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 짧은 만남, 긴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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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 짧은 만남, 긴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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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년(2008년) 설에 내 가족모임은 멋지게 끝이 났다. 이제 모두 제 자리로 돌아가 본래의 일상으로 살아간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듯....

  참 멀고도 먼 길을 한 걸음에 왔다가 내 생애에 지울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각인시켜놓고 돌아간 그들이 지금도 눈앞에서 투명하게 일렁인다.  

  두고 왔다고 해야하나? 버리고 왔다고 해야하나? 고국에 남겨진 작은딸 내외가 구정의 짧은 연휴를 놓치지 않고 떠나 온 가족들을 만나려고 여기까지 와서 한번도 가질 수 없었던 가족 모임을 만들어 주었다. 내 상상속에서 또는 꿈속에서 수없이 행해지던 일들이 현실로 다가왔을때 그 자즈러질듯한 행복감을 어이 필설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아마 내 여생에 두번 다시 있을 수 없는 금쪽같은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세상 살아가기 바쁜 오늘의 젊은이들! 외국에 나가 있는 손자의 빈 자리가 흠이어서 이 시대에 100% 가족모임이 이렇게나 힘든 것인가를 실감케 했다. 또한 구정을 아랑곳 않는 여기 사람은 여전히 일을 해야만 하기에 감질나게 밤에만 이루어지는 모임이기도 했다. 온 식구가 함께 들썩이다가 잠자리에 드는 밤이면 마치 내가 꿈을 꾸는 듯한 착각을 하면서 그들 생생한 목소리에 깜짝깜짝 놀래며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언제나 먼저 잠이 들곤 했다. 그 귀한 시간을 오래 같이 못하고 주책없이 눈꺼풀이 무거워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니 아쉽고 안타까웠다.

  동생 내외를 위하여 먹거리를 장만하느라 바쁘게 주방을 서성이는 큰 애. 정성보다는 조미료로 맛을 낸 상품화된 매식에 식상한 맞벌이 부부의 입맛에 집 밥이 그립다는 그들을 위해 얌챠다, 스팀보트다, 이것저것 별식을 계획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자그마한 텃밭에 주렁주렁 달린 고추며 깻잎, 방울토마토를 보면서 신기하듯 자랄때의 고향을 떠올리고 그것들을 탐하는 제부를 위해 시골 밥상을 차리기도 한다. 아삭이 고추를 따고 꽈리고추는 가루 묻혀 쪄서 양념장에 무치고 깡된장에 호박잎 쌈까지-- "와- 바로 이 맛이야 이맛-" 경상도 사나이의 투박한 사투리가 애교스럽고 정겨운 가운데 물장수 상으로 비워내는 그릇들을 보면서 얼마나 흐뭇했던지, 외국에 와서 버터에 빵이 주식인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무공해의 순수한 고향음식을 대하니 반갑고 묘한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자매가 설거질을 한다고 정답게 움직이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먼 옛날로 타임머신을 타고 떠난다.(이십년 저 뒤편이다. 명절 때만 되면 설거질은 저희들이 한다고 저렇게 둘이서 주방을 꽉 채웠지 종알종알 수다도 떨고 깔깔거리면서) 그 때도 이 어미 마음이 따뜻했었는데 지금은 또 다른 감동으로 가슴이 벅차 오르는 것은 나 떠나고 없는 빈 자리에도 그들이 남아서 화목하게 살아 줄  것이다는 확신 때문인 것 같다. 오직 그들 두 자매가 내가 이 세상에 나드리 왔던 흔적 아닌가.

  서로 멀리 있어 몇 번 만날 기회 밖에 없었던 사이임에도 서먹함이 없이 친근한게 보기에 좋았다. 그 짧은 시간에도 무엇인가 할 수있는 일들을 도울게 없을까 집 안팎을 돌아다니며 바지런을 떠는 손님사위. 와 보니 너무 멀어서 다시는 오기 힘들어 왜 이렇게 멀리 오셨느냐고 질책처럼 재롱을 부리다가 그러나 브라질보다는 가까워서 다행이라고 식구들을 웃겼다. 떠나기 전날 갈비 파티하자고 숯불 피워 대느라 수선을 떠는 몫도 그였다. 처형하고 죽이 잘 맞는 제부다. 그러나 황홀한 시간들은 오래 머물러 주지 않고 흘러만 갔다.

  이모 내외를 기쁘게 하려고 솜씨 자랑으로 케익을 굽는 손녀. 그들이 좋아하는 육포 말려 짐에 넣어 주는 큰 딸애. 그런 그림들을 카메라에 담듯 욕심 껏 머리 속에 입력하느라 나는 바빴다.

  여독도 풀리기 전에 십 년 전에 입었던 한복들을 떨쳐입고 어느 작은 비치에서 바람에 치마폭을 날리며 가족사신을 찍던 일들이며 그 사진을 보고 삼모녀가 엄청나게 달라진 모습에 한결같이 경악을 했다. 그게 바로 세월에게 물어 볼 탓이었건만.... 사진이야 어떻든 모두의 건강한 표정이 담긴 함께 한 자리였으니 그야말로 값지고 중요할 뿐이다.

  그런 일들이 벌써 저 멀리 가 버리고 추억이라는 이름만 남았다. 그들이 떠난 사실을 매끈한 체념으로 맞이할 수 있는 지혜도 이젠 생겨났음인가. 공항에서의 이별이 서러워도 굳센척 눈물을 감추어야만 하는 이민 엄마!

  삶이 지치도록 피곤할 때 비장의 카드처럼 꺼내 볼 수 있는 추억이 생겼다는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금년 한 해는 그리움의 갈증을 해소했으니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고맙다 애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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