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 바람이 흘리고 간 티끌이겠지…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성태용
명사칼럼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김도형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마이클 킴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심혜원
전정훈
Mystery
새움터
멜리사 리
휴람
김준
박기태
Timothy Cho
독자기고

[313] 바람이 흘리고 간 티끌이겠지…

0 개 2,778 코리아타임즈
친정 어머니가 아마 지금의 내 나이때쯤이라고 생각된다. 어느 날인가, 우리집엘 오셨는데 핸드백 안에서 불쑥 사진 한 장을 꺼내 내게 건네셨다. 모서리가 닳고 색도 약간 바랜 듯한 아주 오래된 사진이었다.
  내가 단발머리 열 한 살때, 삼십대 후반의 눈매 서늘하고 복성스러운 어머니는 그 시절에 한복저고리 위에 신식양복을 걸치고 한참 멋을 내셨다. 어머니를 중심으로 내가 오른편에 바로 밑의 남자동생이 왼편에 귀여운 모습으로 앉아 있고 갓 시집온 새색시 숙모님과 나란히 언니가 뒤에 서 있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숙모님의 어정쩡하게 들어 올린 팔 모습 때문에 마냥 웃음이 나오곤 했는데 손목시계를 보이려고 그런 것이 아마 그 시절에는 흔치 않은 자랑거리 였었나 보다.
“이젠 네가 가지고 있는 게 좋을 듯 싶다.”
  닳아 빠지도록 백에 넣고 다니며 보시던 아끼는 사진을 내게 주시는 뜻을 모를 리 없는 나는 금방 저 세상가실것 같아 무척이나 속으로 슬펐었다. 그 후 십 수년을 더 사시긴 했지만 어머니는 주변정리를 일찌감치도 서두르셨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남자들은 함께 하기가 쉽지 않아서일까 아버지와 오빠가 빠진 사진이었는데도 유독 어머니는 그것만을 고집스럽게 넣고 다니신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을 끝내 물어 보지 못했다. 내가 어른되어 시집가서 아이들 낳으며 그 답을 스스로 얻었는데 어머니 무릎에 앉은 깜찍스럽게 귀여운 네 살 박이 동생 때문이었을 것이다.
  유난스럽게 총명하고 똘똘해서 가족들 사랑을 한 몸에 받았었는데 그 애는 봉오리 꺾인 꽃처럼 1ㆍ4 후퇴당시 피난길에서 일곱살 늦은 나이에 홍역을 앓다가 끝내 못 일어나고 저 세상으로 가 버렸다. 충청도 어느 낯선 마을 야산자락 꽁꽁 언 땅에 어린 딸을 묻어 놓고 그 곳을 떠나 볼 때에 소복하게 하얀 눈을 얹고 앉은 어린 소나무를 보면서 저기 ㅇㅇ이가 있다고 통곡하며 발걸음이 얼어 붙어 걷지를 못하던 어머니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어린 자식을 가슴 속에 묻고 평생을 살아온 어머니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또 하나 어머니의 일생 중에 가장 행복했던 그 때가 황금기로 사진 속에 남아 있다. 아버지의 사업이 절정을 이루던 시기였기에 오래오래 추억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나도 그런 때가 있었던가 문득 뒤돌아 보게 된다. 남겨진 흔적들을 추슬러 보석처럼 싸안고 싶은 요즈음이기에…, 짤막짤막한 순간의 영상들을 엮어 가며 살아온 날들을 반추해보면 내게도 그럴듯한 때가 있기는 있었다. 어느 술집 빈대떡이 맛있다고 기름 철철 흐르는 빈대떡 봉지를 식을세라 코트 속에 넣고와 가족들 입맛을 즐겁게 하면서 행복해 하던 남편. 아이들 도시락을 예술하듯 정성으로 만드는 옆에서 나보다 더 흐뭇해 하던 얼굴도 크게 떠오른다.

  사진 찍기를 싫어하는 사람이었기에 들고 볼 사진은 별로 없지만 머리 속에 헝크러진 필름은 영원히 남아 있어 잊혀지지 않는다. 어제 일만 같던 일들이 아득한 세월 저편으로 밀려 가고 지금 나는 그 때의 어머니처럼 주변 정리를 해야 하는 때에 이르지 않았나. 어떻게 그리 빨리 지나가 버렸을까. 비, 바람 몰아치는 격랑 속에서 햇볕 찬란한 내일을 기다리며 오늘보다는 반드시 내일이 나을 거라는 기대 속에 참고 견디며 살다보니 그 날이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머리에 흰서리를 이었다. 살아온 날들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하루하루 줄어들고 있는 인생 막바지 언덕에서 긴 여정의 뒤를 돌아다 보니 그것은 한줄기 회오리 바람이었다. 인생이란 바로 그런 것인가? 누군가가 말했던 어떤 생각이 난다. “젊어서 아름다운 것은 타고난 것이지만 늙어서 아름다운 것은 인생의 예술작품이다.”라고. 늙어서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리라. 내 인생의 예술작품을 지금부터라도 만들어 간다는 기분으로 살자. 미움과 시기와 질투같은 못된 감정들을 정으로 쪼아 내고 둥글고 부드럽게 갈고 닦아서 바다같이 가슴 넓은 사람으로 사랑을 배우며 살자. 늙어서 초라해지는 옹졸함을 내면의 풋풋한 향기로 포장하고 내가 있어 어느 한 곳 작은 빛이 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제 물질의 노예에서 벗어나는 대신 따뜻한 인간성의 축적에 욕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바람같은 인생, 미풍에 떠도는 은은한 향기로 남고 싶다.  

