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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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전쟁

0 개 206 이경자

아침마다 의식처럼, 볕이 쏟아지는 툇마루에 꼬맹이를 돌려 앉히고, 엄마는 아이의 긴 머릴 두 갈래로 종종 땋아 내려 빨간 리본으로 갈무리했다. 반지르르한 머리가 아침 햇살에 빛나고, 그 일은 항상 꼬맹이의 하루의 시작으로도 표현되었다. 그때, “서울댁 아줌니 면장님이 언능 면소로 가보시라던디유.” 면에서 잔심부름하는 소사 오빠의 말에 엄마가 민감하게 반응한다. “응. 그래 빨리 갈게.” 엄마는 꼬맹이의 땋은 머릴 한 번 더 꼭꼭 눌러 살핀 후 손을 잡으며 “가자” 하고 말한다. 엄마는 왜 면장님이 가보라고 했는지를 이미 아는 눈치이다. 


조용한 동네, 하얀 광목을 펼쳐 놓은 것 같은 한가로운 신작로엔 햇볕이 쏟아지고, 가끔 운모가 반짝이기도 한다. 소달구지가 지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듯 꾸덕꾸덕한 소똥 무더기가 드문드문 커다란 부침개처럼 말라 가고 있었다. 길가 오서방네 커다란 감나무엔 봄에 피었던 감꽃의 숫자만큼 진초록의 어린 감들이 오밀조밀 꽃처럼 달려 있다. 얼마 전 떨어진 감꽃을 길게 꿰서 목에 걸기도, 또 먹기도 했었던 그것들은 이젠 예쁜 열매들을 키워 내며 풍요로운 가을을 약속하고 있었다. 그 나무는 인근에선 제일 크고 감도 많이 열렸었다. 그 주변으론 색 고운 능소화가 넝쿨로 세를 불려 나가고 있었다.


급한 엄마의 보폭을 따라잡지 못하는 꼬맹이는 반 뜀박질인데, 갈비가 몇 개인지 셀 수 있을 것 같이 야윈 개 한 마리가 그들 앞을 가로질러 간다. 엄마는 “에이구 누렁아 밥은 얻어먹고 다니냐? 너 주인 없는 개로 살다가 올여름 못 넘긴다?” 얼마 전부터 꼬맹이네 집에 오지 못하는 그 개는, 꼬맹이가 가끔 밥도 덜어 주고 나름 이뻐하던 녀석이었는데 어느 날 길가에서 사람 똥을 먹고 있다가 꼬맹이에게 들켜 혼이 난 후부터, 슬금슬금 꼬맹이네를 피해 다니고 있던 터였다.


엄마 손에 매달리듯 끌려가면서도 꼬맹이는 누렁이를 향해 눈을 하얗게 흘긴다. “에이, 더러워.” 면사무소엔 어디에서 온 것들인지 옷들이 산더미처럼, 꼬맹이 보기엔 정말 산처럼 많은 옷들이 쌓여 있었다. 겨우 뼈대만 남아 있는 면사무소는, 빨간 벽돌로 지은 지 오래된 단층 건물인데 유리창이 한 장도 멀쩡한 것 없이 깨져 있었고, 가장자리에만 삐죽삐죽 날카로운 유리들이 기괴하게 박혀 있었다. 엄마는 코를 싸쥐는 꼬맹이에게 멀리는 가지 말고 나가 있으라 말한다. 소독약 냄새일까? 아무튼 처음 맡아 보는 그 냄새는 오래오래 꼬맹이를 맴돌았다.


