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스트레스,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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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스트레스, 어디로 가는가

0 개 565 천미란

ㅣ 술, 갬블링, 과로로 흘러가는 감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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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시작되면 많은 이민자들이 다시 마음을 다잡습니다. 올해는 조금 덜 힘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으니 괜찮아질 거라는 기대 말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민 생활은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를 만들어냅니다. 초기의 생존 스트레스가 사라진 자리에 외로움, 정체성의 혼란, 누적된 피로가 조용히 쌓이기 시작합니다.


많은 한국 이민자들은 자신의 스트레스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데 익숙합니다. “이 정도는 다들 겪는 거지”, “나만 힘든 건 아니잖아”라는 말은 자주 듣게 되는 표현입니다. 이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문화적 학습의 결과에 가깝습니다.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참고 견디는 것이 미덕이었던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에게,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여전히 어색하고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감정은 무시한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표현되지 못한 감정은 다른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특히 이민자들의 스트레스는 술, 갬블링, 과로라는 세 가지 통로를 통해 흘러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행동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 전혀 달라 보이지만, 그 밑바탕에는 공통된 심리적 기능이 존재합니다. 바로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한 방법, 혹은 감정을 잠시 잊기 위한 방법이라는 점입니다.


술은 가장 빠르고 익숙한 선택지입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마시는 술 한 잔은 긴장을 풀어주고, 머릿속을 잠시 비워줍니다. 문제는 술이 점점 감정을 조절하는 주요 수단이 될 때입니다. 스트레스가 많아질수록 술의 역할도 커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술 없이는 잠들기 어렵거나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 상태가 됩니다. 이는 의지의 약함이라기보다, 다른 방식으로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갬블링은 종종 더 큰 오해의 대상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단순히 돈을 잃는 행동, 혹은 절제하지 못한 선택으로만 바라봅니다. 그러나 이민자들에게 갬블링은 감정적 맥락 속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습니다. 언어의 장벽, 사회적 고립, 낮아진 사회적 지위, 그리고 통제력을 잃었다는 느낌은 일상 속에서 반복적으로 쌓입니다. 이때 갬블링 공간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곳, 잠시나마 성취감과 기대를 느낄 수 있는 장소로 작동합니다. 이는 돈보다 감정에 관한 이야기이며, 자존감과 연결된 문제인 경우가 많습니다.


과로는 가장 드러나지 않는 출구이자, 가장 쉽게 정당화되는 방식입니다.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은 책임감 있고 성실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특히 이민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삶은 감정을 느낄 틈을 주지 않습니다. 멈추는 순간 밀려오는 허탈함과 불안을 피하기 위해 더 많이 일하게 되고, 결국 몸과 마음이 동시에 지쳐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는 성공을 향한 노력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행동들을 평가하거나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질문해야 할 것은 그 이면에 무엇이 있는가입니다. 술, 갬블링, 과로라는 행동이 시작되기 전, 그 사람은 어떤 감정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을까요. 외로움, 실패감, 두려움, 분노, 혹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많은 이민자들은 이러한 감정을 표현할 언어와 공간을 갖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감정에는 안전한 출구가 필요합니다. 그 출구는 반드시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것,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점검해보는 것, 혹은 전문적인 도움과 연결되는 것 역시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뉴질랜드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지원 체계가 존재하지만, 여전히 많은 한인들은 “그 정도는 아니다”라는 이유로 그 문을 두드리지 않습니다.


1월은 다시 시작하는 달이지만, 동시에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지금 나의 스트레스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그 방식이 장기적으로 나를 보호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감정은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그동안 갈 곳을 찾지 못해 다른 길로 흘러왔을 뿐입니다. 새로운 해에는 감정이 조금 더 안전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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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서비스) 혹은 asian.admin@asianfamilyservices.nz / 0800 862 342 “내선 2번을 누르세요”로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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