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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한 젊은 미국인 탐험가가 잉카 제국의 전설을 찾아 안데스산맥을 따라올랐다. 이름은 하이럼 빙엄(Hiram Bingham). 그는 “잃어버린 잉카의 도시”를 찾고자 페루의 구름 낀 산길을 헤매다, 현지 농부의 안내로 안개 속에서 돌로 쌓인 신비로운 유적을 발견한다.
그곳이 바로 마추픽추(Machu Picchu)였다. 해발 2,430m, 우루밤바 강을 내려다보는 절벽 위에 위치한 이 도시는 수세기 동안 세상에 숨겨져 있었다. 스페인 정복자들도, 현대 문명도, 오랜 세월 동안 이곳의 존재를 몰랐다.
이후 한 세기가 지났지만, 마추픽추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누가, 왜, 어떻게 이 도시를 세웠는가?”
그리고 “왜 아무도 그것을 지키지 않았는가?”
잉카 문명의 절정, 그리고 침묵
잉카 제국은 15세기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이었다. 수도 쿠스코(Cusco)를 중심으로, 오늘날의 페루•볼리비아•칠레•에콰도르•아르헨티나 북부까지 뻗어 있었다.
잉카인들은 금속보다 돌을 사랑한 민족이었다. 금은 ‘신에게 바치는 빛’이었고, 돌은 ‘신이 내린 뼈’였다. 마추픽추의 석조 건축물은 이 철학을 완벽히 구현한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다. 잉카 제국은 16세기 스페인 정복자 피사로에 의해 멸망했지만, 마추픽추의 이름은 어떤 기록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쿠스코의 사원, 사파 잉카(황제)의 궁전, 전쟁의 흔적조차 남아 있는데, 이 도시만은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미스터리의 핵심 — 누가,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
마추픽추의 목적에 대해서는 세 가지 설이 있다.
1. 황제 파차쿠티(Pachacuti)의 별장 설
- 많은 학자들은 마추픽추가 잉카 제국의 제9대 황제 파차쿠티가 휴식과 의식을 위해 만든 산악 별장이라고 본다.
- 하지만 의문은 남는다. 왜 이렇게 외진 곳에, 접근조차 어려운 위치에 그토록 정교한 도시를 세웠을까?
2. 종교적 성지 설
- 태양의 신 인티(Inti)를 숭배하던 잉카인들에게 마추픽추는 천문 관측소이자 제의의 중심지였다는 주장이다.
- 실제로 ‘태양의 신전(Temple of the Sun)’은 동지(冬至)와 하지(夏至)의 햇살이 정확히 제단 위를 비추도록 설계되어 있다.
- 이는 단순한 건축이 아닌 ‘우주적 조율(Cosmic alignment)’의 결과였다.
3. 비밀 수도 설
- 일부 역사가들은 스페인 침입 이후, 잉카 귀족들이 쿠스코를 떠나 숨은 ‘망명 수도’였다고 주장한다.
- 하지만 마추픽추가 발견될 때, 무기나 전쟁 흔적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신비는 더 깊어진다.
결정적 단서는 없다. 고고학자들이 ‘누가 살았는가’를 추정할 뿐, 그들이 왜 떠났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과학적•역사적 분석 — 돌 위에 새겨진 천문학과 공학의 비밀
● 무너질 수 없는 건축 기술
마추픽추의 석조 구조물은 ‘아슐라르(ashlar)’ 기법으로 쌓였다. 즉, 돌을 시멘트 없이 맞물리게 다듬은 방식이다.
돌과 돌 사이의 틈은 단 1mm도 안 된다.
페루는 지진대 위에 있지만, 500년 동안 마추픽추는 단 한 번도 붕괴되지 않았다.
현대 지진공학자들은 이 기술을 ‘지진 흡수형 구조’라고 부른다. 돌 사이의 미세한 틈과 곡선형 배치는 진동을 분산시켜 구조 전체가 유연하게 흔들리게 만든다.
즉, 잉카인들은 ‘움직이는 건축물’을 만들었다.
● 하늘과 연결된 천문학 도시
마추픽추 곳곳에는 ‘인티우아타나(Intihuatana)’라는 돌 제단이 있다. 이는 태양의 궤도를 관찰하던 천문 기기다.
놀랍게도, 인티우아타나는 매년 춘분과 추분에 완벽히 같은 방향으로 그림자를 드리운다.
천문학자들은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15세기 잉카 천문 지식이 극도로 정밀했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마추픽추는 ‘하늘의 길과 땅의 길이 만나는 지점’, 즉 우주와 인간을 잇는 성지였다.
● DNA와 인류학적 증거
무덤에서 발견된 170여 구의 유골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이 젊은 여성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한때 ‘처녀 제물설’이 제기되었으나, 최신 DNA 연구에 따르면 여성들은 잉카 귀족의 하녀, 제사 담당자, 혹은 예술 장인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즉, 마추픽추는 ‘죽음의 제단’이 아니라 ‘삶의 의식 공간’이었을 수 있다.
대중문화와 영향 — 인간의 영혼을 흔드는 상징
오늘날 마추픽추는 페루 관광의 상징이자, 인류가 남긴 가장 아름다운 잔상 중 하나다.
1997년에는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2007년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New 7 Wonders of the World)’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헐리우드 영화 《인디아나 존스》, 소설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그리고 수많은 음악과 다큐멘터리가 이 도시를 모티브로 삼았다.
심지어 비틀즈의 멤버 폴 매카트니는 마추픽추에서 영감을 받아 곡을 썼다고 전한다.
하지만 마추픽추가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되면서, 또 다른 문제도 생겼다. 과도한 관광과 기후 변화로 인한 침식, 지반 불안정이 유적을 위협하고 있다. 페루 정부는 하루 방문객 수를 제한하고, 일부 구역은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마추픽추는 이제 ‘지켜야 할 유산’으로 남았다.
마추픽추는 여전히 “왜”라는 질문 앞에서 침묵한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는 잉카인들의 철학이 담겨 있다. 그들은 금보다 돌을, 도시보다 자연을, 소유보다 조화를 추구했다.
해발 2,400미터의 구름 위에서, 인간은 신을 닮은 도시를 세웠다. 그리고 그 도시는 500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았다.
마추픽추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문명은, 이만큼의 영혼을 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