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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국의 계엄령 관련 칼럼을 다루면서, 뉴질랜드는 완전한 삼권분립이 되지 않는다는 주제도 잠깐 다룬 적이 있습니다. 뉴질랜드는 일단 3년마다의 선거를 통해 Members of Parliament, 즉 입법부 구성원을 정하고, 그 중 연립 등을 통한 다수당이 행정부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되어있습니다. 다수당을 이끄는 리더가 국가원수격인 Prime Minister가 되고, 그 리더가 선출된 국회의원들 중에서 (보통은 자기 당에서, 그리고 연립정부의 경우 같이 연립한 당에서도) 행정부서의 ‘장관’들을 임명하여 그들이 내각 즉 Cabinet을 이루는 방식입니다.
즉 한국과는 다르게 입법부와 행정부가 분리되어 서로 경쟁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닙니다. 오히려 행정부가 입법부 안에 완전히 속해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 위치는 입법부의 꼭대기쪽에). 이러한 구조에는 분명한 장단점이 있습니다. 일단 가장 큰 장점을 살펴보면, 행정부가 원하는 정책이 있을 때 입법부의 다수결을 통해 법안을 통과시키기 쉽고 그만큼 분명히 정치가 효율적이라는 것입니다.
단점은 정확히 그 반대입니다. 즉 입법부와 행정부간의 견제가 없다보니 소위 일당독재도 가능합니다. 다만 그부분은 크게 두가지로 보완이 가능할 것입니다. 첫번째, 3년마다 선거를 한다는 비교적 짧은 기간을 통해서 국민이 직접 견제를 하는 방식입니다. 만약에 이번 선거에서 선출된 당의 수뇌부가 얼토당토 않은 정치를 펼친다면, 그 다음 선거에서 바로 국민들이 다른 당을 선택하면서 심판을 할 것입니다. 또한 연립정부의 경우 자기당만의 일당독재가 거의 불가능하고 국민들의 눈치 뿐만 아니라 연립한 당의 눈치도 봐야할겁니다 (물론 보통은 뜻이 맞아서 연립을 한 것이겠지만).
두번째는 사법부의 제한적인 견제입니다. 이게 제한적인 이유는 일단 사법부는 ‘입법부가 제정한 법률’에는 보통 직접적인 딴지를 걸 수 없다고 봅니다. 그러한 헌법정신이 성문법으로 딱히 있는 건 아니지만, 기존 칼럼에서 다룬것처럼 Parliamentary Supremacy 즉 국가의 내치를 담당하는건 입법부라는, 1600년대 영국의 명예혁명때부터 이어진 관습법에 의한 것입니다. 즉 사법부가 스스로 자기통제를 하는 방식이다. 만약에 현 대법원 판사들 중 3명 이상의 다수가 이 관습법을 무효로 하고 자기들이 입법부를 직접적으로 견제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뉴질랜드에 헌정 위기가 올 것입니다. 아마도 국민투표를 통해 헌법도 성문으로 바꾸자는 이야기도 나올 것이구요 (안그래도 입법부가 제정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판사들이 판례법으로 제정할 수 있는 부분에 있어서, 선거로 선출되지 않은 사람들이 엘리트주의를 통해 간접적으로 국가 통치를 한다고 의견이 분분하기도 하니깐요). 다만 지금까지 그런 일은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사법부가 입법부를 간접적으로 견제한 적은 있었는데, 보통 법률 해석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애매한 부분이 있으면 최대한 법의 원칙, 뉴질랜드 권리장전법 (New Zealand Bill of Rights Act 1990), 및 마오리법 Tikanga 에 맞게 해석을 하는 방식입니다. 예를들어, 정부가 입양에 관한 Adoption Act 1955 법률에서 이성부부만 (spouses) 입양을 신청할 수 있다고 해놓은 부분을 2010년까지도 변경하지 않았는데 (이 경우에는 뉴질랜드가 좌우를 떠나서 대체로 진보적인 걸 생각하면, 특정 정부의 정책때문에 일부러 그런 것 같지는 않고 단순히 모든 법률을 업데이트 하지 못한 누락에 해당될 것 같긴 한데, 만약에 특정 정부가 일부러 그랬다 하더라도), 뉴질랜드 고등법원 판사는 시대를 반영했을 때 그 부분이 권리장전법 상 차별금지 위반에 해당된다고 하고, spouse라는 단어를 당연히 사실혼 관계 및 동성관계도 포함한 것이다라고 해석을 한 경우입니다.
