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산다. 우리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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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산다. 우리는 지금...

0 개 2,396 오소영
옆집의 ‘베티’ 할머니가 휠체어로 외출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안쓰럽다. 
 
세상을 넓게만 살려는 듯 마냥 뚱보가 될 때부터 불안했다. 언제부터인가 지팡이에 의지해 쩔뚝거리고 다니더니 아예 요즈음은 두문불출로 한동안 얼굴 보기도 쉽지 않았다. 어디 병이 났나? 많이 궁금했는데 드디어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 저물어가는 공감대의 이웃 사람들 마음을 많이 쓸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웃이 건네주는 한국 인삼차를 애음(愛飮)하며 ‘파워 맨’을 자칭하는 든든한 남편이 옆에 있어 ‘베티’는 어항속의 물고기처럼 편안한 삶을 살아가는 행복한 노인이다. 세탁물도 남편이 널고 걷고. 마트에 쇼핑도 모두 그의 몫으로 바쁘게 뛰어다닌다.
  
빛이 나도록 하이얀 은발에 햇병아리처럼 샛노란 정장으로 아래위를 차려입고 외출할 때면 영국 할머니의 기품이 저런 것 이구나. 경탄으로 바라보곤 했었는데....

제아무리 천하 장사라도 가는 세월 붙들 수는 없어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라는 말이 있다. 오늘날 장수시대. 백수를 부르짓는 시대라 해도. 어디 베티뿐인가.. 그 또래의 우리들은 이미 낡아버린 고물차 같아 녹슬고 망가진 부속(?)을 갈아끼우며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는 여생을 불편한채로 살아간다. 허리아파, 다리아파, 무릎아파, 아픈데가 없으면 오히려 비정상이듯 여기저기 서로 아픈데를 엄살하며 동병상련(同病相憐)으로 살아가는 노후인생.. 골프가방 들고 나서면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의식하곤 하지만 겉만 멀쩡하지 나도 망가진데가 참 많다. 끊임없이 울려대는 이명(耳鳴)이 진작부터 시작되더니 이젠 난청으로 아예 귀를 닫아버렸다. 허울만 괜찮은 장애자가 아닌가.. “엄마아~” 아이들이 큰 소리로 불러야만 듣고 반응하는 나는 이미 절반은 내가 아닌듯이 스스로가 느껴져 민망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잘 지내는가 궁금하고 목소리 듣고 싶어 전화했어” 오래간만에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정신이 약간 혼미 해진 다음부터 자주 전화 나누지 못해 모든걸 잊은신줄 알았는데 목소리가 분명하고 확실해서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무슨 불만이 그리 많을까? 늙으면 어서 죽어야 한다는 한탄이 쏟아져 나온다. 요즈음 어느 드라마에선가 많이도 듣던 시어머니 대사인데 그게 바로 언니의 신세 한탄이라니.... 핵가족화한 이 시대. 고부(姑婦)가 한 지붕밑에 살면 다 그렇게 되는가보다 라고 안타까운 쓴 웃음이 흘러나왔다. 빈 말인줄 알지만 얼마나 더 길게 살거라고 죽음을 재촉하실까?.
 
“언니 지금 일반 전화 쓰는거지?”   

“그러엄 집 전화지, 나 카드같은 것 이제 없다”    

나는 깜짝 놀랐다. 우리언니 아들 며느리한테 또 야단 맞을 일 저질렀구나 싶어 서둘러 그만 끊자고 보챘다.   

“나 괜찮다. 그정도 쓸만큼 권리있어.” 우리언니 그런사람 아닌데 또 정신 놓치셨구나. 오랫동안 마음이 허허로웠다.
 
내게 지난 겨울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간들이었다. 지병인 소화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서 더 이상 버티고 싶지않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밤마다 깊은 잠 못 이루고 혼자서 죽음의 공포에 떨며 그 마지막 날을 헤아리곤 했었다.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들. 도무지 생각나는 것이 없으니 삶이 지루하고 고단했다. 고통속에서 삶의 의미를 스스로 자문자답 하면서 끝이 안 보이는 나락으로 한없이 추락해 몸의 병보다 마음의 병이 더 무서웠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가 맡은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는 일. 일그러진 의식을 추스르며 그 곳. ‘무지개 시니어 중창단’에 연습을 가야 하는 날은. 참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가 혼란스러웠다. (12월 2일 이번 공연까지는 어떡하든 버텨내야지) 음식을 아주 조금만 먹어도 소화는커녕 목까지 치올라오는 괴로움속에서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가 없었으니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헛된 노력과 기대일뿐 절망하고 또 절망했다.
 
하지만 이대로 쓸어지면 나는 영영 끝이다. 정신 차리자, 일어서자.

약하게 무너지려는 자신을 분노로 채찍질하며 아집과 오기로 지켜온 긴 나날들. 스스로 무너진 자신을 추스르는데 참 많은 시간이 흘렀다. 어떤 책임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게 아닐까?

연습 때마다 항상 한 두 사람 빈 자리가 생기는 것도 노인들 특성으로 감기다 몸살이다 잔병이 이유이다. 모두의 건강을 바라며 살얼음을 밟듯 조심조심 여기까지 올 수가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잠깐씩 젊은이 같은 착각도 하지만 내일이 불안한 사람들이 황혼인생에 아름다운 꽃을 피워보자고 목청껏 노래를 부른다. 세상를 향해 빛을 뿌리고 사랑을 호소한다. 그게 바로 우리가 남은 여생을 멋지게 살아갈 목적이기도 하니까...

서로간의 따뜻한 격려와 열성과 협동.  사랑하는 마음들이 다져져 무사히 도착한 길. 12월 2일 저녁은 할머니와 손주들의 공연에 엄마 아빠가 박수치며 함께 즐기는 가족축제의 날로 오클랜드 교민사회가 한바탕 뜨겁게 달아오를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들은 아름다운 밤하늘의 별빛되어 요즈음 살아내기 힘든 교민사회를 잠시나마 훈훈하게 만들어 보려고 혼신의 노력을 다 할 것이다. 사랑과 기쁨의 전령사로서 지금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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