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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존재했는가, 아니면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환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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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세계유산”
인류가 남긴 유산 가운데, 가장 유명하지만 아무도 본 적 없는 건축물이 있다.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수천 년 동안 시와 그림, 역사서와 영화 속을 떠돌아다녔지만 정작 그 실체는 땅 위에 남아 있지 않은 곳. 바로 바빌론의 공중정원(Hanging Gardens of Babylon)이다.
기원전 6세기, 유프라테스 강변에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이 정원은 “하늘에 떠 있는 숲”, “돌로 만든 산 위의 낙원”이라 불렸다. 고대 작가들은 계단식 테라스 위에 나무와 꽃이 무성했고, 사막 한가운데서 물이 폭포처럼 흘렀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오늘날 바빌론 유적 어디에서도 공중정원을 확실히 증명하는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공중정원은 단순한 고대 건축물이 아니라, 역사와 신화의 경계에 놓인 질문이 되었다.
“그 정원은 정말 존재했을까?”
아니면 “존재하지 않았기에 더욱 위대한 상상력이 되었을까?”
바빌론, 제국과 사랑의 도시
공중정원 전설의 무대는 신바빌로니아 제국이다. 이 제국의 정점에는 기원전 6세기, 바빌론을 세계 최대의 도시로 만든 왕 느부갓네살 2세(Nebuchadnezzar II)가 있었다. 그는 이슈타르 문, 바빌론 성벽, 지구라트 등 거대한 건축 사업으로 권력을 과시한 인물이다.
전설에 따르면 공중정원은 왕의 사랑에서 시작되었다. 느부갓네살은 메디아 왕국 출신의 왕비 아미티스(Amytis)를 맞이했는데, 그녀는 푸른 산과 숲이 가득한 고향을 그리워했다. 사막과 평야뿐인 바빌론에서 우울해하던 왕비를 위해, 왕은 인공 산을 쌓고 그 위에 나무와 꽃을 심어 고향을 재현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 서사는 정치적 제국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지극히 인간적이다. 정복자이자 폭군으로 기억되는 왕이, 한 여인의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낙원을 만들었다는 설정은 이후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이야기꾼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기록은 넘치는데, 증거는 없다
공중정원의 가장 큰 수수께끼는 단순하다.
“왜 이렇게 유명한데, 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가?”
흥미롭게도 공중정원을 언급한 기록은 바빌로니아 문헌이 아니라, 대부분 그리스•로마 작가들의 글이다. 디오도로스, 스트라본, 필론 등은 공중정원의 구조와 규모를 상세히 묘사했다. 돌기둥 위에 놓인 계단식 정원, 아치 구조, 나사식 펌프로 끌어올린 물, 사계절 푸른 나무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다.
• 느부갓네살의 방대한 점토판 기록 어디에도 공중정원은 등장하지 않는다.
• 바빌론 발굴 유적에서도 이를 확증할 구조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학자들은 세 갈래로 나뉘었다.
1. 공중정원은 실제로 존재했으나,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2. 존재했으나, 위치가 바빌론이 아니었다
3. 처음부터 신화적 상상에 가까웠다
이 중 두 번째 가설이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다.
“바빌론이 아니라 니네베?”
21세기 들어, 옥스퍼드 대학의 고고학자 스테파니 달리(Stephanie Dalley)는 파격적인 주장을 내놓았다.
“공중정원은 바빌론이 아니라,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 니네베에 있었다.”
그녀에 따르면, 니네베의 왕 산헤립(Sennacherib)은 자신이 만든 정원을 “모든 민족이 경이로워할 궁전 정원”이라 기록했고, 실제로 대규모 수로 시스템과 아치형 수로 유적이 발견되었다. 특히 물을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는 기술은, 기존 바빌론보다 니네베에서 더 구체적으로 입증된다.
이 가설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한 위치 변경이 아니다.
이는 ‘바빌론의 공중정원’이라는 이름 자체가 후대의 오해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바빌론이라는 이름이 제국과 문명의 상징이 되면서, 다른 도시의 위업이 바빌론의 이름으로 흡수되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보더라도, 공중정원에 묘사된 기술—대규모 관개, 수압 시스템, 석조 테라스—는 불가능한 기술이 아니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증거의 공백이다.
“존재하지 않았기에 영원하다”
공중정원은 실존 여부와 무관하게, 인류 문화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르네상스 화가들은 공중정원을 이상향으로 그렸고, 낭만주의 시대에는 “잃어버린 낙원”의 상징이 되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영화, 게임, 소설에서 유토피아 혹은 오만의 상징으로 반복 등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공중정원이 실존이 불확실할수록 더 강력한 상징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피라미드는 존재하기 때문에 현실이 되었지만, 공중정원은 존재하지 않기에 인간의 욕망과 상상을 끝없이 투사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이는 현대 사회에도 묘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실재하는 것”만을 가치 있게 여기는가,
아니면 믿고 싶은 이야기에 더 강하게 반응하는가?
“정원은 땅 위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있다”
바빌론의 공중정원은 어쩌면 존재했을 수도,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것이다.
그 정원은 인간이 꿈꾸는 이상향의 원형이라는 점이다.
사막 한가운데서 푸른 숲을 만들고, 돌 위에 생명을 얹으며, 기술과 사랑으로 자연을 재현하려 했던 상상. 그것은 고대의 전설이면서 동시에 오늘날 우리가 스마트 시티, 인공 낙원, 지속 가능한 미래를 이야기할 때 반복하는 욕망과 닮아 있다.
공중정원이 실재했는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일지 모른다.
“우리는 지금, 어떤 공중정원을 만들고 있는가?”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아직 오지 않은 세계를 설계하려는 인간의 본능.
그 본능이 있는 한, 바빌론의 공중정원은 무너진 폐허가 아니라 살아 있는 질문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정원은 처음부터 땅 위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 속에 있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