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일 폰 박물관과 석주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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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일 폰 박물관과 석주명

0 개 2,690 정경란
한국을 여행 중이다. 이번 여행의 주제는 박물관기행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전국의 박물관을 훑고 있다. 제주도에 박물관이 무려 100여개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인구 대비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물론 육지에서 수학여행을 온 내국인 학생들, 중국인, 일본인 관광객들을 겨냥한 관광상품으로 비춰지기도 하지만, 국공립이 아닌 개인이 자비를 들여 평생 모은 수집품을 전시, 일반에게 소개할 목적으로 설립한 사립 박물관의 숫자가 적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반드시 그렇지 만도 않은 것 같다. 박물관적 지식에 목마른 탓인가. 방학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박물관을 찾는 엄마들을 보노라면 이 풍경 역시 지극히 한국적이라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나 역시 방학이나 휴일이면 이촌에 새로 지은 국립중앙박물관을 가고, 가고, 또 갔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지겹다거나 지루하다고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올해 다시 찾은 용산국립박물관은 그 위용이 남다르게 느껴졌고 새삼,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나라별 박물관의 숫자를 보면, 한국이 1,000 (영국과 같다), 일본이 3,000, 미국이 한국의 10배에 해당하는 만 개 라고 한다. 그런데 한국에 세계 유일의 박물관도 적지 않다. 그 중에 인상 깊었던 것은 여주의 폰 박물관과 과천의 카메라 박물관이었다. 사실 여주에 있는 폰 박물관은 그 박물관 소장품에 특별한 관심이 있어서 방문한 것은 아니었다. 그 박물관을 세우고 운영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전직 언론인으로, 나비 박사 석주명의 자료를 수십년간 모으고 연구해 <석주명 평전>을 출판한 이병철님이었기 때문이다. 그 책의 번역 가능성을 타진하고 그간 기울인 노고에 조그마한 찬사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우선 폰 박물관을 살펴보면,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 잡은 박물관은 사계절 속에서 얼마나 아름다울지 상상이 되고도 남았다. 사륜구동 자동차만 믿고 나선 길이었으나 이병철님이 들고 내려오신 연탄재와 체인에도 불구하고 끝내 박물관 마당에는 오르지 못했다. 결국 차를 내버려두고 올라갔다. 이병철님이 박물관 소장품들을 일일이 다 소개해주시는데, 석주명을 세상에 다시 되살리는데 들인 열정만큼이나, ‘산업시대의 고고학’이라고 스스로 명명하신 전화기 수집에 들인 열정, 시간, 금전적 노력은 그냥 감탄만 하고 말 것이 아니었다. 이병철님이 전화기를 수집하게 된 계기는 아주 단순했다. 오래전 맨 처음 사서 쓰게 된 핸드폰을 집안 어딘가에 두었는데, 그게 이사를 다니는 와중에 그만 잃어버렸다고 한다. 다시 구할 길이 없음을 알고는 이게 바로 우리 ‘산업시대의 고고학’이 아니겠는가, 싶어서 그 길로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서 수집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입장료만으로는 수익은 커녕 운영비도 되지 않는데다, 지자체의 도움은 커녕 냉담함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듯 했다. 이렇게 개개인들이 노력과 열정으로 일군 ‘문화적 사업’을 지방자치단체가 조금만 더 관심 갖고 지원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전시성 사업, 그래서 일회성으로 그치고 마는 운명을 맞는 사업에 그동안 얼마나 많은 돈을 낭비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럼, 이병철님과 석주명의 인연을 보자. <석주명 평전>의 저자 서문에도 나와 있듯이, 이병철님은 학창시절 ‘한국의 자생적 학문’을 역설하면서 한반도 곳곳을 누비며 나비의 서식분포를 밝힌 인물로 석주명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라는 식의 짧은 이야기를 선생님으로부터 듣고는 그에 대한 관심을 마음 한 켠에 간직하게 된다. 그러던 중, 일간지 기자로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석주명에 관한 자료들을 본격적으로 모으고, 가족들과 지인들을 인터뷰하며 그의 천재적이면서도 열정적인 짧은 생애에 감염되듯 홀려, 결국 그에 관한 평전까지 저술하게 된다. 그 후 평전은 여러 차례의 추가적인 개정을 통해 더 세밀하고 전문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병철님의 노력으로 말미암아 한국 대학의 생물학 교수조차 이전에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석주명은 역사 속에서 부활하게 되고 어느 해에는 문광부 지정 ‘올해의 인물’로도 지정되어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줄 만한 자랑스런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나비박사로 불리는 석주명의 업적과 한반도 서식 나비 분포에 관한 전문적인 학술서적 이야기, 한때 근무했던 제주도에서는 제주도 방언을 연구해 제주도 방언에 관한 전집을 저술했던 이야기 등은 독자 여러분이 <석주명 평전>을 굳이 찾아 읽고 생생하게 느껴야 할 부분일 것이다. 한가지, 초등학생과 청소년을 위해서 다소 간략하게 나온 평전들이 많이 출간되었으나 그 대부분은 (아니,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병철님이 쓴 <석주명 평전>의 내용을 훔친 것이라고 보아도 좋다. 무단으로.


▲ 최근에 새로 옷을 입은 이병철저, <석주명 평전>이다.

한국의 과학자들에 관한 평전이 드물고, 또 평전이야말로 전문적인 글쓰기의 최고봉이라는 점에서 이런 책은 마구 마구 사서 열심히 읽어야 한다고 본다. 그 분의 노고에 대해서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다음 회에는 카메라 박물관과 뉴질랜드인으로서 세계 최초로 파노라마 카메라 렌즈를 발명한 알렉산더 맥카이에 대해서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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