그리고 입법부가 아닌 행정부의 결정은, 대부분 사법부에서 견제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게 바로 별도 칼럼에서 다룬 행정심판 신청에 해당되는 Judicial Review입니다. 대부분 정부기관의 ‘낮은단계’ 결정 – 즉, 이민성 직원의 비자 기각 결정, ACC 직원의 ACC 신청 거절 등 – 은 별도 법률로 제한하지 않는 한, 고등법원에서 심판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행정부랑 입법부가 맞물려 있다보니 행정부의 결정임에도 누가 봐도 ‘입법부의 꼭대기로서’ 즉 법률 통과와 비슷한 정치적인 결정인 것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느 정부기관이 얼마의 예산을 가진다라는 결정은 너무나도 정치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사법부가 건드리지 않을 겁니다. 다만 2020년 코비드 사태 때 첫 락다운 행정명령도 사실상 정치행위라고 봐도 되는 부분인데, 이 부분은 법원에서 행정심판도 듣고 어느정도 불법성이 있었다고도 선언한 적이 있습니다. 굉장히 애매한 부분입니다.
그럼 반대로 입법부&행정부도 사법부를 견제할 수 있느냐? 일단 겉표면만 보면 불가능합니다. 판사들은 한 번 임명이 되면 법률을 통해 정년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대놓고 해서는 안되겠지만, 특정 정당이 판사 임용을 결정함에 있어서 (특히 대법원 판사라면) 그 정당과 성향이 맞는지 아닌지도 고려사항으로 볼 수는 있기는 있을 것입니다. 물론 판사 임용 criteria 내역 및 결과를 공개하는 건 당연히 아니라서, 어떤 판사가 무슨 연유로 임용되었는지는 보통 베일에 쌓여있지만, 그냥 지금까지 상식적으로 보았을 때 정치 성향보다는 하위법원의 상급자인 판사들 승진, 혹은 특별히 이름을 날리는 판사들, 아니면 남녀성비나 다양한인종 비율 맞추기 등의 고려사항이 주로 보이기는 합니다.
그렇다고 판사들도 완전히 무적인 것은 아니고, 위 정년 보장에 예외가 있습니다. 또다른 칼럼에서 다룬 것처럼, 일단 Judicial Conduct Panel (사법행동조사위원회)에서 징계절차를 밟을 수 있고, 심각한 경우 그곳에서 판사의 해고를 추천할 수 있습니다. 그 중 상급법원 (대법원, 항소법원, 고등법원) 판사의 경우, Attorney General (행정부의 법무장관, 말하자면 국가의 변호사 역할) 이 입법부를 통해 Governor General (여왕대리)에게 판사해고를 승인해달라고 해야 합니다. 즉 사법행동조사위원회가 결정을 한다 해도 법무장관 한사람, 입법부 다수, 그리고 여왕대리까지 다 동의를 해야합니다 (물론 여왕대리는 대부분 정치활동을 하지 않고 형식상의 절차만 맡지만). 하급법원 (지방법원 및 고용법원 판사들) 판사의 경우 법무장관이 입법부를 거치지 않고 여왕대리에게 직접 해고를 조언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이 절차를 거쳐 해고된 판사는 없었다고 알고 있고, 보통 이런 단계에서 해고를 밟기 전에 판사들이 직접 물러나는 경우만 있었습니다.
현재 Emma Aitken이라는 지방법원 판사의 경우 2024년 11월에 한 클럽에서 Winston Peters 국회의원 연설에 야유를 퍼부운 혐의로 사법행동조사위원회가 진행중입니다. 실제로 그랬는지 정확히 뭘 한건지는 조사위원회에서 아직 결정이 나지 않은 사안이긴 한데, 이 건도 행정부&입법부에서 사법부를 견제하는 방식 중에 하나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