꼬맹이는 한껏 발뒤꿈치를 들어 깨진 유리창을 통해 엄마를 보고 있었다. 엄마는 옷 무더기 속에서 뭔가를 찾아 고른다. 작은 체구가 보이기도, 때론 안 보이기도 하며, 찾아낸 옷들을 마루 바닥에 던져 두기도 하고, 왼팔에 척척 걸쳐 가며 모으기도 한다. 그것이 꼬맹이가 본 생애 최초의 외제 물건이었던 셈이다. “구호 물자.” 하지만 우리 동네의 백의 민족들은 별로 익숙지 않아 뚫어진 흰 잠뱅이를 기워 입을지언정 뭐 그리 탐탁해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엄마가 골라 온 옷들은 아침나절 연통하러 왔던 그 청년이 지게로 져다 집까지 부려 놓고 갔다. 미안해하는 엄마에게 면장님이 그리하라 했다며, 인사치레 하려는 엄마의 호의를 거부하더니, 결국 얼마간의 용돈을 받아 들고 그는 돌아갔다.


이 모든 게 일종의 배려였었다. 꼬맹이네는 군인 가족으로 위로 나이 차이가 좀 나는 언니와, 아래로는 남동생이 하나 있다. 동생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쟁이 터졌고, 부산까지 피란을 갔다가 되돌아오는 길에, 외가가 있는 면 소재지인 이곳에 짐을 풀었다. 오래 있을 생각은 아니었다고 말은 그렇게 하나, 그 시절 별 뾰족한 수도 없이 상경하기도 쉽지는 않았을 듯하다. 더구나 포성이 멎은 지 벌써 여러 해가 되어도 전쟁터로 떠난 아버지는 소식이 없고…


아버지는 다섯 형제 중 막내이면서 전쟁엔 중위로 참전 중이었고 꼬맹이는 그의 막내딸이다. 교육열이 높았던 엄마와 학교 안 가면 죽는 일인 줄 알고 커 온 우리 남매들은, 기특하다며 면장님이나 주변 어른들의 관심을 많이 받았었다. 아버지 있는 애들도 진학을 포기할 때, 어떻게 해서든 새끼들은 배곯리지 않고 가르치려는 서울댁에 대한, 구제품일지언정 필요한 게 있으면 먼저 고르게 하는 그런 배려…


엄마가 고른 그 옷들은 대부분 엄청 큰 뚱보들이 입었던 옷들이었다. 그 크기가 엄청나 이게 이불이야 옷이야 하며 웃기도 했었는데, 엄마가 옷 고르는 데에도 기준이 있는 듯 많이 입지 않고, 새 옷이면 더 좋고 색깔이 튀지 않는 그런 옷들… 의외로 그 시대의 옷들은 대부분 손바느질로 재봉되어 있었다. 엄마는 그것들을 요리조리 발라내어 원피스도 만들고 담요로는 겨울바지도 만들었다. 때론 뒷깃이 넓은 세일러복을 흰 선까지 쳐서 만들어 입혔다. 기성복이 없던 시대, 그것들은 동네에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뉘 집에서 빌려 온 재봉틀인지 한 번 빌려 오면 여러 날을 꼬맹이네서 봉사하기도 했었다. 한여름인데도 담요를 오려 내어 할머니들께 조바위를 만들어 나눠 드렸다. 겨울이 먼 듯해도 곧 추워져 혹독한 추위에 할머니들을 따뜻하게 해 드리곤 해서, 서울댁 서울댁 하며 고마워했었다. 비록 구제품으로부터 재탄생되긴 했어도 나름 그 시대 그 동네에선 우린 이미 베스트 드레서였던 셈이다.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언니는 멋내는 감각이 이미 어린아이가 아니어서 비록 교복으로 모든 행사를 대신할지언정 꼬맹이처럼 엄마가 만드는 옷을 기대하지 않고 좋아하지도 않았다. 아랫동생은 또 너무 어리고 남자아이라서, 언제나 옷 욕심은 꼬맹이가 독차지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에겐 의식주 결핍 시대에 일종의 충족 차원이기도 했겠지만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견디는 자구책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 건 꼬맹이가 아이도 낳아 본 그 후였던 것 같다. 뭔 일이든 뒤늦게 알게 되는 게 꼬맹이의 약점이긴 하다.


