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V) - 국기에 대한 경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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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V) - 국기에 대한 경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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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오클랜드의 한 교민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배포된 책자에는 의례 그렇듯이 첫 페이지에 행사진행의 순서가 있었고, 식순을 눈여겨볼 찰나 모든 하객들은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곤 국민의례가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초,중,고 교육과정을 일부분이라도 경험한 사람이라면 국민의례란 행사에서 의례 하는 의식으로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겠지만, 여기서 태어난 교민 2세나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온 1.5세대에겐 아무래도 낯설지 않을까.

필자도 한국에서 의무교육의 일부를 받았고 따라서 국기에 대한 경례는 뉴질랜드로 건너온 20여년이 지난 후에도 몸에 배겨진 습관처럼 다시 따라할 수 있는 의식이건만, 순간 당황한 나머지 박자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리곤 국민의례 내내 사색에 빠지게 되었다.

이 칼럼을 읽고 계시는 분께 다음의 순서로 질문을 드릴까 한다.
1.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보신 분?
2. 국기에 대한 경례에 사용되는 맹세의 전문을 외우시는 분?
3. 국기에 대한 경례는 왜 해야 하는지 혹은 왜 하게 되었는지 아시는 분?
4. 국기에 대한 경례는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아시는 분?

위의 질문에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독자는 질문의 순서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내려가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국기에 대한 경례는 대한민국의 국민의례의 일부분이다.  국민의례는 대통령 훈령 제272호에 따라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의 제창, 그리고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으로 이루어진다.  일반 행사에서는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은 생략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국기에 대한 경례는 1968년 3월 충청남도 교육청 소속의 한 장학계장이 처음 작성하여 장려하기 시작한 것을 1972년 문교부가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하였다고 한다.  처음 사용된 맹세문은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위하여 정의와 진실로서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이었다고 한다.  이것을 문교부가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로 수정하였고 35년 가량 사용되어 오다가, 2007년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로 다시 한번 수정되어 현재까지 사용되어 오고 있다고 한다.

국기에 대한 경례가 끝나고 나면 애국가의 제창이 이루어진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달리 애국가를 듣는 필자의 가슴은 뭉클해진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서 오랜 시간 살아와서 그런 것일까.  애국가와 아리랑은 언제 들어도 가슴이 벅차온다.  하지만 필자는 애국가 역시 따라 부르지 못했다.  음치라서 못 불렀다며 애써 자기합리화 하면서 말이다.

뉴질랜드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 또는 그것과 비슷한 것이 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뉴질랜드 국가는 일년에 한두 번, 국가대항 스포츠 경기나 학교 행사에 참석할 때 불러보지만, 필자가 학교를 다닐 시기에는 행사에서 뉴질랜드 국가를 따라 불러본 적이 없다.  그 당시 필자는 대한민국 국민이었고 뉴질랜드 국가를 따라 불렀다가는 괜시리 대한민국에게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낄 것 같아서 말이다.  그렇다면, 뉴질랜드 시민이 된 지금은 애국가를 따라 부르면 안 되는 것일까?  쓸데없는 고민이라 하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 필자에게는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진 고민이다.  이 칼럼을 읽고 계시는 독자는 별 생각 없이 지나칠 수는 있겠지만, 독자의 자녀는 한번쯤은 고민해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뉴질랜드에도 국기에 대한 경례가 생긴다면, 그리고 모든 시민이 영국 여왕폐하께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빈번히 다짐하고 되새겨야 한다면 독자는 거리낌없이 뉴질랜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 수 있을까.  만약 국기에 대한 경례를 따라 하지 않으면 학교에서 또는 직장에서 쫓겨날 수 있다면 그땐 어떡할 것인가.

그런데 말이다.  뉴질랜드 시민권을 받은 독자는 기억하실는지 모르겠다.  시민권을 수여 받는 날 독자는 이미 뉴질랜드 여왕폐하께 충성할 것을 선서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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