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나무도 생명, 내버려둘수록 차 맛도 맑다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천미란
성태용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조성현
전정훈
Mystery
커넥터
Roy Kim
차자명
권레오
독자기고
새움터
김준
박기태
수선재
김도형
마이클 킴

차나무도 생명, 내버려둘수록 차 맛도 맑다

0 개 454 템플스테이

화엄사 구층암 ‘죽로야생차’


2699c3ed22fb3767b2b1579f8e5a8fa6_1769547770_3019.png
 

“혹시 대나무와 조릿대의 차이를 알아요?”


차밭을 정비하러 나서는 길, 구층암 주지 덕제 스님이 문득 질문을 던졌다. 알 리 없다. 더욱이 대나무와 조릿대의 차이가 차나무와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도통 가늠하기 어렵다. 차밭 정비는 보통 칡 같은 넝쿨(덩굴) 식물들을 걷어내는 방식이다.


그래서 스님이 허리춤에 달린 주머니에 이것저것 장비를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도 ‘야생차밭이라 칡이 워낙 무성한가 보다’ 막연한 생각을 하던 차였다.


지리산 자락 구층암은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의 산내암자로, 무려 10만여 평에 달하는 야생 차나무밭에 감싸여 있다. 화엄사와 구층암 주변 골짜기마다 펼쳐진 너른 차밭은 천 년을 이어 자연적으로 자란 차나무들이 군집을 이룬 곳으로, 대부분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해 온 ‘진짜 야생차’로 정평이 나 있다.


2699c3ed22fb3767b2b1579f8e5a8fa6_1769547802_6506.png
 

이 야생차밭을 관리하기 위해 덕제 스님이 하는 일은 차나무의 생장을 방해하는 주변 식물들을 정리하고 차나무의 상태를 점검하는 정도다. 스님이 대나무와 조릿대의 차이를 물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대나무는 차나무와 상생할 수 있지만 조릿대는 어렵기에 제거 대상이다.


스님에 따르면, 대나무과 식물인 조릿대는 마디를 맺으며 자란다는 점에서 대나무와 비슷하지만 자라면서 주변 차나무의 생장에 뚜렷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조릿대가 땅속으로 줄기와 뿌리를 뻗기 시작하면 빠른 속도로 주변을 점령하며 금세 무성해지는데, 이런 환경에서는 차나무가 잘 자라기도 어렵고, 어린 차나무의 경우 햇볕을 받지 못해 자라지 못하거나 시들어 버린다는 설명이다.


“어느 정도 자라기 전에는 대나무와 조릿대가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대나무는 뿌리가 자리 잡는 간격이 넓고 쭉 뻗어 자라는데, 조릿대는 뿌리가 모두 연결되어 있어서 아주 빽빽하게 자라죠. 마디를 자세히 보면 차이가 보여요. 대나무는 괜찮지만, 조릿대를 그냥 두면 차나무가 잘 자라는데 아주 방해가 됩니다.”


구층암 뒤편 차밭은 사실 밭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야생 차나무 군락지다. 그동안 흔히 봐왔던 차밭처럼 차나무들이 야트막한 언덕에 넓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 아니라, 산속 구석구석 온통 차나무가 모여 자라고 있다. “구층암 바로 뒤편 차밭” 이라는 말에 흔쾌히 따라나섰으나, 그야말로 생각지도 못한 등산을 하게 된 셈이다. 허리춤을 훌쩍 넘어서는 크기의 차나무는 흔하디흔한 수준이다. 개중에는 한 뿌리에서 났지만 굵은 가지 대여섯 개가 동시에 자라 두 팔로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위용을 자랑하는 차나무도 있다.


2699c3ed22fb3767b2b1579f8e5a8fa6_1769547823_8771.png
 

스트레스 받으면 떫어지는 차


초가을 내리쬐는 뙤약볕을 고스란히 맞으며 골짜기를 굽이굽이 오르는 동안에도 덕제 스님의 눈과 손은 도통 쉴 틈이 없다. 수풀이 우거져 길조차 감춰버린 산자락 곳곳을 헤치며 조릿대를 걷어내고 넝쿨을 뜯어낸다. 허리춤의 주머니에서 조경용 가위와 칼, 삽이 번갈아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이 도구들은 주변 식물들을 걷어낼 뿐 차나무에는 닿는 일이 없다.


“차나무도 생명입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쓴맛이 강해져요. 그해 야생 차나무에서 처음으로 딴 찻잎을 우리는 첫물이라고 부르는데 그 맛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럽죠. 같은 나무에서 찻잎을 또 따면 두 물이 되는 건데 확실히 다릅니다. 그러니 애초에 칼을 대고 가위를 대어 정돈할 필요가 없어요.”


