대, 검안대, 영상…

댓글 0 | 조회 218 | 2일전
이번 칼럼에서는 오클랜드대 각 의료계… 더보기

병보다 무서운 간병비

댓글 0 | 조회 795 | 5일전
고려 말기의 명장인 이성계(李成桂)가… 더보기

오클랜드대 의료계열 입시 통계 총정리 (의대 약대 검안대 등)

댓글 0 | 조회 459 | 7일전
이번 칼럼에서는 최근 2년 (2025… 더보기

약 처방, 이제는 12개월분까지 처방 받을 수 있다

댓글 0 | 조회 994 | 10일전

올해부터 바뀌는 오클랜드대 의료계열 MMI 면접방식 (의대,약대,검안대 등)

댓글 0 | 조회 828 | 2026.03.12
의료계열 (메디컬) 입시에서 가장 중… 더보기

피아노의 영혼

댓글 0 | 조회 258 | 2026.03.11
▲ 이미지 출처: Google Gem… 더보기

인간의 본질적 문제

댓글 0 | 조회 212 | 2026.03.11
저는 불교의 윤회설을 문자 그대로 믿… 더보기

히말라야의 그림자 빅풋과 예티는 존재하는가

댓글 0 | 조회 177 | 2026.03.11
어느 겨울밤, 히말라야의 깊은 산속에… 더보기

나만의 등불 밝혀 내 마음 찾는 여정

댓글 0 | 조회 151 | 2026.03.11
강진 무위사의 ‘보름달 명상 템플스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