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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한국에서의 어느 봄, 나는 야트막한 언덕에 집을 짓고 있었다. 그 땐 꽤 외진 곳으로 주변엔 박석처럼 인분이 말라붙어 있는 시금치 밭과, 여러 종류의 채마밭들이 펼쳐져 있고, 좀 먼 곳에선 대단위의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는 콘크리트 기둥박는 소리가 “캥캥” 하루종일 들렸었다. 가끔 그쪽에서 바람이라도 불어오는 날이면 무슨 연료타는 냄새같은 게 그 바람에 묻어오기도 했었다.
아직 살고 있는 집이 그리 멀지 않아서 매일 아침 집안 일이 끝나면 집짓는 현장을 찾아가 머물곤 했었는데, 어느날 일하시는 분들이 화장실이 급하다고 주문한다. 남자들은 일하면서 대충 해결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더 큰 것이 문제였다. 그런데 공사장 옆엔 울타리 없이 작은 초가집 한채가 있었다. 많이 연로하신 부부가 살고 계셨는데, 건축현장과 그 댁 사이엔 이제 막 피기 시작하는 하얀 박꽃들을 사이사이에 물고 있는 박줄기가, 열심히 기어오르는 푸세식 뒷간이 자리잡고 있었다. 막힌 공간이라고 하기엔 너무 허술해 자세히 보면 일볼 때 엉덩이가 다 보일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집에 달려있는 부엌문과 안방문은 열때는 사람이 열어도 저절로 닫히는 기능을 가진 듯, 뒤로 거만하게 버팅기고 있고 또 잘 작동되고 있었다. 곱게 다져진 넓지 않은 마당 한켠 대추나무엔, 하얀 개 한마리가 목줄이 묶여 있었다. 두 발을 앞으로 다소곳하게 모으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순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 볼 뿐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 숱이 성긴 할머니의 메추리알만 한 하얀 낭자머리엔 오래 된 은비녀가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집 건축이 끝나면 푸세 한 번 해드리기로 하고, 일하는 이들의 뒷간 출입을 허락받고 나오는데, 그 댁 할아버지께서 들어오셨다. 하얀 모시 두루마기까지 차려입은 모양새가 어디 결혼식에라도 다녀오시는 듯, 보기드문 옷 매무새는 바람을 품어 안은 듯 풍성하고 근엄하면서 아주 멋져 보였다. 마루 한 켠에 잘 길들여진 다듬이 돌이 있는 걸 보면 다듬이와 할머니의 야문 손끝에서 나온 작품이지 싶었다. 그 후 집짓기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것저것 책임지고 총괄하시던 분이 조용한 소리로 나를 부른다.
아랫층을 내려가는 외부 층계 터파기에서 뭐가 나왔다고 한다. 아! 혹시 무슨 유물이라도…? 장난스레 생각하며 가 보니 큰 구멍이 숭숭 뚫린 하얀 사람의 두개골과 뼈 몇개가 신문지에 싸여 있었다. 대부분의 묫자리들이 그러하듯이, 가령 남쪽으로 앞이 트이고 양지바른 언덕 위, 지형상 충분히 그럴만 한 곳이긴 한데…처음 경험해 보는 일이었지만 그렇게 놀랍지도, 또 무섭지도 않았다.
서둘러 한지와 제물로 쓸 북어포와 배, 초, 막걸리를 사오게 했다. 신문지를 걷어지고 한지로 정성껏 다시 싼 후 배는 위 아래를 도려낸 뒤 상에 올렸다. 따뜻한 햇볕을 등으로 받으며 두 자루의 초를 밝히고 막걸리를 부어 놓으니 일손을 놓은 몇 사람이 와서 절을 올리고 분위기가 제법 숙연하다. 나도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어느 댁 어르신인지 평안한 잠을 깨워드려 죄송합니다. 모쪼록 저희가 사는 동안 잘 살펴 주십사” 고…묵은 배의 하얀 속살이 봄볕에 메말라가고 벌어진 낯 술판은 술을 더 사와 먹으면서 그 날의 공사는 일찌감치 종료되고 말았다.
주변 정리가 거의 끝난 후 우리는 새 집으로 이사를 해서 막바지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텅 비어있는 동네에 무섭지 않느냐 사람들이 물었다. 그 때는 아이들도 어리고 남편은 장기출장 근무중이어서 격주로 빨리거릴 갖고 오곤 했었는데, 밤이 되면 인적도 끊기고 낯선 동네인데도, 나는 전혀 무섭지 않았다. 가깝게 살면서 자주 놀러오는 언니 한 분도 자기는 무서워서 밤엔 못 놀러오겠다는데 거기에다 대고 해골 이야기까지 하면 낮에도 발길을 끊을 것 같아 아뭇소리도 못 했다.
