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Ⅰ)-변호사에게 가장 큰 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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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6/2011. 16:52
NZ코리아포스트 (202.♡.222.53)
뉴질랜드 법률정보
업무를 보다보면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의 삶에 한 발을 들여놓게 된다. 변호사라는 직업상 다른 직종보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사람을 더 깊이 그리고 자세히 알게 된다고 해야 할까. 고객의 일을 다루다 보면 원하지 않아도 그 고객의 성격, 가치관, 가족사, 지나온 인생 그리고 삶의 철학에 대해서 알 수 밖에 없게 된다. 업무상 고객으로 만나게 된 분은, 계속 고객으로만 남는 분도 있고, 업무 외에도 만나 식사나 차를 같이 할 때도 있고, 어떤 분들은 주말에 만나 와인 한 잔을 같이하게 되는 분도 있다. 업무로 알게된 고객의 개인사는 그 업무가 끝나면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듯이 잊어 버려야 할때도 있고, 나중에 필요할 때는 다시 자연스레 기억을 되살릴수 있어야 할 때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 고객이 내 고객이고 그래서 알게된 사람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게 해야 할 때도 있다.
오늘은 이번에 변호사로 임용되는 후배님의 moving counsel로 오클랜드 고등법원 일호 법정에 서게 되었다. 연수원 과정을 마치고 변호사가 될 준비가 끝난 사람은 자신을 변호사로 임명해 달라고 법원에 신청을 하게 되고, 이 신청에 따라 형식상이지만 법원에서 변호사가 되기 위한 심리를 받게 된다. 신청자는 아직 변호사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를 주장하고 혹시 있을지 모르는 이의 제기에 변론해 줄 변호사가 필요하다. 이 변호사를 moving counsel이라 한다. 변호사가 되기를 신청한 사람은 보통 친한 선배 변호사나 상사 변호사, 또는 가족 중 변호사가 있다면 그 분에게 moving counsel이 되주기를 부탁하게 된다.
오클랜드 고등 법원에는 법정이 여러개 있는데, 이중에서 일호 법정은 평상시에는 잘 사용되지 않는 소위 전시용 법정이다. 천팔백년대 말에 세워진 이후로 그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법정이기에 특별한 경우에만 쓰이는 법정이고, 주로 큰 재판이 있거나 새 변호사 임용처럼 행사가 있는 경우에만 공개 되는 법정이기도 하다. 사실 변호사로 임용된 후로 고등법원 제 일호 법정에 설 기회가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필자도 변호사 임용될 때 일호 법정에 서본 이후로 오늘에야 다시 처음 그 자리에 설 수 있었다. 날이 날이니만큼 모처럼 검정 가운에 하얀 가발을 쓰고 말이다.
새내기 변호사들의 임용이 끝나고, 판사께서 새로 임용된 변호사들에게 짧막하게 소감을 얘기할 기회를 주셨는데, 오늘 임용된 스물 두명의 변호사 중에 사연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던지... 몇 년 동안 파트 타임으로 법대 과정을 밟으며 공부를 했는데, 그 동안 뒷바라지 해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울먹이며 한 남편이 있었고, 대학 마지막 학년에 교통 사고를 당해 여기까지 오는 길이 더 길어졌고 힘들었지만 드디어 해냈다고 감격해 하던 아주머니. 어머니께서 암으로 투병중인데, 자기 임용식을 보러 법원까지 오셨다는 여자 변호사, 오늘 변호사가 되는데 자기 아버지가 moving counsel로 같은 법정에 서게 되어 영광이라는 앳된 아가씨까지. 이렇게 몇자의 글로 나열하면 별 감흥 없이 들리겠지만, 고풍스런 법정에서 긴 가운과 가발을 쓰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듣게된 그들은 사연은 잠시 눈시울을 붉게 만들게 한다.
임용식 말미에 판사께서 새내기 변호사들에게 조언을 몇가지 하시면서, 문득 한가지 질문을 던진다. 변호사에게 가장 큰 재산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고… 오랜 경험 끝에 쌓은 법률 지식일까? 고객의 숫자일까? 시간당 받는 수임료의 액수일까? 아마도 변호사로서 일하면서 쌓아온 그리고 간직하게 될 평판과 명성일 것이다 말씀하신다. 법조계라는 작은 사회에서 몇 년 일하다 보면 이름이 알려지고, 이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인지, 업무처리는 어떠한지, solicitor로 일하던 barrister로 일하던, 사내 변호사로 일하던 어떤식으로든 알려지게 되고 이렇게 쌓이는 평판은 변호사에게는 가장 큰 재산이 된다고.
이 평판이라는 것은 법조계 내부에서도 중요하고 관리되어야 하겠지만, 좀 더 크게는 고객에게 그리고 결국 사회에게 겸손해하고 평생 쌓아가야 할 큰 재산이자 과제이지 않을까 싶다. 굳이 변호사의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이는 어느 직업군이던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진리이기도 할 것이고.
필자가 여기에 한가지 더 덧붙이면, 변호사의 가장 큰 덕목은 끈기있게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변호사를 찾게되는 대다수의 분들은 어려운 일이 있거나, 어려운 일을 예상하는 분들이다. 그 어려운 일이 고민일수도, 물질적인 문제일 수도, 감정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결국 그 고민을 같이 들어주고 상의할 사람이 필요하기에 어렵게 변호사를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어느 정도의 전문 지식과 법률 해석은 기본적으로 필요하겠지만, 유능한 변호사는 고객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필요한 내용을 잘 짚어내는 변호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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