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준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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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준 지혜

0 개 3,080 김지향
13년 전 뉴질랜드로 올 때, 영어권에서 살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영어를 잘하게 될 줄 알았습니다. “3개월만 지나면 영어로만 말하게 될 거야.”란 형부의 얼토당토하지 않은 격려를 굳건하게 믿고 아이 셋을 데리고 용감하게 태평양을 건너 왔습니다.
 
일부러 한인이 적은 파머스톤 노스로 왔지만, 내 예상은 어김없이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들에서도 샌다’는 옛 속담에서처럼 어려서부터 영어 공포증이 심했던 40중반의 내가 한국을 떠나서 뉴질랜드에 왔다고 그 공포증으로부터 헤어날 수 있었을까요?
 
영어를 잘하고 싶은 욕심에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영어학원에 다녔었지만, 늘 그렇듯 나는 초반기에만 열심히 공부를 하고 한 학기가 지나면 흐지부지해지다가 1년을 겨우 채우고 다시 포기를 하곤 했었습니다. 삼세번 도전을 했었지만, 점점 더 남편과 아이들에게 의존하게 되어 오히려 처음 이곳에 왔었을 때의 용기마저도 사라져갔습니다. 

영어를 못해서 이 땅위에 숨 쉬고 살 수 없을 정도의 상황이었다면 아마 나이니 뭐니 핑계대지 않고 죽기 살기로 노력을 했었을 겁니다. 영어 때문에 굶어죽게 된다고 해도 기를 쓰고 영어를 사용하려고 온 힘을 다했을 겁니다. 그런데 난 영어를 잘하지 못하면서도 뉴질랜드에서 사는 것이 그토록 견딜 수 없을 만큼 불편하지는 않았습니다.

영어 때문에 답답하면서도 이곳에서의 삶이 괜찮았던 것은 아마도 이곳의 삶을 좋아했기 때문일 겁니다. 비록 한인이 적어서 약간은 외로운 곳이지만, 어쩌면 그 외로움을 즐기기 위하여 인구 70000명의 작은 도시에서의 삶을 선택했을지도 모릅니다. 한국에서의 얽히고 설킨 관계 속에서 지친 가슴을 치유하고 싶은 마음도 컸었을 겁니다.

내가 원하는 만큼의 관계를 이루어나가면서 그동안 잊었었던  자신을 찾아가고 싶었습니다대가족 생활 속에 2 4녀의 셋째 딸로 태어나 외며느리로 살면서 나란 존재를 상실하고 살았었기에진정한 자신을 찾고 싶은 갈망으로 지구  반대편인 남반구의 작은 섬나라를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초록별인  지구에서 한국과 위치적으로도 정반대인 뉴질랜드는 문화와 관습마저도 한국과 거꾸로인 것들이 많았습니다 셋을  나로서는 이렇게 거꾸로인 나라에 매력이 절로 가더군요 넷을 낳고 백일기도로 아들들을  친정에서의 나란 존재는 이리저리 치이는 아주 작은 존재일 수밖에 없었습니다그런데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무서운 시집살이를 해야 했고분가를 했지만  굴레로부터 벗어날  없었습니다.
 
여차저차 뉴질랜드로 오는 데 성공하여 새로운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 길만이 내가 살 길이란 생각으로 강행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 결과 뉴질랜드에서 영주권도 얻었고, 온 가족이 매일 아침과 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해보지도 않았던 일들을 하면서 힘들었었던 순간도 많았지만, 자연이 늘 치유를 해주고 있었고, 세 딸들이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르면서 살았더군요. 올망졸망하던 녀석들이 이제는 모두 성인이 되어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답니다.

작년 말에 둘째의 뇌하수체종양이 발견 되어, 이제껏 수술과 더불어 투병생활을 하고 있지만, 많이 호전이 되어 완치의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둘째 때문에 가장 가슴이 아팠지만, 그 아픔으로부터 얻은 지혜도 그에 못지않게 큽니다. 둘째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아이와 내가 하나라는 걸 알게 되어, 나 자신을 많이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지혜지요.

아이의 뇌하수체에 종양이 생겼다는 걸 알았을 때보다 수술이 실패하여 재수술을 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의 절망감은 도저히 말로 표현을 하기 힘들군요. 하지만 그 절망감은 강한 생명력을 일으키게 해주었습니다. 대체요법과 생식 등을 현대의학과 병행하면서 긍정의 힘으로 사랑의 기적으로 남은 종양을 사라지게 하려 노력했습니다.

며칠 전 수술을 집도한 신경외과 전문의가 올해 초에 찍은 MRI와 며칠 전에 찍은 MRI를 보여주면서 비교를 했는데, 이번의 스캔에 종양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서 어쩌면 남은 종양이 MRI에 찍히지 않을 정도로 작을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올 12월에 재수술을 하려고 찍은 MRI 스캔이 너무나도 깨끗하게 나온 것입니다. 앞으로 7년 동안 일 년마다 한 번씩 상담을 할 것이니 만약 종양이 있다면 1년 후에 찍는 MRI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적이 따로 없더군요. 대체 무엇이 이런 기적을 이루게 했는지 확연하게 들어나지 않지만, 투병생활 중의 모든 정성들이 일등공신이었다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내 본연의 사랑을 되찾으려는 노력이었습니다. 어미의 분신이 아픈 건 어미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여겨졌었기에 아이를 돌보는 만큼 나 자신을 돌보려 노력했습니다.

이제 ‘김지향의 자기사랑 이야기’를 글로 풀어가겠습니다. 아이가 나에게 선물한 내면의 사유들이 나만의 자기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자기사랑이야기가 될 것으로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사랑을 우리 함께 키워나가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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