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신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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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신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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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권리장전이라 불리는 New Zealand Bill of Rights Act 1990의 스물일곱 번째 조항은 정의에 대한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특히 법원을 이용하고, 소송을 제기하거나 제기된 소송에 맞서 방어할 수 있는 권리를 보호하고 있다. 권리장전이 보호하고 있는 모든 권리가 그러하듯 정의에 대한 권리 역시 개개인간의 소송보다는 국가를 대상으로 한 국민의 권리라는 제약이 있지만 말이다.

필자는 뉴질랜드 법체계 그리고 ‘정의에 대한 권리’가 여타 나라에 비해 비교적 잘 정비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죄 그리고 잘못에 대한 처벌 수위에 대해서는 많은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보지만, 법과 법원의 접근 용이성에 관해서는 시민들에게 충분한 신뢰를 받을 수 있다 생각한다. 큰 액수가 아닌 분쟁의 해결은 disputes tribunal을 통한 소액 재판을 신청할 수 있고, 신청 비용은 점심 한끼 값으로 해결할 수가 있으며, 돈이 없는 사람들도 legal aid 또는 duty solicitor를 통해 변호를 받을 수 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은 종종 정의라는 것을 외치고 갈망하게 된다. 자신이 당한 일에 대한 억울함에 승소 가능성이 희박한 소송을 제기하고, 소송이 기각되거나 패소하더라도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다시 항소를 하거나, 아니면 같은 사람을 대상으로 새로운 소송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가 있다. 소송이 패소한 경우엔 소송에 관계된 공무원, 변호사나 법관에게도 소송을 제기하는 행동들 마저 보일 때도 있는데, 이 사람은 얼마나 억울했기에 이렇게까지 소송에 집착할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기도 한다.

반대로 끊임없는 소송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성가시고 곤욕스러운 일일 것이다. 재판을 통해 잘못이 없다는 판결을 받았음에도 상대방이 같은 문제로 연이어 소송을 제기한다면 이를 방어하는데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 그리고 수치로는 산정하기 힘든 스트레스 같은 것들은 감당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정당한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소송을 제기 하는 사람을 vexatious litigant, 그렇게 제기된 소송을 vexatious litigation이라 한다. 한글로 번역하면 악의적인 소송 또는 성가신 소송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소송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성가신 소송이라 분류되는 소송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이론적으로 존재한다.

사법제도법이라 번역할 수 있는 The Judicature Act 1908에는 ‘성가신 소송’ 그리고 ‘성가신 제소자’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attorney general(법무장관)과 solicitor general(검찰청장)만이 고등법원을 통해 성가신 소송을 제기하는 제소자를 제약할 수 있다. 즉 일반인이 직접 제소자를 제약 할 수는 없고, 법무장관 또는 검찰총장의 사무실을 통해 신청을 하여야만 ‘성가신 소송’을 제약할 수 있다.

사법제도법은 어떤 소송이 ‘성가신 소송’이라 딱히 정의 해놓지 않았는데, 판례를 보면 논리에 맞지 않는 소송이나, 승소 가능성이 전혀 없고, 소장이 여러 차례 기각되어 수정을 한 전력이 있는 소송, 이미 재판이 있었던 사건과 관련한 소송, 그리고 소송을 제기하는 의도가 악의적인 소송 등을 성가신 소송이라 볼 수 있다.

고등법원은 한 사람이 제기하는 일련의 소송들이 성가신 소송이라 판단되면 이 제소자가 특정 사람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 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다. 2007년 12월 이후로 단 두 사람만이 성가신 제소자로 분류되어 추후 소송을 제기 하는 것을 금지 당했는데, 한 예로 2009년에 성가신 제소자로 판결 받은 H씨는 2000년 이후 지속적으로 특정인들에게 소송을 제기했고 2009년 성가신 제소자로 판결 받기 직전에는 69명을 대상으로 한 소송들을 진행하는 중이었다고 하는데, H씨가 소송을 제기한 사람 중에는 판사들과 25명의 변호사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현재 사법제도법의 개정이 논의되고 있고, 법무장관 또는 검찰총장을 통하지 않고, 피소자가 직접 성가신 소송을 제약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하니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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