구층암 ‘죽로야생차’가 맛 좋기로 입소문 난 이유도 제다법이 아니라 본 재료인 찻잎에 있다는 설명이다. 스님은 “사람의 손으로 찻잎을 따는 것도 차나무에는 스트레스 요인이 된다.”며 “찻잎이 이미 떫고 쓰면 차를 아무리 잘 만든다고 해도 맛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유튜브 촬영을 위해 함께 등산하던 구층암 봉사자가 공감하며 말을 보탰다.


“2년 전인가, 스님을 따라 차밭에 갔다가 한 번도 찻잎을 따지 않았다는 차나무 잎을 따서 바로 먹어본 적이 있어요. 진짜 떫거나 쓴맛은 하나도 없고 달기만 하더라고요. 그 찻잎 맛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사실 녹차를 향한 대중의 선입견 중 하나가 떫은 맛이다. 녹차를 우릴 때 뜨거운 물을 식혀 붓는 방식이나, 차를 마실 때 다식을 함께 먹는 이유도 이 떫은맛과 일부 연관이 있다. 반면, 사람의 손길이 적게 닿은 야생 차나무의 찻잎은 떫은맛이 적어 잎이 좀 커도 충분히 차로 만들어 마실 수 있다. 덕제 스님은 “수좌스님들 중에도 차를 먹으면 ‘속이 긁힌다’고 하는 분들이 있다.”며 “특히 빈속에 떫은맛의 차를 마시면 속이 불편하기 때문에 다식을 함께 먹는데, 경험상 찻잎이 좋으면 맛이 부드러워 다식도 딱히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골짜기 초입의 차나무들은 이미 흰 꽃을 피웠고, 간혹 열매가 매달린 차나무도 여기저기 눈에 띈다. 차나무의 꽃과 열매 또한 차나무에 닿은 사람의 손길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받아 위협을 느낀 차나무는 번식을 위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데, 실제로 구층암 차밭 역시 수령 10~20년 가량으로 추정되는 한 뼘 남짓한 크기의 어린 차나무들이 초입에 유독 많았다.


덕제 스님은 “2007년경 구층암에 와서부터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의 차나무에서 찻잎을 따 차를 만들기 시작했다.”며 “이전에는 차나무를 건드리는 사람이 없으니 꽃도 피지 않다가 5년째가 되니 차나무 꽃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무렵 구층암 차를 마셨던 스님들도 차 맛이 변했다고 하기에 이러한 이치를 자연스레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덕제 스님이 구층암에 온 지도 어느새 17년을 채운다. 2005년 화엄사 원주소임을 살 무렵부터 차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전부터 차를 사랑했으니, 차와의 인연은 20년이 훌쩍 넘어선다. 그래서 아쉬움도 많다. 여전히 화엄사와 구층암 주변 10만 평 상당의 차밭에는 아직 찻잎을 따보지도 못한 차나무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찻잎을 따러 가기엔 너무 험하거나 매번 차를 만드는 인원이 부족해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2699c3ed22fb3767b2b1579f8e5a8fa6_1769547869_968.png
 

십수년간 찻잎을 함께 땄던 마을주민들도 이제는 연로해 오르기 힘든 곳은 가지 못하는 상황이고 인부를 쓴다고 해도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나마 채다(採茶) 시기 국내외 자원봉사자들이 템플스테이의 일환으로 구층암을 찾아와 함께 찻잎을 따고 차를 만들지만 항상 부족한 인원이어서 평균적으로 40g 기준으로 3,000통 가량 겨우 만드는 수준이다.


사찰과 함께 천 년 넘은 야생차밭


화엄사와 구층암 일대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차밭이 존재했지만, 차를 좋아하는 일부 스님들이 찻잎을 따 차를 만들고 사중스님들과 나누는 정도였다.


여기에 시기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구층암에는 유독 차를 사랑한 스님이 있었다. 바로 덕제 스님의 은사인 종열 스님의 은사, 도광 스님이다. 차를 워낙 좋아했던 도광 스님은 40여년 전 화엄사에 주석할 당시 마을주민들을 데리고 차밭에서 찻잎을 따 차를 만들었고 인근에서 좋은 찻잎을 구할 수 없으면 나주까지도 찻잎을 따러 다녔다고 전해진다. 도광 스님이 직접 만들었다는 나무 차통은 손상좌인 덕제 스님의 다실 한쪽에 잘 보관되어 있다. 덕제 스님은 “오래전부터 차나무가 있더라도 차를 사랑해서 찻잎을 따고 차나무를 건드리는 사람이 있어야 차나무도 번식을 한다.”며 “그렇게 보면 아마도 노스님 살아계실 적에 화엄사와 구층암 인근에 차나무가 많이 확산됐을 것”이라고 했다.

사실 화엄사와 차의 인연은 역사가 상당하다. 화엄사가 창건된 통일신라시대부터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 앞의 차를 공양 올리는 보살상이 그 인연을 짐작하게 한다. 화엄사의 창건주로 알려진 연기조사는 효심이 지극해서 어머니에게 항상 차를 끓여 공양을 올렸다고 전해지는데 바로 그 모습이 조각된 석탑이다.


