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절친 차이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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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절친 차이니즈

0 개 1,777 정경란
북섬과 남섬 이곳 저곳을 여행하다 보니, 어느 소도시를 가도 보이는 게 바로 차이니즈 피쉬앤칩스 였다. 중국인 이민 선배들이 현지음식과 그 현지인들의 입맛에 맞춰 변형시킨 중국음식을 파는 이런 유형의 음식점은 어딜 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실제 달달한 중국식 음식을 사가는 고객은 탕수육이나 볶음밥에 익숙한 나같은 한국인과 키위가 많지 실제 중국인 고객들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여섯 식구인지라 어지간해서는 외식을 하기가 쉽지 않다. 간혹 나만의 호사스런 점심을 고려하다가도 결국은 냉장고에 남은 음식들을 다 쓸어 모아서 먹는 걸로 끝이 난다. 웰링턴 바닷가에서 남섬을 바라보는 전망 좋은 카페라면 커피와 음식값이 $20가 넘는다. 먹고 나서 만족감이 높다면 간혹 그런 호사를 부려보겠으나 그렇게 먹고 나서도 김치 한 조각이나 얼큰한 라면 국물이 아쉬우면 본전 생각난다. 그나마 입맛에 맞고 간혹 생각나는 것이 사타이 누들이라는 말레이시아 음식정도. 한국에서도 즐겨 먹지 않던 짜장면이 그리울 땐, 말레이시아 사타이 누들로 가야 한다. 뭐, 그런 날이 일년에 서 너번 밖에 안되지만. 외식 중에서도 가격 대비 가장 푸짐한 것이 바로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피쉬앤칩스다. 

우리 동네에도 그런 차이니즈 가게가 한 곳 있는데 처음 그 가게에 발을 들인 것은 나름 소심해서 오고가며 여러 번의 탐사를 하고 나서였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30대 중반의 부부가 함께 일하고 있었다. 어찌어찌해서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주인 아저씨가 갑자기 끝이 올라가는 말투로 ‘안녕하시오~’ 했다. 나도 ‘안녕하세요’ 하고는 어떻게 한국 인삿말을 아는지 물었다. 문장이 아니라, 주섬주섬 던지는 단어와 (주로 의성어, 의태어에 가까운 소리들 ^^) 부인의 부연 설명을 통해 재구성한 스토리에 의하면 이 중국인은 젊어서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남아메리카로 갔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수리남을 거쳐서 뉴질랜드 시민권자와 결혼한 여동생을 통해서 가족들이 하나 둘, 결국에는 전 가족이 뉴질랜드로 오게 되었다. 그런데 브라질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을 했단다. 그래서 ‘안녕하시오~’만 안다. 한국인 가게에서 단체 손님을 받으면 숯불 불고기를 요리하고, 부엌에서 온갖 잡일을 다 한 모양이었다. 젊은 중국인이 겪은 한국 사람에 대한 인상은 ‘소주 잘 먹는다.’ ‘잘 논다.’ ‘쉬어야 하는 일요일인데 쉬지 않고 교회에 간다.’ 등등. 
 
그때부터 이 부부는 내가 음식을 사면 항상 덤으로 더 주고 그것도 모자라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에게 닭튀김 한 조각씩을 손에 들려주곤 했다. 그러지 말래도 인지상정인지. 영어가 훌륭하진 않지만, 아니, 제대로 의사소통하기도 부족하지만, 서로 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환하게 웃는데 그 웃음속에서 이심전심이다. 나 역시 간혹 어깨 통증을 호소하는 아저씨를 위해 한국에서 가져온 온갖 소염진통제용 파스를 가져다 주기도 하고, 한국 화장품을 선물하기도 했다. 그들 부부 역시 여느 중국인 가족처럼 (중국 이민자 가족들) 부모님에게 아이들을 맡긴다. 아침부터 밤 9시까지 가게를 봐야 하니, 아직 유치원생인 아이들은 부모님이 시내에서 오가면서 돌봐야만 한다. 거리에서 만나는 중국 노부부들은 대개가 아이들을 하나씩 끼고 다닌다. 그리고 젊은 부부는 일, 일, 일만 한다. 

번역일 때문에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날이 닷새를 넘기면, 내 절친 중국인 부부가 그리워진다. 그래서 무작정 가게로 가면 그들 역시 마치 내 얘기를 하고 있었다며 반가워한다. 우리들 대화에서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은 ‘busy, busy, busy’와 ‘no good’ 이다. 말도 안되는 영어로 선문답하듯 대화하지만 우린 노 프라블럼이다. 정서상, 그들과 나 사이에는 ‘정’을 느낄 수 있는 문화적 공통분모가 있다고 믿는다.  
 
내가 아는 뉴질랜드인들은 중국인들은 정원 가꿀 줄도 모르고, 오로지 일, 일, 일만 하고 휴가도 안간다고, 무슨 인생이 그러냐는 식으로 혀를 찬다. 그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민자다. 일, 일, 일을 하지 않으면, 그래서 돈이라도 없으면 버틸 수 없는 이민자들이란 말이다. 나 역시 일, 일, 일, 그리고 그들 부모의 희생을 좋게만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살아 왔고, 그 외의 방법은 잘 모른다. 부모 세대의 희생과 근면한 노력을 향유하는 이후 세대는 그러지 않을 지 모르겠다. 

간혹 중국 이민자 혹은 유학생들의 범죄가 뉴스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감출 수 없는 모종의 인종적 멸시가 들어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지나치게 술을 마시는 10대 키위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웃은 아랑곳 않고 금요일 파티마다 시끄러운 음악을 즐기는 아이들. 노이즈 콘트롤에 몇번씩 전화해도 거의 1년 동안 지속되던 그들의 파티. 만약 그들이 중국 유학생들이었다면 어땠을까. 연장자를 어려워하는 중화권의 (한국포함) 문화적 속성상, 먹고 마시고 소음을 내는 일은 거의 없다. 물론 말소리가 조금 시끄럽긴 하지만, 그거야 그들 언어가 그런 것이니 탓할 일이 아니다. 사실 외국인이 한국인들 대화하는 소리를 들으면 시끄러운 것이 서로 싸우는 것 같다고 하지 않는가. 

어제는 내 절친 차이니즈 가게를 지나다가 튀김 냄새의 유혹에 굴복해 점심으로 피쉬앤칩스를 먹었다. 늘 그렇듯 덤으로 생선튀김 한 조각을 더 주고 감자튀김도 거의 2인분이어서 다 먹는데 버거울 정도였다. 늘 busy, busy, busy 하다고 하면서 늘 사람 좋게 웃고 다정한 내 절친 차이니즈. 그들 바램대로 돈을 왕창 벌어서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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