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맞이하는 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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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맞이하는 새해

0 개 2,505 김지향
나에게 있어서 작년 한 해는 모든 것들을 정리하는 해였던 거 같다. 나의 거울인 남들에게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을 정리했었는데, 이제부터는 나 자신에게 글을 쓰기로 했다. 앞으로 경어체가 아닌 평어체의 글이 되겠다.

40년 가까지 쓰지 못했었던 안경을 끼게 되었다. 몇 번이나 시도를 하다가 그만두기를 반복했었던 안경을 드디어 끼게 된 것이다. 안경을 다시 사용하기 위해서 특별히 신경을 쓴 것은 없다. 그저 콘택트렌즈 한 쪽을 잃어버리자 아예 콘택트렌즈에 기댔었던 마음을 버린 것뿐이다.

당달봉사로 살아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렌즈를 벗고 지냈다. 40년 동안 렌즈를 끼면서 사느라 고생했었던 눈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용서를 구하면서 대충이라도 보이는 것에 감사하면서 지냈다.

생활은 당연히 엉망일 수밖에 없었다. 도시락에 머리카락이 들어간 적도 있고, 이리저리 불편한 것 투성이었지만, 한쪽 렌즈를 잃어버린 이유가 꼭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곧바로 렌즈를 다시 맞추려 하다가 그만두고 살았다. 

새해 첫날에 큰애 친구 부모가 신년파티에 초대를 했다.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걱정이 되지 않고 기쁜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고 뭐 특별한 계획도 없었다. 그런데 파티 전날인 12월 31일에 갑자기 안경이 쓰고 싶어진 것이다. 렌즈를 잃어버린 날 둘째가 혹시나 해서 자신이 보관하고 있는 안경을 주면서 써보라고 해서 몇 번을 시도하다 실패한 안경이 옆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안경을 끼자마자 기적처럼 제대로 보이는 것이었다. 거의 두 달을 당달봉사로 살았었는데, 안경을 다시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얼마나 기뻤는지 내 방에서 뛰어나가 큰 소리로 안경을 다시 쓸 수 있게 되었다고 소리쳤다. 

큰애가 내 마음에 꼭 드는 디자인의 안경 하나를 꺼내더니, 엇비슷하게 내 눈의 도수에 맞는 안경일 거 같다고 했다. 디자인부터 도수까지 나무랄 데가 없었다. 시력 측정을 다시 하여 렌즈만 바꾸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안경을 끼고 신년파티에 참석했다. 영어만 사용해야 하는 파티라서 어색한 시간이 될까 염려스럽기도 했었지만, 막상 파티 장소에 가보니 내 염려가 필요 없었음을 알았다. 그들과의 소통에 내 부족한 영어는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우리 모두들 어색함 없이 무척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새해의 멋진 시작이었다.

나의 한계를 많이 벗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스스로 만든 새장에 갇혀 지내다가 새장의 문을 연 느낌이랄까? 평온한 자유가 내 온몸을 휩쓸었다. 가슴이 따스해지면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살아가야함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영어를 왜 그렇게 하기 힘들어했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영어 역시 한국어처럼 소통을 위한 언어일 뿐이다. 머리로 하는 소통은 한계가 있지만, 가슴으로 하는 소통은 한계가 없다. 반려견을 키울 때야말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소통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간단한 이치를 잊어버리고 살았던 것이다.

신년 파티를 할 때도 왜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며 그들과 소통이 잘 되었었는지 그 이유를 잘 몰랐었는데, 지금 알게 되었다. 머리로 그들과 소통을 한 게 아니라 가슴으로 소통을 했기에 언어의 장벽을 뛰어 넘어 서로 무척 행복했었던 것이다.

갑자기 영어가 잘 들리게 되었다. 그래서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예전의 습관대로 영어공부를 하니 모든 것이 다시 엉켜버렸다. 무엇이 문제인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 한계가 바로 머리로 영어 공부를 하려고 했었던 것이다. 

새해부터는 머리의 영역에서 벗어나 가슴으로 살 수 있기만을 바란다. 세상과 그리고 나와의 진정한 소통은 가슴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70년이 걸렸다고 했지만, 그분의 한계를 내 한계로 한정지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앞으로 나는 가슴의 문을 활짝 열고 가슴이 가는대로 살아가기로 했다. 머리로 살아왔었던 지나간 날들은 이제부터 내 삶이 아닌 것이다. 새해부터 가슴으로 살 생각에 벌써 가슴이 벅차오른다. 

감사하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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