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지바고의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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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지바고의 발자국

1 3,201 코리아포스트
 
나이를 먹어 가면서 입꼬리가 축 처져 내리는 것은 피부가 탄력을 잃어서일까, 뉴톤의 중력 법칙이 사뭇 입꼬리에만 작용해서일까? 어린 아이들은 '까꿍' 한 번에도 자지러지며 입꼬리가 귀에 걸리는 데, 만약 어른들이 그만한 일로 깔깔 웃는다면 실없는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받기 십상이다. 자의 반 타의 반, 요즘은 도무지 웃을 일이 없다.

한 실험에 의하면 5세된 아이는 하루에 3, 4백 번씩 웃는 데, 어른들은 고작 7, 8번 정도라고 한다. 그 실험 결과에 갸우뚱해진다. 무슨 우리가 하루에 7, 8번씩이나 웃는가. 침대에서 일어나 다시 침대에 누울 때까지 입꼬리가 단 한 번도 올라가지 않은 날도 부지기수인데.

평균 수명이 늘어나서 아흔 살, 백 살까지 살면서 도무지 웃을 일이 없어 입술 주변 근육이 말굽자석처럼 진화되어 간다면 명이 긴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뉴질랜드에 살던 선배가 한국으로 돌아가서 사업을 하다가 잠깐 뉴질랜드에 왔다. 그 동안 아들의 혼사, 직장 문제도 해결 됐으니 얼마나 홀가분할까, 그랬는데 그는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고 했다. 왜 우울할까? 우아하고 덕성스러운 아내도 있고, 돈도 많고 사업도 안정적이고 자식들도 앞가림 잘하고 있는데?

"그냥---, 나이 먹으니까 다 우울해!"

그러면서 그는 입꼬리를 축 늘어뜨렸다. 조금만 더 얘기를 시키면 눈물을 흘릴 것 같아서 술잔을 권했다. 나이 때문에 우울하다니까 어떻게 위로 할 방법이 없었다. 나이를 되돌려 줄 수도 없고---.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일했어. 십년 만에 내가 세들어 있던 건물을 사 버렸지. 근데, 참 바보처럼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 멋진 연애나 한 번 해보고 죽었으면 좋겠는데---, 괜찮은 여자 좀 있으면 소개시켜 줘."

"얼래래? 언니(선배의 부인)한테 나 혼나요."

"괜찮아. 괜찮다고 그랬어, 제발 좀 자기한테 치대지 말고 좋은 사람 있으면 만나라고 했어. 정말이야. 농담 아냐!"

바보처럼 살아온 세월에 대한 한풀이로 선배는 로맨스를 구걸하고 있다. 죽어도 좋을 만큼 열정적인 로맨스를 꿈꾸는 선배는 너무 진지하다. 요즘들어 지인들 너댓명에게서 똑 같은 얘기를 들었다.

"난 참 바보처럼 살았어. 내가 멍청했지. 평생 허송 세월 한 거 같아."

"나도 그래. '바보처럼 살았군요' 노래가 하루 종일 가슴을 쳐댄 적도 있어."

다시 한 번만 살아 보고 싶다고, 난 참 바보처럼 살았다고, 아니 살고 있다고 자책하던 어느날, 나는 '닥터 지바고'의 발자국을 만났다. 호사스러운(?) 취미 덕분이었다. 호젓한 밤에 나는 중고 가게에서 사 모은 LP 판을 듣는다. 판을 긁어 대는 바늘 소리, 제 자리에서 맴돌거나, 느닷없이 툭 건너뛰는 LP 판의 살아 있음을, 주책없음을 즐기는 것이다. 특히, 내가 아끼는 LP는 '닥터 지바고'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러시아 민속 악기 발라라이카가 연주하는 모리스 자르의 '라라의 테마'를 듣고 있노라면 내 머리 속에서 영화가 상영된다. 눈을 가르는 증기 기관차의 폭주, 눈썰매를 타고 모처럼 웃는 라라와 지바고, 곱은 손을 호호 불며 시를 쓰던 지바고, 하얗게 빛나던 자작나무들, 얼음 궁전이 되어 버린 지바고의 집---.

따지고 보면 지바고처럼 회한 많은 인생을 산 이도 없었으리라. 고작 8세 때 고아가 된 지바고는 그로메코가에 입양되어 그 집안의 딸인 '토냐'와 결혼한다. 하지만 그가 평생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여자는 '라라'였다. 그런 '라라'와는 몇 번 스쳐 지나가 듯 만난 것이 전부. 러시아 혁명과 세계 제 1차 대전이라는 전례 없는 역사의 지각 변동은 개인의 삶과 사랑과 자유 의지를 모두 포탄과 사상으로 고사시켜 버렸다. 냉혹한 툰드라 벌판에 우뚝우뚝 서있는 하얀 수피(樹皮)의 자작나무들이 의연히 살아야 한다고 묵언의 말들을 전하고 있지만, 지바고의 삶은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이 휘둘리고 뒤틀렸다. 그가 바보같은가?

'닥터 지바고' 자켓 안에는 얇은 안내서가 들어 있다. 나는 지바고가 혁명군에게 잡혔다가 탈출하는 장면의 스틸을 오래도록 들여다 본다. 하얀 설원 위에 한 점 검은 점으로 앞으로 앞으로만 나가고 있는 지바고와 그 뒤에 길게 이어진 발자국, 발자국들. 데이비드 린 감독은 롱샷으로 지바고의 발자국을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바보같건 휘둘리건) 면면히 이어져 오는 역사처럼, 개인의 삶처럼 길게 이어진 그 발자국들은 지바고가 라라에게 말 한 것처럼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당신이 슬픔이나 회한 같은 게 없는 여자였다면 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을 거요. 나는 한 번도 발을 헛딛지 않고, 낙오하지도 않고, 실수도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은 좋아할 수가 없소. 그런 사람은 인생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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쌔엠
친구들 만나면 다들 그런 소릴 합니다.

정조준 않돤다고..ㅎ

어쪄겠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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