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잎에 싸 보내는 할머니 마음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성태용
명사칼럼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김도형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마이클 킴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조성현
전정훈
Mystery
새움터
멜리사 리
휴람
김준
박기태
Timothy Cho
독자기고

호박잎에 싸 보내는 할머니 마음

1 3,218 오소영
얼마 전 점심초대를 받아 어느 식당에 갔었다. 한식에 맞는 깔끔한 기본반찬 서너가지와 작은 뚝배기에 걸죽한 강된장이 함께 식탁에 올라왔다. 웬 강된장? 그것을 보는 순간 입맛 잃고 사는 요즈음. 불현듯 호박잎 쌈이 생각나고 입안에 군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어불성설(語不成說). 그런걸 줄리야 없고 상추쌈이라도 나오려나 기대했는데 그것은 그냥 반찬의 일부였다. 허다못해 찐 양배추라도 나왔으면 몇쌈 쌈장을 얹어 아쉬움을 달랬을텐데.... 실망스러워 하마터면 투정이 나올뻔 했다.

엇그제 외출했다가 비닐봉지에 두둑하게 담아놓고 파는 호박잎을 발견하고 거침없이 사 들고 들어왔다. 그것을 만나서 반가움 중에 손녀 순이의 얼굴이 큼지막히 떠올랐다. 나 만큼이나 호박잎 쌈을 좋아하는 그 애. 세살박이 어린애로 이민 와 살면서 어디서 그런걸 먹어봐 그렇게나 좋아하는지? 우유 빵 보다는 김치 깍뚜기 겯드린 밥이 좋은 순수 한국통 그 애. 요즘 오빠와 둘이서 밥 해먹고 학교 다니느라 스스로 살림 익히며 일찌감치 현실 깨우치는 일이 고달프기도 할텐데 한마디 불평도 없이 잘 꾸려가는게 여간 대견하고 신통한게 아니다. 지금쯤 엄마 손맛이 많이도 그리울텐데.... 이 할머니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나마 김치 깍뚜기 담고 더러 밑반찬 챙겨주는 정도라도 되니 다행이긴 하지만.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그 애들에게 부모 대신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간절한 기도(祈禱) 밖에 달리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생각치도 못했던 애가 특별히 좋아하는 호박잎으로 대박을 치게 생겼으니 내가 더 신이난다. 고기는 먹기가 쉬운데 야채가 그립다고 하던 말도 생각났기에....

그러나 호박잎을 손질하려고 쏟아 놓는 순간. 이 실망스러움을 어쩔까. 그것은 너무도 크고 뻣뻣해서 영 먹을거리가 못 되는 것 같았다. 파는 것이기에 더러는 버릴 것도 섞였을 줄 짐작은 했지만 부드러운 속잎파리는 거의 없었다. 이렇게 거친 잎으로는 비늘 없는 민물생선의 미끈거림을 닦는데 쓰느 것은 보았지만 그래도 쌈으로 먹을 수 있을는지 안타까웠다. 급한 사람이 샘 판다고 하던가. 그냥 버리기엔 미련이 너무 많아 해 보기로 한다.

어떻게든 먹을 수 있도록 해 보려고 공을 드려 껍질을 벗기는데 질긴 껍질이라 잘도 벗겨진다. 깨끗이 씻어 찜솥에 넣고 시간을 넉넉히 주어 푹 쪄 보았다. 아삭아삭하고 껄끄럽지만 정성드려 끓여 본 강된장이 아까워 몇쌈 먹어보았는데 이미 쌈으로 먹을 수 있는 단계를 벗어나서 입 안에 질긴 섬유질이 뭉쳐 넘어가려 하질 않는다. 모처럼 뱃속이 파랗게 물이 들도록 맛있게 먹어보려 했었는데... 이건 아니야.

나도 나지만 손녀에게 점수 좀 따려던 내 생각은 그냥 접어야하나? 워낙 좋아하니까 웬만큼 아니어도 참아주었으면 좋으련만. 나도 몇  쌈 먹었으니 치아 좋고 위장 튼튼한 애들은 먹을 수 있는거라고 시치미를 떼볼까. 요즘 애들은 개성이 강해서 아니면 그것으로 끝일 뿐 타협의 여지가 없기에 공연히 늙은이만 안타깝다. 그리도 좋아하는 것을 줘야하나 말아야 하나 걱정을 만들어가면서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그래도 그냥 치워버리기엔 안쓰러움이 남아 아이에게 먼저 귀띔을 해 보기로 한다. “순아 호박잎이 생겼는데 너 어때?” “어머머머 할머니 너무너무 해피....” “그런데 많이 자라서 크고 질기던데 괜찮겠어?” “제 위장이 워낙 튼튼하잖아요 저 정말 그거 좋아하는데요” 오케이! 스트레스가 한방에 날아간다 진작에 그랬을 것을. 미련한 머리를 몇대 쥐어박으며 혼자 싱겁게 웃어본다.

