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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학교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부모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학업으로 향한다. 숙제와 성적, 앞으로의 진로까지 관심은 계속 이어진다. 이것은 부모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다. 그러나 자녀의 성장을 좌우하는 것은 관심의 깊이가 아니라, 부모가 선택하는 개입의 방식이다.
지난 수년간 학부모 상담을 하며 흥미롭게 느낀 점은, 많은 부모가 자녀의 성장 단계에 맞는 역할 조정을 어려워한다는 사실이다. 자녀가 어릴 때는 “아직 어리니 자유롭게 두자”라고 생각하다가, 학년이 올라가면 뒤늦게 통제를 강화하고, 고등학생이 되면 성적에 대한 압박을 최고조로 높인다. 이런 흐름은 여러 가정에서 비슷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자율학습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 반대의 방향이 필요하다.
Primary 저학년은 아직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기이다. 따라서 자녀를 마냥 자유롭게 방치하기 보다 기초를 탄탄히 다질 수 있도록 부모가 주도적으로 학업을 이끌어주어야 한다. 읽기, 쓰기, 기초 산술 능력은 이후 모든 학습의 기반이 된다. 특히 독서를 통한 문해력은 곧 사고력과 직결되기에 더욱 중요하다. 이 시기에 부모가 주도적으로 학습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단순한 간섭이 아니라, 부모로서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이라 할 수 있다.
Primary 고학년과 Intermediate초기 단계에 이르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 시기는 점진적으로 학습의 선택권을 자녀에게 넘겨주어야 하는 시기이다. 무엇을, 언제, 얼마나 공부할지에 대한 결정부터 스스로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부모의 역할은 방향을 대신 정해주는 것에서 자녀가 스스로 길을 찾도록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정답을 바로 알려주기보다, 필요한 정보와 접근 방법을 안내하며 조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High School 시기에 들어가면 자녀는 충분히 자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지나친 통제는 오히려 책임감을 약화시킨다. 물론 정보 제공은 여전히 필요하다. 과목 선택, 평가 방식, 진학 경로에 대한 정보는 부모가 함께 탐색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최종 결정과 실행의 책임은 자녀가 지도록 해야 한다. 학업의 주도권은 이 시기에 분명히 이전되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바로 <자율학습능력>이다. 자율학습은 단순히 혼자 공부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세우며, 실행 과정에서의 실패를 극복하고, 필요할 때 적절히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종합적인 능력을 말한다. 이러한 능력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지 않는다. 부모가 자녀의 성장 단계에 맞춰 학습의 권한을 단계적으로 이전해 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오늘날의 교육 환경은 과거와 본질적으로 달라졌다. 이제 정보는 부족하지 않다. 온라인 강의와 영상 자료, 디지털 학습 플랫폼, 그리고 인공지능(AI) 도구에 이르기까지 학생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은 그야말로 넘쳐난다. 결국 문제는 정보의 양이 아니라 선택과 판단의 영역으로 옮겨갔다. 수많은 정보 중에서 무엇을 믿을지, 어떤 자료가 자신에게 적합한지, 그리고 인공지능(AI)을 어디까지 어떻게 활용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부모가 자녀의 학습 모든 과정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숙제의 의미와 학습의 방식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제 정답을 빨리 찾아내는 능력은 더 이상 차별화된 경쟁력이 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정답에 도달하기까지의 논리적인 단계를 스스로 구축해 낼 수 있는 능력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통제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고의 틀을 세워주는 일이다.
많은 부모의 개입의 이면에는 사랑만큼이나 불안이 자리잡고 있다. 내 아이가 뒤처지지 않을지, 혹시 잘못된 선택을 하지는 않을지에 대한 걱정이 결국 통제로 이어진다. 그러나 통제는 일시적인 안도감을 줄 뿐, 독립성을 길러주지는 못한다.
학업의 최종 목적은 눈 앞의 성적보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독립성을 기르는 데 있다. 부모의 역할은 감독자가 아니라, 자녀가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어린 시절에는 학업의 기반을 마련해 주고, 성장 과정에서는 선택의 기회를 넓혀주며, 적절한 시점에는 책임을 차분히 넘겨주어야 한다.
부모는 자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다. 학업 문제로 인한 부부 간의 갈등이 자녀에게 노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학업 방향에 대한 의견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최소한 자녀 앞에서는 일관된 메시지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자녀는 부모의 말보다 태도를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이다.
부모가 쥐고 있던 학업의 주도권을 자녀에게 이전하는 과정은 다소 불안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자녀가 자신의 공부를 스스로 책임질 수 있을 때 비로서 성장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전정훈 원장
Edu-Kingdom College, North Shore
newcan11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