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눈 먼 소녀를 위한 소나타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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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눈 먼 소녀를 위한 소나타 (I)

0 개 3,746 한일수
인간의 영혼(靈魂)은 모든 참된 문학, 예술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문제이리라. 지구상의 모든 생물 중 오직 인간만이 현재에 살면서 과거를 반추하고 미래를 설계하며 살아갈 수 있다. 다른 동물 사회는 시간이라는 4차원 개념이 없다고 본다. 또한 영혼도 인간만이 간직하고 있으며 영혼은 시공간을 초월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영혼은 영(靈)과 혼(魂)의 합성어인데 일반적으로 영과 혼으로 분간해서 사용하지 않고 영혼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에게 생명을 부여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무형의 실체라고 여겨지고 있다. 따라서 인간의 육신이 죽은 뒤에도 영혼은 영원히 존속된다고 알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영혼을 식물이 가진 생장 혼(Anima vegetative), 동물이 가진 감각 혼(Anima sensibilis), 인간이 가진 지성 혼(Anima rationalis)으로 분류함으로서 영혼에 있어서 영과 혼을 나누어 생각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짐승에게는 영은 없고 혼만 있다고 하는데 짐승에게는 인간이 가진 지성 혼이 없기 때문이다. 

눈 먼 소녀의 영혼은 얼마나 순수할 까? 세상의 추잡한 것 들을 보지 않으니 그녀의 영혼은 다른 오직 감각기관에 집중되어 더욱 영적인 삶을 살아 가리라 유추해 본다. 그러나 아름다운 것들까지 볼 수 없으니 안타깝다.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것들을 어떻게 그 모습을 전달해줄 수 있을까? 

눈먼소녀.jpg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1829 -1896)의 ‘눈 먼 소녀(The blind girl)’라는 작품(1858, 캔버스에 유체)을 감상하면서 어떤 성스러운 감격을 느껴본다. 밀레이는 프리 라파엘 파(Pre- Raphaelite Brotherhood)를 지향하는 영국의 화가로 근대 기술문명을 거부하고 자연을 중시하는 사상을 화폭에 담아왔다. 

눈 먼 소녀는 어린 여동생과 함께 손풍금을 연주하면서 떠돌이 생활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소나기를 맞게 되고 자매는 들판에 앉아 숄(Shawl)을 펼쳐 뒤집어 쓴 채 비가 멎기를 기다리고 있다. 얼마 후 비가 그치면서 대지는 한결 싱그러워졌고 하늘에는 신(神)이 선물로 내린 찬란한 쌍무지개가 떠있다. 동생은 무지개를 보는 순간 탄성을 지르지만 눈 먼 소녀는 무지개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다. 마음의 눈으로 볼 뿐이다. 

동생은 눈 먼 언니에게 말한다. “무지개는 하늘에 뜨는 기막히게 예쁜 다리야. 사람들이 그러는데, 저 다리 너머에 천사들이 살고 있대. 아, 나도 언니랑 무지개다리 타고 건너가 천사들을 만나고 싶다. 오늘은 특히 전에 보다 훨씬 더 크고 멋진 쌍무지개야, 저렇게 큰 무지개를 보는 사람에게 큰 행운이 생긴다고 하던데…….

동생은 빛깔을 볼 수 없는 언니를 위해 최대한 그녀가 이해할 수 있는 희망과 모험을 담아 무지개를 들려주고 있다. 언니는 비록 지금은 세상의 가장 낮은 자로 초라하지만 미래는 결코 그렇지 않으리라는 희망을 품는다. 

한 감각의 상실은 필연적으로 다른 감각의 상승효과를 가져오는 것일까? 눈 먼 소녀의 표정을 보면서 그녀의 영혼을 음미해볼 수 있다. 그녀는 얼굴을 치켜든 채 코끝으로 비가 내린 후의 대지에서 풍기는 쌉쌀한 흙냄새를 맡고 있다. 소낙비가 선물한 꽃의 향기, 땅의 냄새, 공기의 냄새, 들풀의 냄새를 마음껏 흡입하고 있다. 화가는 비 개인후의 신선한 공기처럼 소녀의 영혼이 맑고 순수하다는 것을 강조하는듯하다. 신은 시력을 잃은 소녀의 절망을 보상해주려는 듯 눈보다 밝은 예민한 후각(嗅覺)과 청각(聽覺), 그리고 촉각(觸覺)을 선물로 내려주었을 게다. 

앙드레 지드(Andre Gide, 1869-1951)의 소설 ‘전원 교향곡’에는 한 목사가 눈 먼 소녀를 집으로 대려와 성장시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그 소녀로 인해 가족간의 갈등이 야기되어 간다. 개안 수술로 소녀는 앞을 보게 되었으나 오히려 소녀가 보게 된 현실은 고되고 힘든 일 뿐이었다. 소녀를 사이에 두고 목사와 아들, 그리고 부인 간에 일어나는 불신과 분노와 질투 등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그림이 보이는 그림보다 더 아름답고, 들리지 않는 음악이 들리는 음악보다 더 아름답다’ 라는 말이 있다. 시각과 청각을 잃은 채 평생을 살면서도 인류 역사상 위대한 업적을 쌓아 간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8)는 손에 흘러넘치는 시원한 뭣인가가 ‘물’이라는 것을 알고 그 물이라는 단어는 자기의 영혼을 일깨웠으며 빛과 희망과 기쁨을 주었고 자유를 알게 했다고 회상했다. 또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보이거나 만져질 수 없으며 그것들은 오직 마음속에 느껴질 뿐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마음의 눈이 멀고 양심의 눈이 멀어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현대인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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