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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이스트처치 기행 메모

0 개 1,700 박건호

1. 백패커. 나는 1층에 있었고 호주에서 왔다는 한국인은 2층에 있었다. 그는 침대 위에서 무언가를 먹고 있었고, 머리 위에 있는 할로겐 조명을 켠 채 노트북으로 뭔가를 감상하고 있었다. 2층에서 무엇인가 즐거운지 낄낄거렸다. 참 순수한 사람이구나, 혼자 저렇게 즐거워 할 수 있다니. 커다란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2층의 컴퓨터 팬으로 인해 1층, 내가 누워있는 침대는 참 따뜻했다. 땀이 날 정도였다. 주변 사람들 모두, 2층의 호주에서 온 한국인의 순수함에 탄복한 듯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새벽 1시 30분이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이야기했다. 저기요 죄송한데요, 위에 불 좀 꺼주시면 안 될까요? 그는 나를 보며 컴퓨터 옆의 책을 아무 말 없이 들어 보였다. 책을 봐야 해서 불을 못 끄겠소이다, 라는 뜻의 제스처 같았다. 그 책은 여행책자 같았다. 아, 그의 빛나는 학구열에 나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말해봐야 입만 더러워질 것을 직감했다). 아아, 그의 컴퓨터에는 한국 쇼프로가 재생되고 있었다. 아아아, 그의 과자먹는 소리는 마치 이빨이 자라난 내 고막이 과자를 씹어먹는 듯 했다.

H 회사 노트북의 CPU 내 발열 온도는 80도 이상이다. 아아아아, 내 침대는 CPU가 되었다.

내가 눈 앞에서 처음 본, 어글리 코리안이었다. 그저 분위기 파악을 심히 못해서 어글리한 것인데,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모여있으니 코리안이 붙는 것임을 깨달았다. 모든 코리안이 다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는 있을 것이다. 다만 이성보다 무서운 건 한 순간의 이미지다. 그 어글리한 이미지의 지속시간이 그날 새벽 3시까지 이어졌다는 건 불행이었고, 그 이미지가 딱 하룻밤만을 묵었다는 것만은 다행이었다.

2. 크라이스트 처치 현지에 사는 한국인 D를 우연히 만났다. D는 아직 어린 학생이었는데, 두런두런 어느 햇볕 아래 앉아 얘기를 나누었다(달리 갈 곳이 없었다) 조금 있으니 D의 친구들이 차를 타고 왔다. 어차피 가는 길이니, 백패커로 나를 함께 데려가 줄 수 있냐고 D가 그들에게 부탁했고, D의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나는 차에 타며 인사했다. D의 친구들은 처음 보는 나를 본체만체 했다. 낯을 가리는 성격들이겠거니, 하고 차의 뒷자리에 앉았다. 10분 남짓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내 머릿속에선 그들의 대화 소재들이 간단한 문장들로 정리되고 있었다. “떨이가 조금 남았으니 백패커에서 하자” “좆, 좆, 좆” “어제는 백마를 따 먹었다” “이 곳은 아무 것도 없어서 여자를 꼬실 수 없으니 밤새도록 술을 마시자” “좆, 좆, 좆” “굿 잉글리시 스피커라서 그런지 유니세프에 입사추천을 받았다” “좆, 좆, 좆” 초면에는 도저히 끼어들 수 없었던 오클랜드 아무개 대학에 다닌다는 나보다 한참 어린 그들의 “좆, 좆, 좆”에, 나는 “좆, 좆, 좆” 생각했다. 알고 보면, 이러한 허세 어린 아무개들은 훗날- 만약이라는 가정하에- 현실의 구석에 몰리게 되었을 때 결국 영어실력을 이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외국 경력의 사용이 꽤 편리한 한국에서는- 결론적으로 이미 어느 정도 기득권의 지위를 확보한 상태인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차에서 내린다. 감사합니다. 차는 그저 떠나간다. 역시, 기득권은 작별인사를 할 줄 모른다.

3. 햇수로 2년 전. 지진의 여파가 아직도 남아있는 도시. 백패커에 있던 나는 밖으로 나왔다. 거대한 상실 이후의 공간에서 혼자 서 있었다. 많은 건물들이 부서져 있었고,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복구인력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연말이라 그럴 수도 있겠거니 생각한 채 펜스를 따라 쭈욱 걸었다. 진입이 금지된 펜스너머로 활기찼던 삶 이면의 적요가 느껴졌다. 부서진 유리들과, 미처 챙겨가지 못했던 가전도구들과, 아직도 OPEN이라고 붙어져 있는 글귀들까지.

내 등 뒤로 햇살이 비추고, 헝클어진 머리의 내 그림자가 길게 누운 채 나를 보고 있었다. 어색하게 마주보고 있던, 담장을 사이에 둔 나와 나의 대면. 펜스를 한 손으로 잡고 그런 나를 보는 나. 깨진 유리들에 몸 한쪽을 관통당한 누워있는 나. 그가 내게, 모든 것이 다 연극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너머의 삶이든, 이 너머의 삶이든. 찰나의 순간이라고.

내가 걸음을 옮기자, 그가 내 등 뒤에 대고 속삭였다. 그 연극이 언젠가 마무리될 때 힘들어지지 않도록, 열심히, 재밌게- 순간을 살아달라고. 겹겹이 쌓여있는 피안 너머의 후회들이 나를 다독이고 있었다. 그렇게, 모든 것들이 뒤섞인 도시가 나를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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