2699c3ed22fb3767b2b1579f8e5a8fa6_1769547898_0041.png
 

“어찌 보면 수행을 하는 스님들은 차를 사랑하게 됩니다. 확실히 차를 마시면 정신이 고요해지고 맑아지거든요. 떫거나 쓴 차도 효능이 있어요. 애초 농사의 신이라는 신농이 차를 마시게 된 연유가 해독과 항염에 있잖아요. 부드럽고 맑은 맛의  야생차라면 더할 나위 없죠. 사찰과 선원에서, 또 사회적으로 차를 더 가까이하고 즐겨 마시는 문화가 만들어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 화엄사 구층암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539-2

010-5436-0009 l http://gucheungam.com


■ 출처: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템플스테이 매거진(vol.67)


노화(老化)와 노쇠(老衰)는 다르다

댓글 0 | 조회 31 | 2시간전
노화(Aging)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보기

변화의 시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댓글 0 | 조회 330 | 15시간전
우리는 지금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 더보기

대학생 공부하기 싫을 때 및 번아웃 어떻게 해야 될까요

댓글 0 | 조회 272 | 3일전
매년 이맘때쯤이면 메디컬 입시 (의대… 더보기

GAMSAT 의전원.치전원 입학시험 고득점 팁과 노하우

댓글 0 | 조회 283 | 7일전
지난 칼럼에서는 GAMSAT 3월 시… 더보기

지식을 다루는 방법에 대하여

댓글 0 | 조회 407 | 9일전
인공지능과 과학기술의 발전은 우리 일… 더보기

드래곤 전설의 기원

댓글 0 | 조회 218 | 9일전
— 인간은 왜 ‘용’을 상상했는가상상… 더보기

비료와 먹거리

댓글 0 | 조회 225 | 9일전
먹고 살려면 농사를 지어야 한다. 산… 더보기

뉴질랜드 민사소송의 약식 판결 및 각하

댓글 0 | 조회 353 | 10일전
보통 뉴질랜드 민사소송은 원고 측에서… 더보기

27. 우레와(Urewera) 부족과 안개 속의 여인

댓글 0 | 조회 164 | 10일전
뉴질랜드 북섬의 깊은 원시림 속에는 … 더보기

고국의 품에 안긴 카자흐스탄 독립유공자 후손과 재외동포

댓글 0 | 조회 196 | 10일전
카자흐스탄 재외동포 초청 낙산사 템플… 더보기

벚꽃 편지

댓글 0 | 조회 198 | 10일전
창밖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 더보기

비자금

댓글 0 | 조회 334 | 10일전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글쎄 암이란 놈… 더보기

8편 – 체르노빌 섀도우: 봉인된 보고서

댓글 0 | 조회 172 | 10일전
“체르노빌은 ‘폭발’이 아니라, ‘개… 더보기

고용주의 신고의무

댓글 0 | 조회 587 | 2026.04.28
▲ 이미지 출처: Google Gem… 더보기

유학을 보내도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이유 — 공부보다 중요한 것

댓글 0 | 조회 498 | 2026.04.28
▲ 이미지 출처: Google Gem… 더보기

생각이 사람을 만든다

댓글 0 | 조회 171 | 2026.04.28
시인 천 양희이 생각 저 생각 하다어… 더보기

파트너쉽 비자, 딱 한번에 승인받기

댓글 0 | 조회 444 | 2026.04.28
뉴질랜드에서 배우자 또는 파트너와 함… 더보기

갬블링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 뇌와 감정의 이야기

댓글 0 | 조회 186 | 2026.04.28
도박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는 여전… 더보기

골프 코스마다 스타일이 다르듯, 인생도 정답은 없다

댓글 0 | 조회 225 | 2026.04.28
골프를 오래 치다 보면 깨닫게 되는 … 더보기

걷기 열풍

댓글 0 | 조회 454 | 2026.04.25
충북 괴산에 ‘걷기 열풍’이 불어 9… 더보기

GAMSAT 의.치전원 입학시험 총평 및 출제경향 (2026년 3월)

댓글 0 | 조회 329 | 2026.04.20
<GAMSAT의 급부상 인기&g… 더보기

건강한 겨울나기 예방 접종으로 준비하세요

댓글 0 | 조회 672 | 2026.04.17

어디가 더 들어가기 어려울까? 오타고대 의대 vs 오타고대 치대

댓글 0 | 조회 969 | 2026.04.16
지난 칼럼에서는 오클랜드대 Biom… 더보기

전쟁과 평화

댓글 0 | 조회 269 | 2026.04.15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전쟁 없이… 더보기

미확인 해양 괴생물(MO) 목격담

댓글 0 | 조회 388 | 2026.04.15
— 인간은 왜 바다에서 ‘무언가’를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