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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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

0 개 1,892 박지원
“도”
음정이 맞지 않는 “도”가 또 한 번 울렸다. 청색 지붕, 처마 밑에 자리한 일곱 개의 검은색 확성기가 하늘 아래 햇살을 반사시키며 나란히 설치되어 있었다. 한 시간 간격으로 확성기들은 도, 레, 미, 파, 솔, 라, 시...를 차례로 순환했다. 음정은 때때로 맞지 않았지만, 어찌되었든 그런 곳이었고, 그런 사운드가 울려 퍼지는 마을에서 소년은 자라났다.

소년은 취미가 있었다. 알록달록한 지붕을 갖고 있던 마을의 중심에서 퍼져나오는 7음계를 들으며 물구나무서는 것이, 소년의 취미였다. 물구나무를 서면 뭐가 보이냐며 모두들 소년을 비웃었지만, 소년은 묵묵히 마을의 한 구석에서 물구나무를 서보곤 했다. 팔을 곧게 펴고 마을 위에 거꾸로 매달린 듯한 소년의 모습. 그런 소년의 눈에서는 평소와 조금 다른 것들이 보였다. 줄기와 가지 밖에 보이지 않았던 나무들의 복잡하고도 명료한 뿌리들이 보였고, 땅은 하늘이 되었으며, 이를테면, 달이 해가 되는 그런 환상을 보았다.

그 날도 파란 하늘, 푸른 지붕, 검은색 확성기가 소리를 내며 시간의 간격을 알렸다. 소년은 그 때부터,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오랜 시간동안 거꾸로 세상을 보았던 소년의 머리에 피가 고이기 시작했지만, 소년이 눈을 못 뗄 정도의 그런 풍경이었다.

“솔”
그 날, “솔”이 확성기에서 새오나온 후, 한 시간, 두시간.. 일곱 시간이 지나도록 라-시-도-레... 같은 소리들이 더는 나오지 않았다. 소년의 눈 안에서, 까마득하고도 선명한 풍경들이 맺혀지기 시작했다.

황색 카메라를 든 자들이 갑자기 마을의 한 구석 어디선가부터 뛰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카메라를 아스팔트 위에 내팽개치며 각자의 입들을 벌렸다. 붉은 혀. 마치 그것은 영화제의 레드카펫처럼, 혀들은 줄줄줄 그들의 침기둥 어린 윗입술과 아랫입술 사이에서 쏟아져나왔다. 이윽고 혀는, 공장의 컨베이어벨트처럼 마을 곳곳에로 전시하듯 가동되기 시작했다. 그들의 혀 위에는 살아있는 것 같은 흑백 모조 심장이 펄떡거리며 이동하고 있었다. 소년의 동공은 커졌지만, 그 어떤 행인도 혀 위의 흑백 모조심장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고 가던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 때 저 멀리서 중년의 남녀들이 뛰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손으로 시작되는 팔을 자신들의 목구멍 깊숙이 넣어 죽어있는 심장들을 꺼내어 바닥에, 공중에 토해내듯 던지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손으로 간절히 움켜쥐고 있던 죽어버린 심장이 바닥과 충돌하고, 부서진 심장에서는 선홍빛 피가 거리에 가득 고이기 시작했다. 울부짖는 자들의 고함소리를 배경으로 황색 카메라를 든 자들의 입에서 나온 컨베이어 벨트 위의 물건들은 조금씩 바뀌어 나오기 시작했다. 죽은 심장, 찢어진 태극기와 성조기, 교복, 굳어버린 눈물... 중년의 남녀들은 여전히 흐느끼고 있었고, 파란 하늘은 바다가 되어, 거친 파도처럼 물구나무 선 소년의 신체를 무섭도록 감싸오고 있었다. 음정이 맞지 않는 확성기는 여전히, 침묵중, 이었다.

소년은 여전히 거꾸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 머리 안으로 피가 가득 스며 상체와 하체가 새하얗게 되어버리고, 팔이 후들거려도, 소년은 멈출 수 없었다. 머리 안으로 피가 가득 스며 상체와 하체가 새하얗게 되어버리고, 팔이 후들거려도, 소년은 멈출 수 없었다. 소년의 눈 속으로 핏발이 곳곳에 차올라 망막이 터질 듯 떨려왔지만, 소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너무도 충격적인 그 광경에 눈을 똑바로 뜨고 하릴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운동회라도 하는 듯이 붉은 옷을 입은 자들과 노란 옷을 입은 자들이 우르르 모래주머니를 손에손에 들고 마을의 거리 위에 등장했다. 거꾸로 선 소년은 눈알을 돌려 모래주머니가 던져질 박이 달린 높다란 지주대를 찾았지만,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곧이어, 그들은 쥐고 있던 모래주머니를 서로 다른 색 옷을 입고 있는 이들을 향해 던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아무나- 모두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새빨갛게 피가 들어찬 얼굴의 소년은 가만히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슨 까닭에선지, 거리로 뛰어나오던 그들을 기대에 차 지켜보던 몇몇 중년들의 눈에선- 모래와 흡사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마을을 뒤덮고 있던 혀 위는 눈물과 모래주머니들로 가득 들어차기 시작했다.
욕설들과, 울음소리 같은 모래들로 마을은 짙게 가라앉고 있었다.

하늘 아래 가라앉은 짙은 흰 구름들은 공허한 위로처럼, 말이 없었다.
하늘은 그렇게 침몰하고 있었다.

“라”
일곱 시간 후, 푸른 처마 밑 확성기에서 도무지 음정이 맞지 않는, 마이너 키처럼 들리는 메이저 키의 음계가 아주 조그맣게, 겨우, 흘러나왔다. 물구나무를 서고 있던 소년의 머리는 피떡이 된 채 외치지 못한 고함 섞인 눈물 한 줌으로 검은색 아스팔트 위에 옅게 남았다. 붉은 혀들과 황색 카메라들과, 피들과 빨간 옷들과 노란 옷을 입은 사람들은 온데간데 없었다. 모래만이 세월같은 바람을 타고 흩뿌려지고 있었다. 물구나무 소년이 사라졌다. 마을의 거리가 사라졌다. 광장이 사라졌다... 봄은 기어코 끝장나버린 것이었다.

침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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