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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빈 토플러는 ‘올바른 미래상이 없는 교육은 젊은이를 속이는 행위’라고 말했다. 그의 이 말은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전환하던 시대를 가리켰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경고이다.
오늘날의 지식은 더 이상 학교나 기업의 울타리 안에 머물러 있지 않으며, 디지털 네트워크 안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재조합되고, 사라진다. 따라서 학교가 아직도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으로만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젊은이를 속이는 일이라 할 것이다. 학교는 이제 창의성, 통합적 사고력, 협력적 문제해결력뿐 아니라 AI 시대의 문해력과 비판적 사고를 함께 길러 주어야 한다.
교육은 꾸준히 개혁되어 왔다. 그러나 구조를 고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학습의 본질을 바꾸는 일이다. 진짜 개혁은 배움이 중심이 될 때 비로소 시작된다. 우리는 어떤 환경 속에서 학생들이 스스로 묻고, 탐구하고, 배우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 이것이 오늘날 교육이 직면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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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움은 더 이상 교실 안에 머물지 않는다
과거에는 혁신적 학습 환경(Innovative Learning Environments, ILE)이라는 개념이 주로 학교 건축과 교실 구조의 혁신으로 이해되었다. OECD는 2013년 보고서에서 학습 환경을 “학습을 가능하게 하는 물리적, 사회적, 조직적 조건의 총체”로 정의하며, 교사의 협력과 유연한 공간, 공동 학습의 중요성 등을 강조했다.
그러나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코로나 팬데믹은 학습이 더 이상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온라인 수업, 지역사회 프로젝트, 디지털 협업 등이 확산되면서 학습 공간의 경계는 허물어졌고, 학생들은 교실뿐 아니라 자료와 피드백이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디지털 네트워크에서도 배우고 있다.
뉴질랜드의 교육도 이러한 변화를 빠르게 수용하고 있다. 교육부는 Digital Technologies Curriculum과 NCEA Refresh를 통해 디지털 문해력, 비판적 사고, 탐구 기반 평가를 강화하고 있다. 학습의 중심이 지식을 전달하는 교사에서 교사, 학생, 지역사회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의 여정이 되고 있다.
2. 스스로 묻고, 스스로 설계하는 배움
최근의 탐구중심학습(Inquiry-based Learning)은 단순히 주제를 정하고 결과물을 만드는 수준을 넘어, 데이터 분석, 비판적 사고, 그리고 창의적 문제 해결이 결합된 복합적 학습 과정으로 진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 고등학교에서는 <기후 변화와 에너지 효율> 을 주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학생들은 태양광 패널의 발전 데이터를 수집하고, AI 예측 모델을 활용해 효율성을 비교 분석했다. 또한 학생들은 Python이나 Excel뿐 아니라 ChatGPT, Canva, Google Colab 같은 디지털 도구를 자유롭게 활용하며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설계하고, 결과를 시각화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교사는 “무엇을 배워라”라고 지시하지 않는다. 대신 “왜 그 방법을 택했는가?”, “다른 변수는 고려했는가?” 등을 묻는다. 질문을 통해서 학생이 스스로 자신의 사고를 확장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것이 교사의 역할이다.
탐구중심학습의 핵심은 질문을 통해 스스로 사고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3. 교실의 경계를 넘어, 사람과 문화로 이어지는 배움
교실은 협업과 탐구, 그리고 실험이 동시에 일어나는 열린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학생들은 더 이상 자리에 고정되지 않고, 교사는 더 이상 한 칸의 교실을 관리하지 않는다.
뉴질랜드의 여러 학교 (예를 들어, 홉슨빌 포인트 세컨더리, 알바니 시니어, 오미스턴 주니어 등)는 이러한 원리를 바탕으로 협업형 수업을 실천해 왔다.
초기에는 넓은 공간에서 여러 교사가 함께 수업하는 오픈플랜(Open Plan) 구조가 주목받았다. 그러나 실제 운영 과정에서 소음, 집중력 저하, 교사 간 역할 분담의 어려움이 드러나면서 최근에는 보다 유연하고 선택적인 공간 설계(flexible learning environments) 로 방향이 옮겨가고 있다. 다시말해 물리적 개방성보다 학습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보장하는 구조로 발전한 것이다.
이제 혁신적 학습 환경은 물리적 공간을 넘어, 관계와 연결이 살아 있는 디지털 학습 구조로 확장되고 있다. 학생들은 AI와 디지털 도구를 통해 즉각적인 피드백과 맞춤형 지원을 받고, 교사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생의 학습 과정을 세밀하게 관리한다. 오프라인에서는 토론과 탐구, 프로젝트가 이어진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사람, 특히 교사가 있다. 교사는 더 이상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존재가 아니라 학습을 설계하고, 질문을 던지고, 학생이 스스로 사고하고 성장하도록 이끄는 학습 설계자(Learning Designer) 인 것이다. 또한 학생들이 정서적으로 안전함을 느끼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서로의 배움을 존중할 수 있는 관계와 문화의 토대를 세우는 것도 교사의 역할 중 하나이다.
학습의 본질을 되찾기 위하여
AI의 등장은 교실의 풍경을 바꾸었고, 학생들은 이제 거의 모든 정보를 즉시 검색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정보의 접근성이 높아질수록, 학습의 목적과 의미를 스스로 성찰하는 능력은 더욱 중요해졌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묻는다.
“왜 배우는가?”
교육의 혁신이란 결국,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왜 배우는가?’를 묻고 답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기술은 배움의 여정을 돕는 도구일 뿐이다.
방향을 정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는 언제나 인간이다.
전정훈 원장
Edu-Kingdom College, North Shore
newcan119@gmail.com