동네가 너무 조용했었다. 꼬맹이가 멋내고 빨간 리본 매달고 나서도 갈 데가 없다. 이미 포성은 멎은 지 오래고 이곳은 아무런 피해 없이, 작은 정거장도 무사한데, 가끔 쉬어 가는 열차엔 후줄그레한 군복을 입은 군인들을 잔뜩 싣고 북쪽으로 가기도 하고, 또 남쪽으로 달려갔다. 정거장 건너편 열차 대피 선로에선 꽤 오랜 시간 머물며 다른 열차에게 통과 시간을 양보하기도 하지만, 양보받은 열차들조차 쉬진 않고 그냥 통과시키고 나면, 초록색과 빨간색 깃발을 말아 쥔 역무원들조차 무료한 듯 천천히 사무실로 되들어가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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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 AI


그런 정거장에 오늘은 웬일로 저 건너편 대피선로에 코가 높고 눈이 파란, 누런 군복 차림의 군인들이 실린 열차가 멈춰 선 지 꽤 오래다. 어떻게 알았을까 동네 사람들과 낯선 이들이 금방 모여들어 플랫폼에서 장터를 이룬다. 물도 팔고 삶은 계란, 양담배 등 여러 가지가 매매되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그들만의 말들이 이리 튀고 저리 튄다. 기브 미 기브 미 하기도 하고, 플랫폼에 뭘 던졌는지 와르르 한곳으로 쏠려 뭔가를 줍기도 한다. 한켠에선 개구진 남자아이들이 맥없이 주먹감자를 먹이기도 하지만 그게 뭔 짓인지 그들이 알기나 할까?


꼬맹이는 모든 게 신기해서 그 근처엔 얼씬도 말라는 엄마의 당부를 잊고, 역사 옆 측백나무 울타리 앞에 서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는데, 무언가가 휘익 날아와 왼쪽 무릎을 때린다. 너무 아파서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발앞에 떨어진 따지 않은 반쪽짜리 깡통이 간들간들 흔들리고 있었다. 무릎에선 종종머리 댕기같은 빨간 피가 한 줄기 주르르 흐른다. 꼬맹이는 더러운 것을 집듯 엄지와 검지로 집어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놀라며 “에휴 그거 주워 오느라 울보가 울지도 않았네. 그러게 거긴 가지 말랬잖아.” 하며 무릎을 살핀다. 그제서야 꼬맹이는 있는 힘을 다해 울음을 울어 제낀다. 옆집 할머니가 급하게 오더니 무릎에 된장을 이겨 붙이며 “울 일이 아녀! 그래도 얼굴 안 맞았으니 을매나 다행이여.” 그래서 얼굴에 안 던져 줘 고마워하기라도 해야 한단 말인가? 여럿이 들여다보며 캔을 따 보니, 커피, 비스킷, 초콜릿, 잼 등이 코딱지만큼씩 들어 있었다. 그 후로 흉터는 미니스커트를 입을 때마다 약간 신경이 쓰이기도 했지만 설마 내가 미워서 던진 건 아닐 거야 하며 점점 너그러워졌다. 정말 얼굴이 아니길 다행인 걸 인정하게도 되었다. 나의 흉터는 조글조글 점점 작아지긴 했지만 전쟁은 여기저기 또 다른 크고 작은 상처를 남기고 멀어져 갔다.


