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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나 있는, 어디에도 없는

0 개 1,835 박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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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랭귀지 스쿨에서 한국말 가르치기: 교재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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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작곡 공부 재개!
5. 어플 제작 공부!
6. 부모님 뉴질랜드 방문. 일정 짜놓을 것!


새해 들어서 할 일이 갑자기 산더미처럼 쌓여버렸다.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다 팔자려니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다.. 지만, 힘든 건 힘들다. 특히 저 위의 1번, 2번과 3번으로 평소의 개인시간이 많이 들어가고 있다.

한국에선 나름 치열하게 살았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뉴질랜드에서만큼은 치열하게 사는 것을 최대한 피하고자 했다. 돈은 저축이 가능하되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으로 벌고, 남는 시간에 개인적으로 하고 싶었던 공부들을 하는 것. 그것이 이 곳에 온지 2주일이 되었을 때 세운 나의 목표였다. 지금은 그 목표의 밀도가 다소 높아져서, 조금은 치열해졌다고 느낀다.

재미있는 것은, 그 치열함의 온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아마도 한국의 최저시급과 연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확실히 5000원도 안 되는 돈으로 살아가며 저 위의 것들을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뉴질랜드 시급의 기준은, “먹고 사는 것” 뿐만이 아닌 “취미와 여가를 즐기며 먹고 사는 것”으로 책정된 듯하다.

어찌되었든, 여기는 뉴질랜드. 변한 환경에 따라, 돈이 조금씩 쌓여가고 몸은 조금 바쁘지만 즐거워지자 목표도 변한다. 지금의 내 목표는, “어디에나 있는 그리고 어디에도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선 내 장점을 적어 내려가 보았다. 민망했다. 그 목록들 중 가장 눈에 띄고 활용도가 높은 것이 “취미가 많다”였다. 취미가 많은 덕분에 시간이 없었던 한국에서는 늘 욕구불만의 상태로 지냈었고, 반면 뉴질랜드에 온 뒤로는 넘쳐나는 이 시간들이 전혀 심심하지 않았다. 이윽고 심심하지 않을 만큼 취미를 가졌다면- 그것을 먹고 사는데 활용하자, 라는 심플한 결론을 내렸다. 즉 내가 끄적끄적 만드는 프로젝트들을 세계 각지에 보내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걸리면 신나고, 안 걸리면 말고의 삶을 살기”라는, 아주 게을러 보이는 목표를 세웠다.

사실 한국에서 작품출품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몇몇 군데 어줍잖은 작품들이 걸리기도 했었다. 다만 출품한 숫자에 비해 걸린 곳은 많지 않았고, “대회입상” 이라는 “운에 가까운 스펙”이 무기일 수밖에 없는, 예체능 위주의 취미를 가진 내게 있어서 “수상” 혹은 “진출” 이러한 것들은 정말 절박했었다. 마치 실적을 올리려 뛰어다니는 영업사원처럼, 우체국에서 열심히 박스들을 접어 각종 대회에 보냈었더랬다. 기대만큼 결과는 그리 좋진 않았고, 기대했던 만큼 실망도 많이 했었다. 또한 심지어 그 일들과 더불어 먹고 살기도 바빴다.

목표가 애매한 삶은 삶 자체도 애매해진다. 생각해보면, 그 스펙들이 쌓아서 뭘 할지도 정확히 모르는 상태였다. 그렇게 한국에서는 참 애매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지금, 오히려 타지에 와서 목표가 생겼다. 때때로 길을 어긋나지 않으면 자신을 돌아볼 수 없다 류의 허세 어린 조언들을 듣게 되는데- 어떤 의미로는 맞는 말이다. 그리고 어긋난 길이 내가 서 있는 또다른 길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언제가 될지 모르는 삶의 끝을 언제든 행복하게 맞이하고자 세운 목표. 그 목표가 어렴풋하게 보이니, 좀 더 여유롭고 긍정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된다. 어차피 내가 하는 모든 취미들이 공부이자 목표를 향한 일이니까. 목표에 맞춰서 하기 싫은 것을 하고 싶게 만드는 삶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에 맞춰서 목표를 만드는 지극히 정상적인 삶. 이 곳에선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인터넷은 정말이지 유용하다. 내가 어딘가에 있게 만들 수도, 어디에도 없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 인터넷이다. 이 양면성 그득한 도구를 나를 출력할 수 있는 창구로 최대한 활용한다면, 현재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나라는 존재를 철저히 제(除)한 그저 “내 작품의 메시지”들이 때때로 등장하고 존재하는 그런 세상 말이다. (아니면 말고.)

약혼자와 함께 만주로 몰래 떠난 여동생 옥희에게 작가 이상은 이런 편지를 썼다. “…너희들의 부끄럽지 않은 성공을 향하여 전심을 써라. 3년 아니라 10년이라도 좋다. 패잔한 꼴이거든 그 벌판에서 개밥이 되더라도 다시 고토를 밟을 생각을 마라…” 지금의 나에게 이렇게까지 장엄하게 자언할 순 없겠다. 하지만 먼 훗날 누군가 내게 이런 편지를 보낸다면, 다음과 같이 답장할 수 있게 될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누구든지 정말 이루고 싶었던 목표를 보았다면, 누구든 패잔할 순 없다. 목표의 길 위에서 즐겼다는 것만으로 패배와 승리의 경계 자체를 이미 넘어선 것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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