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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0 개 2,080 박지원
내가 나에게 갖는 기대가 나를 미치게 한다.

기대는 구름처럼 내 머릿속을 횡횡하고 있었다. 심해 속에 가라앉는 돌덩이처럼 무겁고 무서운 까만 재 같은 것들이 구름 아래, 내 몸 어딘가에 내리고 있었다. 남들이 부추겨놓은 나의 잠재, 무심코 던진 한 가닥 한 가닥의 희망들이 거대한 빛이 되어 구름 사이를 가느다란 커튼의 흔들림처럼 내 안을 훔치고 들어올 때, 나는 몸서리치며 괴로워했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다짐하고는 했다. 남들이 거는 기대에 의존하지 말아야지, 그 기대를 따라가려는 사람이 되어야지.

때때로 그 기대는 기회처럼 내 삶 어딘가에 나타나 나에게 손짓했다. 그 손짓은 어두운 심연 속에 빛나는 하나의 기회이자 용기와도 같았다. 남들이 모르는 은밀하고 사소한 용기. 아직도 나를 버리지 못한 거울 속의 나는, 쓸데없는 자존심이라는 커다란 조각 같은 것에 갇혀있었다. 거짓 자존심의 크기는 비참함과 반비례하는 성질을 가진다. 이 비참함은 다시 허망함의 무게와도 같은 자리에 놓인다. 생각해보면 모두들- 한 순간 한 순간을 어떤 기대감을 가진 채 숨 쉬며 살아가는 것이다. 기대감을 부추겨줄 도구인, 용기를 가지고 싶어 구름 속을 헤엄쳐 들어거면, 때때로 그 곳에 다다랐을 때의 손끝에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패배감이 거미줄처럼 엉켜들었다. 너무 너무 사소하지만 나에게는 엄청난 용기라 누군가에게 말할 수조차 없는 그런 용기. 모두에게 그런 것들이 있다. 모두에게 그런 사실이 있고, 모두에게 그러한 결과들이 있었을 것이다. 엉켜있는 거미줄처럼, 풀려하면 되레 찢겨져 산산조각나는 그런 단단해보였지만 허망한 용기들. 결과물들.

그러한 용기들이 나를 채찍질하는 기대로부터 온다. 희망으로부터 온다. 절망으로부터 온다. 그러한 희망과 절망은 흩날리는 비처럼 나를 아프게 한다. 나를 달리게 한다. 나를 헤엄치게 한다. 구름 낀 거리의 머릿속은 지독한 악취로 가득 찬다. 창문에 비칠 정도의 악취들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아, 나는 또 한번 자책한다. 이게 아니었는데. 과정 중에 지독한 오류가 생기고, 착오가 생긴다. 세상과의 타협과 세상을 향해 가져야할 오만함과 겸손의 은밀함이 뚝뚝, 분절되어 불붙은 수수깡처럼 알록달록 녹아내린다. 이쯤되면.

이쯤되면 기대가 그저 희망인지 희망사항인지 혹은 그저 자발적인 강박인지 헷갈리기 마련이다. 희망의 목적을 다잡고자 애쓴다 해도, 그것이 늘 변치않는 상태로 고정되어있기는 힘들다. 상황은 시시각각 “거의 강박적으로” 변하고, 재빨리 움직이는 만큼 유연해져야하는데 쉽지는 않다. 또한 머리에 구름이 있든 악취에 가득 차 있든 그런 것을 감싸고 있는 것은 결국 세상이고, 세상과 함께 걷기에는 아직 나의 그릇이 작다. 세상으로 달려들어야만 내가 세상과 함께 걷는 사람이 된다. 내가 세상을 걷게 만드는 세상이 된다. 조그만 어항에서는 고기가 끝끝내 자라지 않는 것처럼. 그 물고기는 어항 바깥으로 나가지 않고서는 어항을 바꿀 수 없다. 멈출 듯 하는 아가미를 거칠게 헐떡이며 낯선 땅을 헤집고 나가야만 거대한 물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다. 그것은 실상 운도 좋아야만 한다.

내 머릿속에는 황금빛 물고기 비가 내린다.

내 머릿속에는 헐떡대는 아가미들이 출렁거린다.

온갖 기대들이, 내 머릿속에서, 일시적 침묵에 빠진 회색빛 군중처럼 잠영(潛影)한다.

나는 또다시 머릿속 구름의 편안하고 불안한 대기 속으로 숨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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