그렇게 좋아하는 그 애에게 옛날 할머니가 내게 해 주시던 그런 맛이 진짜인데 이건 너무 엉터리가 아닌가. 아무리 애를 써도 그 때의 맛을 낼 수 없는 것은 오늘 날 영악스럽게 편리해진 전자제품의 덕이다. 불 때서 밥짓는 두툼한 가마솥에서 뜸드리는 밥위에 얹어 쪄내던 밥냄새가 베이고 더러 밥풀도 붙어있던 쫀득한 그 맛을 지금은 따라 할 형편도 재주도 없으니 말이다. 찜솥에 깔끔하게 찌긴 했어도 맛의 차이는 비교가 될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렇지만 보리밥에 삭힌 특별한 된장으로 정성껏 끓인 강된장을 위로삼아 아쉬운대로 맛있게 먹어주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큼직한 호박잎에 쌈을싸서 볼이 터지게 잘 먹는 아이의 모습을 그려보며 더없이 행복한 이 시간. 할머니의 마음도 함께 싸주면 얼마나 좋을까,
참새한마리
어디서 호박잎을 용하게도 구하셨네요. 손주분이 결국은 잘 드셨나요?? 저희는 호박잎은 못먹어도, 쌈장을 집에서 만들어서 상추를 비롯한 각종 푸성귀에 가끔 먹는답니다. 그맛은 정말로 맛있지요. 쌈으로 밥을 먹게되면 항상 정량보다 더 먹게되어서 배가 터질것처럼 되버리는게 흠이지만요. 정감있는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요~

심전도(心電圖) 검사

댓글 0 | 조회 215 | 2일전
최근 어느 모임에서 만난 지인이 부정… 더보기

가족 및 자원 봉사 간병인을 위한 정부 실행 계획

댓글 0 | 조회 572 | 9일전
Consultation on Acti… 더보기

타마키 마카우라우 경찰 소수민족 서비스팀 수상 안전 실시

댓글 0 | 조회 305 | 10일전
지난 11월 22일, 타마키 마카우라… 더보기

위험한 감정의 계절: 도박과 멘탈헬스 이야기

댓글 0 | 조회 194 | 2025.12.10
12월은 흔히 ‘축제의 달’로 불린다… 더보기

에델바이스(Edelweiss)의 추억

댓글 0 | 조회 205 | 2025.12.10
음악은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 감정… 더보기

18. 루아페후의 고독한 지혜

댓글 0 | 조회 145 | 2025.12.10
# 산 속의 침묵루아페후 산은 뉴질랜… 더보기

뉴질랜드 학생들이 국내 대학과 해외 대학 중 어느 곳에서 공부하는 것이 더 비용 …

댓글 0 | 조회 533 | 2025.12.10
비용 효율성과 미래 발전에 대한 종합… 더보기

그 해 여름은

댓글 0 | 조회 143 | 2025.12.10
터키의 국기처럼 큰 별 하나를 옆에 … 더보기

어둠은 자세히 봐도 역시 어둡다

댓글 0 | 조회 138 | 2025.12.10
시인 오 규원1어둠이 내 코 앞, 내… 더보기

아주 오래된 공동체

댓글 0 | 조회 178 | 2025.12.10
처서가 지나면 물에 들어가지 말라는 … 더보기

이삿짐을 싸며

댓글 0 | 조회 574 | 2025.12.09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하루에 조금씩만… 더보기

뉴질랜드 학생에게 독서가 특별히 중요한 이유

댓글 0 | 조회 543 | 2025.12.09
우리는 뉴질랜드라는 다문화 사회 속에… 더보기

깔끔하게 요약해 본 파트너쉽 비자

댓글 0 | 조회 345 | 2025.12.09
뉴질랜드에서 배우자 또는 파트너로 체… 더보기

2026 의대 진학을 위한 연말 전략: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댓글 0 | 조회 239 | 2025.12.09
▲ 이미지 출처: Google Gem… 더보기

시큰둥 심드렁

댓글 0 | 조회 112 | 2025.12.09
어떤 사람이 SNS에 적은 글에 뜨끔… 더보기

언론가처분, 신상 정보 공개 금지 및 국민들의 알 권리

댓글 0 | 조회 229 | 2025.12.09
지난 9월 8월, 본인의 자녀들을 수… 더보기

고대 수메르 문명은 왜 사라졌는가

댓글 0 | 조회 150 | 2025.12.09
메소포타미아 사막 위로 붉은 해가 떠… 더보기

스코어카드와 인생의 기록 –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과정

댓글 0 | 조회 117 | 2025.12.09
골프를 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코어… 더보기

나도 의대 들어갈 수 있을까 : 의대 경쟁률 10:1 그 진실은?

댓글 0 | 조회 319 | 2025.12.07
출처: https://www.isto… 더보기

‘인공 방광’이란

댓글 0 | 조회 289 | 2025.12.06
국민보험공단이 발표한 ‘2024 지역… 더보기

수공하는 법

댓글 0 | 조회 168 | 2025.12.06
수공(收功)은 기운을 거두어들이는 동… 더보기

AI 시대의 독서: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독서가 필요한 이유

댓글 0 | 조회 628 | 2025.12.01
공자는 논어 첫 문장에서 “배우고 때… 더보기

AI 시대의 새로운 교육 방향: AI와 함께 생각하는 힘

댓글 0 | 조회 568 | 2025.11.28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교육의 변화를 … 더보기

무료 유방암 검진 연령 확대

댓글 0 | 조회 335 | 2025.11.26
무료 유방암 검진 연령이 74세까지 … 더보기

에이전시 (대리인) 관련 법

댓글 0 | 조회 231 | 2025.11.26
우리는 어려서부터 누군가를 ‘대신’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