자질구레한 일상사 말고도 먹고사는 문제에 봉착한 서울댁은 갖고 있던 얼마 안 되는 패물, 금반지, 시계, 목걸이 등을 팔아 정거장이 가까운 이점을 이용해 장사를 시작했다. 오일장이 열리는 날에 여러 가지 시골 물건들을 사 모아 화차에 실어 큰 도시로 날랐다. 나름 장사가 자리를 잡아 갈 즈음, 동생을 봐 주시던 외할머니가 천식으로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셨다. 매일 아침 머릴 땋아 주던 엄마는 며칠에 한 번씩 돌아와서 헝클어진 꼬맹이의 머릴 보고 속상해했다. 빨간 댕기가 한쪽만 매달려 있기도 했고, 머리는 굴리다 만 털실 뭉치처럼 터실터실하고… 하지만 꼬맹이는 참 좋았다. 매일 아침 움직인다고 콩콩 쥐어박고 야단치며 머릴 땋아 주던 할머니가 며칠에 한 번씩 만져 주니 그것도 괜찮았는데… 그땐 왜 그렇게 쥐어박히면서도 돌아앉은 앞쪽에서 사부작거릴 일이 많았는지…


햇살이 곱게 툇마루에 내려앉던 어느 날 며칠 만에 집에서 쉬던 엄마는 꼬맹이를 하얗고 커다란 앞치마 한가운데에 뒤돌아 앉히더니, 땋은 채로 한껏 헝클어진 채 빨간 리본까지 매달고 있는 머리 두 가닥을 싹둑 잘라 버렸다. 종종 땋은 머리가 하얀 천 위에 떨어져 있는 걸 보니, 내 몸 어딘가가 잘라진 것처럼 아픈 것 같기도 했었다. 온 사위가 아무 소리 없이 조용한데, 뒤쪽에서 엄마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내일부터는 혼나지 않겠지 하는 생각에 좋아하던 꼬맹이는 깜짝 놀라 엄마에게 엉겨 붙으며 작은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 주었다. “엄마, 울지 마. 잘못했어.” 엄마를 위로했지만 사실은 뭘 잘못했는지 몰랐다. 머리 땋을 때 해찰하며 할머니 말을 잘 안 들은 것에 대한 사과일 수도 있지만 나이 먹은 후 생각해 보니 엄마가 흘렸던 그 눈물은 젊은 나이에 홀로 된 청상의 진한 눈물이었음을 너무 늦게 알게 되었다.


남편 그늘에서 평탄한 삶을 누리던 여인의, 앞일을 예측할 수 없는 암담함과, 매일 아침 빗겨 주던 어린 딸의 반들거리던 머리가 수세미가 되어 있는 현실에 대한 안쓰러움이었을 게다. 그 후 할머니는 꼬맹이가 중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다. 꼬맹이가 종종 머릴 자르던 그날처럼, 햇살이 화사한데 효자로 소문났던 외삼촌이 몸부림치며 우는데, 나는 눈물이 전혀 나지 않았었다. 그 와중에도 햇살 쏟아지던 그 툇마루와 하얀 앞치마 위에 떨어져 있던 빨강 댕기 매단 종종 머리 두 가닥만이 자꾸 생각났었다.


해가 바뀌면 어떤 높은 문지방을 넘어야 한다든지 무슨 획기적인 변화가 있으면 좋으련만 들쑤셔 놓은 의식 속에 보고픈 이들이 뒤섞여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보고 싶은, 얼굴을 기억조차 못 하고 불러 본 적조차 기억 없는 아버지, 그분은 얼마 전 우여곡절 끝에 행방불명에서 전사자로 복권이 되었다. 일 계급 특진으로 대위로 추서되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종군한지 칠십여 년 만의 일이다. 까만 돌에 암각으로 성함이 올라갔고 파란만장한 삶을 사셨던 엄마도 그 옆에 나란히 이름 석 자를 올렸다. 비석 맨 꼭대기, 사진을 찍어 줌인해야만 볼 수 있지만 자칫 어느 산마루에 이름 모를 비목으로 남아 있었을 아버지이니 그냥 반갑고 또 보고 싶다.


“꿈길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그 님은 나를 찾아 길 떠나셨네. 이 뒤엘랑 밤마다 어긋나는 꿈. 같이 떠나 노중에서 만나를 지고…”


허지만 노중에 만난다 한들 이제는 할미꽃 닮은 꼬맹이를 알아는 보실까? 이 밤이 길고 어둡다. 전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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