‘인공 방광’이란

댓글 0 | 조회 149 | 8시간전
국민보험공단이 발표한 ‘2024 지역… 더보기

수공하는 법

댓글 0 | 조회 89 | 8시간전
수공(收功)은 기운을 거두어들이는 동… 더보기

AI 시대의 독서: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독서가 필요한 이유

댓글 0 | 조회 374 | 5일전
공자는 논어 첫 문장에서 “배우고 때… 더보기

AI 시대의 새로운 교육 방향: AI와 함께 생각하는 힘

댓글 0 | 조회 371 | 8일전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교육의 변화를 … 더보기

무료 유방암 검진 연령 확대

댓글 0 | 조회 284 | 10일전
무료 유방암 검진 연령이 74세까지 … 더보기

에이전시 (대리인) 관련 법

댓글 0 | 조회 201 | 10일전
우리는 어려서부터 누군가를 ‘대신’ … 더보기

뉴질랜드 학생들이 국내 대학과 해외 대학 중 어느 곳에서 공부하는 것이 더 비용…

댓글 0 | 조회 379 | 10일전
비용 효율성과 미래 발전에 대한 종합… 더보기

고요

댓글 0 | 조회 92 | 10일전
시인 도 종환바람이 멈추었다고요로 가… 더보기

사찰음식의 잠재력, 전 세계로 확산될 것

댓글 0 | 조회 124 | 10일전
- ‘르 꼬르동 블루’ 런던 학과장 … 더보기

훼방꾼은 비켜가고 . . . “안녕 하세요?”

댓글 0 | 조회 308 | 10일전
조금 이른 시간이긴 했지만 잠자리에 … 더보기

700만 디아스포라에게 조국을 묻다

댓글 0 | 조회 207 | 10일전
지난 18일 이재명 대통령을 맞은 아… 더보기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 인류가 남긴 거대한 수수께끼

댓글 0 | 조회 174 | 2025.11.26
남태평양의 한가운데, 칠레 해안에서 … 더보기

때에 맞는 도구를 써라

댓글 0 | 조회 124 | 2025.11.26
골프를 오래 치다 보면 한 가지 진리… 더보기

궁금해서 찾아본 영주권과 영구 영주권

댓글 0 | 조회 959 | 2025.11.25
살다 보면 궁금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 더보기

사고도 없는데, 왜 내 보험료는 오를까?

댓글 0 | 조회 468 | 2025.11.25
– 뉴질랜드 자동차 보험의 구조와 ‘… 더보기

게을러져서 좋다

댓글 0 | 조회 178 | 2025.11.25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목회를 마치니늦… 더보기

17. 루아페후 산과 타우포 호수의 사랑 이야기

댓글 0 | 조회 124 | 2025.11.25
뉴질랜드의 중심부에는 거대한 화산과 … 더보기

우버드라이버는 고용된 직원인가 – 대법원 판결

댓글 0 | 조회 335 | 2025.11.25
예전 칼럼에서는 우버드라이버가 우버에… 더보기

유학을 결정하기 전, 가족이 함께 깊이 고민해야 하는 것들

댓글 0 | 조회 234 | 2025.11.25
: 아이의 미래를 선택하는 가장 중요… 더보기

열 마디만 해야지...

댓글 0 | 조회 180 | 2025.11.25
세상의 대부분은 길어야 좋다. 수명이… 더보기

‘트리플데믹’ 경고

댓글 0 | 조회 619 | 2025.11.21
요즘 이른 추위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 더보기

Year 8–9 전환기, 우리 아이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댓글 0 | 조회 833 | 2025.11.17
Year 8에서 Year 9로 넘어가… 더보기

우리 아이 글, 무엇이 부족할까? 글쓰기 성취 기준 이해하기

댓글 0 | 조회 462 | 2025.11.14
글쓰기 평가는 많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더보기

NCEA, IB, Cambridge - 글쓰기가 보여주는 다른 학습 철학

댓글 0 | 조회 448 | 2025.11.13
뉴질랜드의 고등학교에는 하나의 교육체… 더보기

Welcome to 유학월드와 최대 2M 사투비자

댓글 0 | 조회 348 | 2025.11.12
2009년부터 뉴질랜드 공인이민법무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