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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0 개 2,035 박건호
2년 만에 한국에 다녀왔다. 인천공항의 분위기는 여전했다. 부산스럽지만 깔끔한, 이용자의 동선을 최대한 고려하여 만든 회색빛의 거대한 이동체. 사람들은 세포처럼 꿈틀거리며 각자의 짐을 쥐고 이동을 하고 있었고, 나는 꽤 얇은 옷을 입은 채 바스락거리며 흩어지는 겨울의 입 김을 한 움큼씩 내뿜으며 버스를 타려고 공항의 문을 열었다.

3주 간의 긴 휴가. 공항 문을 나선 뒤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일들이 지나갔다. 미래에 놓여질 과거들이 퍽 3인칭스레 내 곁에 머물다가 흩어지는 느낌이었다. 이를테면 이러한 것이다. 뉴질랜드에서는 펭귄이 날 수 있느니 못 나느니로 대화를 나누고, 가끔 밀리 터리 무늬의 캡 모자를 쓰고 다니면 사람들이 웃으며 거수경례를 한다. 나는 쓸데없이 거만한 한국의 예비역답게 거수경례를 받아주곤 했었다. 한국에 와서는 마치 이등병으로 돌아가기라도 한 것처럼, 쏟아지는 인공의 불빛들을 헤매고 다녔다. 내 또래의 친구들은 어느덧 퇴역장교처럼 피곤한 표정으로 돈에 관해 수런수런 이야기를 나누고, 전쟁이라도 끝난냥 해가 지면 술을 들이키며 내게 자신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 헐떡이며 털어놓았다. 나는 이등병처럼, 꾸역꾸역 고개를 끄덕이며 꾸역꾸역 안주(2년 동안 이게 제일 그리웠다)를 입에 쑤셔넣었다.

내가 내 이야기를 할 때는 조금 곤혹스러웠다. 친구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때- 모두가 꽉 막힌 호리병 구간 위에 서 있는 차량들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들이 질문하는 뉴질랜드의 생활에 대해서 내가 대답을 하면, 그들은 자신들을 뒤로 내쳐둔 채 갓길 위를 질주하는 어떤 차량을 보는 표정을 짓는 것이다. 갓길로 차량을 움직이기 위해선, 법을 떠나 용기가 필요하다. 일부는 내게 갓길로 이동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묻기도 했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거리로 나갔다. 뉴질랜드에 있는 동안은 늘 그런 것들이 궁금했다. 내가 예전에 그 거리로 다시 가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 때 가지고 있던 가치들이 변하지 않은 채로 그 거리에 그대로 서 있을까. 내가 거리에게서 위로를 얻어내는 기분이 들까, 혹은 내가 거리를 위로하는 기분이 들까. 찬바람 속 파란 햇빛을 걸어가며 이른 거리 속은, 다가가면 사라지지만 뺨에 촉촉한 땀방울로 맺히는 새벽과도 같은 기분이었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 접근하자면, 물건이 이렇게 많았나, 하는 것이었다. 사람도 많고, 물건들도 많았다. 뉴질랜드에서 입고 다니는 옷을 입고 면도도 안한 채 돌아다녔더니 사람들이 나를 물건보듯 쳐다보았다. 명품에 제일 관심이 없는 나라에서 명품수요가 제일 높은 나라로 왔더 니 명품 그 자체는 온데간데없고 시선을 의식한 소비들만이 분수처럼 거리를 뒤덮고 있었다. 분출하는 분수 속에서 수많은 이웃의 시선들이 정신없이 이웃들을 과하게 사랑하고 있었다. 쏟아지는 광고들, 거북한 안도와 우아한 좌절들, 소비를 위시한 시선들이 거대한 정원을 이루고 있었다. 그 속의 이방인은 코를 훌쩍거리며 자기만족의 푸른 수염을 쓰다듬고, 한 손으로는 타인의 가치를 자신의 방에 차곡차곡 죽여내고 있었다.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편협한 것은 좋지 않다.

그 거리에서, “생각이 다른 것”이라고, 이제는 그렇게 생각할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수없이 제제했다. 알고는 있지만 잊기도 쉬운, 삶의 여유와 다짐들. 내가 마주보아야 할 것은 비난이 아니라 생각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가 내가 앞으로 해야 할 몫의 전부다. 작은 일들, 작은 몫들이 삶을 이룬다. 작은 일들과 작은 몫들은, 작지만 적지는 않은 채로 우리를 지나간다. 결국 그 중에서 무엇을 잡을지, 무엇을 볼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시간들. 삶은, 그 작은 시간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비록 갓길인생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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