그렇게 얼기설기 속이 훤히 보이던 뒷간은 하얀 박꽃과 싱싱했고 너른 잎사귀들을 문 줄기가 푸짐하게 감싸안아 나름 운치있게까지 느껴졌다. 박도 열려 개중엔 제법 여문 박이 어느새 짚으로 만든 똬리를 깔고 앉아 보름달같은 얼굴로 뽐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언제 뵈어도 하얀 모시 잠벵이와 적삼을 입고 계셨는데 항상 풀기가 빳빳한, 앞섶이 말리지 않은 옷을 입고 계셨다. 모시 옷은 하루만 입어도 앞섶이 말려 올라가던데…하얀 개도 대추나무 밑에 앉아 학학대며 혀를 빼물고 막바지 한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로 지글지글 끓던 햇볕도 말복이 돌아오자 밤엔 그래도 선선해 편안한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보니 별들이 총총하고, 가을도 멀지 않은 듯 바람이 기분좋게 들어오는데, 어디서 자꾸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개가 낑낑거리는 소리, 퍽퍽 무언가로 내려치는 둔탁한 소리가 섞여 반복해서 들리기에 목을 빼고 내려다보니 할아버지댁 마당에서 나는 소리였다. 대추나무에 무언가 하얀 덩어릴 매달아 놓고 흰 옷 차림의 할아버지가 두들겨 패고 있었다.
어슴프레한 속을 눈을 부름뜨고 뒤적여보는데 분명 할아버지였다. 매달려서 허우적대는 물건은 언제나 마당에 묶여 눈만 꿈벅대던 백구였다. 마치 할아버지는 칼에 술을 뿜어대며 누굴 처형하기 전 춤추는 망나니 같았다. 등골이 오싹하면서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그렇게 한 후 개를 잡으면 육질이 부드럽대나 뭐래나…내가 그 나이 되도록 보아온 어떤 장면보다 가장 잔인하고 처참한 그림이었다.
그 후로 해가 설핏 기울기만 해도 아이들을 불러들이고 나는 밖을 나가지 못했다. 초가집 앞을 지날 때면 애써 외면하고 다녔다. 날씨가 선선해진 탓도 있지만 나는 점점 문닫고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아이들도 두꺼운 옷을 찾아 입을 때 쯤, 아침에 일어나니 예년에 비해 좀 이른 첫눈이 내려앉아 있었다. 많은 양은 아니어서 벌써 양지쪽은 녹아내리는데도 아이들이 좋아한다.
그 때, 초가집에서 곡성이 터졌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단다. 나는 지난 여름이 다시 생각나면서 몸서리를 쳤다. 가까운 거리인데도 부조로 막걸리 한 통을 인편으로 보내고 문마다 고리를 전부 걸어잠그고 하루를 보냈었다.
그땐 그 모습이 진저리치게 무서웠지만, 요즘엔 직접 보지 않고 여러 매체를 통해 걸러져서 알게 되기 때문일까? 더욱더 무서운, 사람으로선 도저히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일들이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그때처럼 무섭지 않은 것은 늙어 무디어진 감성과, 모질어진 마음에서 오는 뻔뻔함, 또는 나만 아니면 된다는 약삭빠른 계산에서 나오는 것일게다.
하얀 모시옷의 할아버지와 그 분이 기르고 잡아 잡수신 하얀 개, 무심하게 뒷간을 감싸 피었던 박꽃, 하얀 한지에 싸여 있던 누군지 모르는 하얀 두개골, 벌건 대낮에 켜져 촛농으로 무너지던 하얀 초, 말라가던 하얀 배즙과 하얗게 깔려있던 첫 눈. 부조로 보낸 하얀 막걸리. 거기에 남의 돈 빌려쓴 사람의 이자처럼, 잘때도, 울 때도, 아무리 눌러도, 밀고 올라오는 나의 흰 머리.
더불어 살면서도 세상은 어지럽고 험악한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자괴감이 나의 흰머릴 더 보태고 만다.
이제 한 더위는 비낀 듯 하여 엄마가 남기고 떠나신 반닫이를 연다. 해마다 이때쯤 바꾸어 넣고 있는 옷 중엔 엄마의 모시적삼이 끼어있다. 여름을 밖에서 보내고 다시 장 속으로 들어간다. 돌아가신 후 수년째 계속되는 이 행위는 엄마를 생각나게도 하지만, 버릴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입기엔 입지적인 조건이 너무 안 맞는다.
여기저기 저지레하듯 뒤적이긴 했었으나 무엇하나 제대로 한 것 없이 나의 삶이 끝나가고 있는 듯 하다. 여기 하얀 파도와 하얀 구름이 많은 이 나라에서…살아오면서 어느 분야에서든 한번 쯤 채색하여 일가를 이뤄볼 수도 있었겠으나 오히려 너무도 여러 곳을 기웃거렸던 곳이 많아서 아무것도 특별히 잘하는 게 없음을 서러워하며 찬바람이 부는 가을이 오면 이 작은 모시적삼을 캔버스 삼아 가슴에 매화꽃 가지를 그려 넣어볼까 생각한다. 어깨에 처-억 휘어걸치듯 여유롭게…
그래도, 아직은 한뼘 쯤 남아있는 내 삶의 여백을 채우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