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겨울, 등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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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겨울, 등교길

0 개 1,645 한얼
겨울의 등교길은 언제나 머릿속에 남아 있다. 매일매일의 시작이 똑같기에 한 덩어리로 엉겨 거대한 공이 되어 버린 식으로, 겨울 아침들은 그렇게 일체화되어 구분할 수 없는 기억이다.

그런 겨울 하루의 시작을 나름대로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사람들이다. 물론 나는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지 못하지만 그들의 특징들이 하나같이 닮았다는 데서는 충분히 기억한다.

겨울이 되면, 사람들은 모두 재킷이나 코트를 껴입는다. 이곳은 한국처럼 눈이 오는 대신 폭풍이나 비가 불의의 기습을 가할 수 있으므로 우산은 필수품이다. 개중에는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지 장갑을 끼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나처럼). 그렇게 중무장을 한 채, 사람들은 종종 걸음을 치며 배로 향한다 (그렇다. 나는 배를 타고 등교한다). 배를 운영하는 기사는 윌이거나 아론이거나 브렌트이거나, 그런 할리퀸 소설에 나올 법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쾌활하고 친절한 아저씨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건네는 인사말 또한 박혀 있는 틀에서 잘 벗어나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잘 지내요? How’s it going?

티켓을 끊고 나면 자리에 앉아야 한다. 아침 관찰의 묘미는 여기서부터다. 자리를 잡고 앉은 후 주변을 둘러보면, 위에 언급했듯 추위와 비바람에 대항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사람들이 서로를 마주보고, 또는 앞뒤로 앉아 있다. 그리고 그들의 손엔 거의 항상 MP3나 핸드폰이나 책이나 스도쿠, 신문 같은 소일거리가 들려 있다. 서로 간에 간간히 의사 소통을 하기도 하지만 배가 시동이 걸리고 출발하고 나면 우레와도 같은 소음 때문에 그마저도 점점 간격이 줄어든다. 원하던, 원치 않던 사람들에겐 침묵이 내려 앉는다.

수업이 이른 시각에 시작하는 탓에 비교적 일찍 집을 나서는 나는,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불행한 비(非) 아침형 인간들을 쉽게 구분해낼 수 있다. 눈이 흐릿하거나, 하품을 몇 분 간격으로 해대거나, 또는 이 모든 소음, 낯선 이들의 숨결이 섞여 더워지는 공기와 비가 왔을 시엔 서서히 불쾌하게 풍기기 시작하는 체취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조는 사람들이다. 하긴, 그런 아침들이 한 두 번도 아니니 그만큼 익숙해진 것이겠지만.

역시 인간이란 적응력이 뛰어난 동물이다.

그 모든 지겨운 의례를 통과하고 시내의 항구에 도착하고 나면 이제 또다시 무수한 인파와 낯선 냄새들과 도시의 먼지, 교통 체증을 뚫고 20여분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길 또한 배를 타며 견뎌야 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기사의 갑옷처럼 두꺼운 겉옷들을 두르고, 투구 대신 이어폰이나 헤드폰으로 귀를 덮은 사람들. 찌푸려진 미간과 손에 들린 핸드폰들. 그 모든 것들은 스스로를 외부 세계로부터 철저히 고립시키는 데에 그 어떤 방어구보다도 훌륭한 효과를 낸다. 나는 바빠. 나는 갈 곳이 있어. 나는 할 일이 있어. 난 사람과의 접촉을 원하지 않아. 네 일을 보고, 난 내 일을 볼 테니 피차 신경 쓰지 말자……

그런 겨울날 아침이면 하늘은 으레 칙칙하고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회색의 50가지 그림자 중 하나이고, 그런 빛은 어떤 색이던 바래 보이게 한다. 원래 검은색이나, 무채색 옷만을 즐겨 입는 내겐 별로 상관 없지만, 모처럼 화사하게 차려 입은 채 출근길에 나선 젊은 아가씨들은 19세기의 ‘병적인 미인들’ 같고, 넥타이와 검은 정장의 아저씨들은 측은해 보인다. 그리고 그들은 가끔씩 담배를 피운다. 횡단 보도 같은 곳에서 담배를 피울라치면 주변인들의 시선이 따갑지만, 흡연자들은 대개 모르는 척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는 굳은 심지를 발휘한다.
늘 같은 겨울의 도시와 등교길의 우울함, 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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