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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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사춘기

0 개 3,169 김준
며칠전 인터에 다니는 딸의 학교에서 레터가 한장 왔다. 사춘기에 들어갈 무렵의 학생들을 위해 그들이 겪을 변화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또한 학부모들에게 사춘기 자녀들과의 관계에 대해 교육하는 세미나를 개최한다는 반 강압적인 참석요구였다. 품안에서 꼼지락 거리던 아기가 벌써커서 사춘기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잘 자라줘서 기특하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기억 한켠에 지독한 사춘기로 힘들어하던 학생들, 잘 극복해낸 학생들, 또 한편 짧다면 짧은 한 시기동안 인생 전체에 적잖은 어려움을 끼치게 되버린 친구들... 그들의 이야기가 떠 올랐다. 

“선생님, 오늘은 C가 수업을 못할거 같습니다.” 
“아, 그래요, 어디가 아픈가보죠?”
“네? 아...... 네..네..”

항상 수업때마다 너무나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하던 C가 수업을 못한다니? 얼마 전 그 지독한 감기에 걸리고도 진도 늦어지기 싫다며 부득부득 수업하겠다던 아이가... 이상한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아이가 아픈것 같다는 생각에 오랫만에 휴식을 즐겼다. 그리고 다음주 C를 만나서는 자연스럽게 지난주에 무슨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게 되었는데… C의 말에 따르면 어머니가 학교 교재들과 학용품, 모아두었던 모든 자료들을 밖에 내다버리셔서 학교도 못가고 그냥 며칠을 방에서 지냈다는 것이다. 평소 C 어머님의 성품을 익히 알고있던 내겐 믿지 못할 이야기였지만 바뀐 책가방과 훈장처럼 묻어있던 손때라곤 찾아볼 수 없는 새 책들을 보며 놀란 마음만 추스릴 뿐이었다. 

시간은 흘러 연말이 되고 C가 원서접수를 해야하는 시기가 되었다. 우리는 열심히 원서준비를 했고 한국 대학 진학을 희망하던 C는 KAIST 기계공학과와 포항공대에 합격하는 쾌거를 올렸다. 아이의 합격소식을 듣고난 며칠후 여유있는 시간에 C와 C의 어머니 그리고 필자가 만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C의 어머니가 이미 잊고있던 그때의 이야기를 하셨다. 당신께서도 C때문에 너무나 힘든 시기를 지내셨다며...

C는 같은 학년의 친구들보다 1년반이 어렸다. 생일이 빨라 학교를 일찍 들어갔을뿐 아니라 초등학교때 월반을 해서 그리 된 것인데 C가 어릴때는 이런 사실이 부모님의 은근한 자랑거리였고 Y12까지는 자기보다 한 두살이 더 많은 친구들보다 월등히 좋은 성적을 일궈내는 아들을 대견해 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C가 Y13에 들어서면서 생기고 말았으니 C가 다 늦게 사춘기에 들어선 것이다. 물론 제 나이로 생각해 본다면 약간 느린정도 였지만 학년으로 치면 벌써 고교 최종학년 아닌가! 더구나 처음 보는 외아들의 반항에 부모님은 얼마나 놀라셨을까. . 식사하며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말씀에 필자 또한 가슴을 졸일수 밖에 없었는데, 내 앞에선 그렇게 성실하고 착하기만 하던 C가 학교를 안가겠다며 난리를 친 적도 있고 가출을 한적도, 거기다가 새벽에 집 앞 도로 한복판에 누워서 사고 나길 기다린 적도 있다하니 기가 막힐 뿐이었다. 이건 늦게 배운 도둑질이 아니라 늦게 온 사춘기가 피어보지도 못한 생명을 앗아갈뻔 했던 이야기들을 듣고 있자니.... 배실배실 웃고만 있는 C가 얄밉게 느껴질 무렵 어머니께서는 예의 책가방 사건도 학교 안 간다는 C를 달래고 어르고 하시다가 지치고 지친김에 저질러버리신 일이라 하셨다.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식사가 끝나고 맛나는 커피까지 잘 마신 후 어머니와 어깨동무를 하고 차로 향하는 C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저렇게 착하고 순수한 아이를 순간 돌변하게 했던 사춘기의 위력에 새삼 놀랐고 정말 힘들고 어려웠던 과정을 잘 견뎌내고 더 어른스러워진 모습으로 돌아온 C의 모습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겪고있는 사춘기의 아픔이 진정한 ‘성장통’인 경우도 있구나 싶어 살풋 안심이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신체조건이나 상황때문에 고등학교 고학년에서 사춘기를 겪는 것이 얼마나 위험스러운 일인지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할까…

이제 컬리지에 들어가는 아들, 딸이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너무 힘들게 한다고 하소연하시는 부모님들을 뵐 때가 있다. 그럴때마다 해 드리는 말씀.

“차라리 지금 왔다가 후딱 지나가는게 훨씬 나아요. 제 학생중에 이런 학생이 있었는데요. 글쎄 Y13에 사춘기가 와서는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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