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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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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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는 새해와 함께 별 일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 다행스럽게도.

행사들을 싫어하는 편이고, 기념일은 매번 잊어버리는 유형의 사람인지라 솔직히 말하자면, 내게 있어서 구경 이상으로 참여해야 하는 그런 ‘특별한’ 모든 종류의 날짜는 그저 사절해야 할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크리스마스는 조금 특이하다. 좋아하는 편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크리스마스의 절차 - 선물 교환, 기념 저녁 식사 등 - 때문이 아니라 분위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모든 사람들은 평소보다 조금 더 행복해 보인다. 이유는 모르겠다. 한 해의 마지막 휴일이라서 그런 걸까? 선물을 주고 받으니까 (이건 확실히 좀 좋긴 하겠다)? 다른 모든 공휴일들에 비교해도 크리스마스는 유난히 더 즐거운 날이다. 좀 더 행복과 기쁨을 중시하는 흐름 탓일까.

확실히, 크리스마스에 관련된 사항에는 우울함이나 진지함이 거의 - 또는 전혀 - 없다. 캐롤들은 하나같이 흥겹거나 로맨틱하고, 가족과 함께 보내는 휴일은 기분 좋을 테니까. 하다못해 ‘벽난로에서 코코아와 구운 밤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무드는 정말 낭만적이고.

제아무리 시니컬한 애늙은이라도 마음이 훈훈해질 것이다.

물론 크리스마스에 얽힌 종교적 의미도 무시할 순 없다. 학교에서 고전과 역사를 공부했던 사람으로써 크리스마스는 학구적으로도 대단히 흥미로운 축일이고, 교회며 성당들은 12월의 첫날부터 완전한 축제 준비에 들어선다. 어렸을 때엔 교회에서 맛있는 것과 선물을 준다기에 별 생각 없이 엄마를 따라가곤 했지만 지금은 따뜻함을 느끼고 싶어 참석한다. 축하할 일이 별로 없는 지라 가끔은 이런 식으로 느껴보고 싶어서.

우리 가족은 크리스마스를 달리 축하하진 않고, 특별한 음식을 먹거나 선물을 교환하진 않지만, 모두가 함께 모였다는 조용함만은 은근히 즐기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나나 동생이야 한 번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그건 거의 15년 전이고, 그 이후로 받은 적은 없다.) 끽해야 크리스마스나 복싱 데이 기념 세일을 노리고 쇼핑을 하는 정도랄까, 그 이상으로 축하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일상의 리듬을 깨뜨리는 것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두 사양하고 싶은 게 정직한 마음이다. 아아, 이 나무늘보 같은 생물체 같으니라고.

올해의 크리스마스는, 연말에 겹친 여러 가지 일과 겹쳐 어영부영 흘려 보내고 말았다. 가족과 떨어져서 맞는 첫 크리스마스였다. 뉴질랜드에서도 별달리 특별하게 보냈을 것 같진 않았지만, 그래도 ‘가족과 함께 하는’ 휴일에 혼자 따로 떨어져 있다는 게 조금 신경 쓰이긴 했던 것 같다. 비록 또 다른 가족과 함께 있긴 했어도.

이렇게 고백하자면 좀 슬프지만, 정말 하는 일 없이 멍하니 보낸 것 같다. 불과 일주일 전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다. 내가 뭘 했더라. 그 ‘특별한’ ‘가족들의’ 휴일에. 케이크는 먹지 않았던 것 같고, 선물도 사거나 주거나 받지 않았던 것 같다. 메리 크리스마스, 라는 인사도 안 했던 것 같고. 그나마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일 중 가장 가까운 일을 한 거라면 코코아 한 잔을 마신 것이겠지만, 그건 벽난로 앞에서도 아니었고 코코아야 거의 매일 한 잔씩 마시고 있으니 패스.

그리고 그게 썩 나쁘진 않다. 생애 유일할 스물 몇 번째의 크리스마스를 또 한 번 이렇게 무시하고 지나가는 것도. 매년 그래왔듯이. 12월 25일이야 변함 없이 돌아오는 것이고, 그 불변성과 영원성에 가치를 두는 것이니까. 아, 물론 그리고 그 부드럽고 따뜻한 분위기에도. 다른 어떤 휴일도 가지지 못한, 크리스마스만의 특별함.

적어도 아직까진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낸 적은 없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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