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사는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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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사는 죄

0 개 2,119 안진희
휴우.. 아들과 약속이라도 한 듯이 둘이 함께 일주일을 넘겨가며 앓던 몸살이 이제야 슬슬 떨어져가는 듯 하다.

두 달 동안 어학연수를 와있던 꼬마 손님에게서 해방 되었다는 생각에 긴장이 확 풀려버렸는지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다. 그런데 어린 아들도 나름 긴장했었는지 생전 안 아프던 놈이 며칠 열이 나고 설사까지 해대고..

허긴 그도 그럴 것이 늘 엄마랑 둘이서 자기 스케줄과 자기 컨디션에 맞춰서 생활하던 만고땡 인생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자기보다 쬐끔 더 큰 누나가 오더니 생활이 확 바뀌어 버렸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고.

언제나 8시 반에서 9시까지 숙면을 취하곤 했었는데, 어느 날부턴가 엄마가 새벽 6시 반부터 일어나서 아침 준비하고 도시락 싼다고 온갖 냄새를 풍기며 덜그럭거려대고 누나는 분주하게 왔다갔다하며 TV를 큰 소리로 봐대니 7시 정도면 원치 않는 기상을 해 하루를 피곤하게 시작하게 되고. 비몽사몽 아직 잠도 제대로 안 깼는데 누나 픽업해준다고 8시 좀 넘으면 집을 나서야 하니 아침부터 한 시간 가량 차 타고 왔다 갔다 하는 통에 모닝똥 타임을 놓쳐 집에 오는 내내 짜증이 풀리질 않고. 집에 와서 엄마가 좀 놀아주나 싶으면 엄마는 청소하고 빨래 돌리느라 부산스럽고. 일찍 일어나 잠이 와 죽겠는데 2시에 픽업가야 한다고 엄마가 기를 쓰고 안 재우니 몽롱한 상태라 입맛도 없고. 차 타고 겨우 잠이 드나 했는데 요란스럽게 차 타서 수선 떠는 누나 덕에 잠이 깨니 그것도 죽을 맛일 테고. 저녁 준비로 바쁜 엄마 기다려줬더니 누나 공부 봐준다고 잠들때까지 코빼기도 보기 힘드니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고.

거기다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고 손님으로 온 누나가 주인집 아들인 지한테 울면 시끄럽다고 짜증내고, 소리 나는 장난감 거슬린다고 못 가지고 놀게 하고, 본인이 짜증나면 붙어있건 말건 문을 쾅쾅 닫아 손을 찌이는 수모까지 겪었으니 나름 두 달 동안 얼마나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았을고…

뉴질랜드 사는 게 죄라 주변에서 방학만 되면 다들 어떻게든 어린 자녀들을 보내려 하시니 여름 두 달은 어찌 지나가는지 모르게 훌쩍 가버린다.

작년까지만 해도 신랑도 학생인데다가 아들도 응애응애 하는 단계였으니 그냥 몸만 좀 바쁘고 그렇게 힘든 줄 모르고 지나간 것 같은데, 이제는 신랑도 바쁜데다 우리 아들도 스케줄이라는 게 생길 월령이 되고 나니 꼬마 손님들 치르는 게 보통 힘든 신경전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애는 몸이 피곤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니 짜증이 늘고, 뭐가 있어도 어린 자신이 먼저 양보해야 하니 상실감도 커질 것 같은데, 주변 지인 분들은 아는 집이라고 믿고 자녀들을 보내고 싶어들 하시니 그걸 또 흔쾌히 안 받아 드릴 수도 없고.

흠.. 아무리 생각해도 뉴질랜드 사는 게 죄인가 보다. 한국에서 나고 자랐으면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경험인 것을 우리 아들은 뉴질랜드에서 나고 자라는 덕분에 일찌감치 많이도 겪고 있다.

그래도 그 덕에 남의 물건에 허락 없이 손대지 않고, 남의 방에 함부로 들어가지 않는 교육을 벌써부터 시킬 수 있었으니 감사해야 할까? 한국에서 삼대 독자로 컸으면 형제 없이 심심하게 컸을 텐데 이 나라에서 크는 덕에 집이 늘 형과 누나, 이모, 삼촌들로 북적거리니 감사해야 하겠지? 여러 형, 누나들을 보면서 잘 하는 점은 배우게 하고 잘 못하는 점은 일찌감치부터 가르칠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겠지?

그래 아들. 우리는 뉴질랜드에 사는 덕분에 누릴 수 없는 많은 기회들을 접하고 살고 있구나. 모르고 지나갈 수 있었던 것들을 배울 기회들이 늘었으니 엄마가 좀더 바른 길로 인도해주도록 할게. 아들도 현명하고 바른 사람으로 자라는 그 날까지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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